힘이 빠져 침대에 누운 준호는 손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울었음. 껴안고 있던 몸을 풀고 뒤로 물러선 태오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기분에 휩싸여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음. 깔끔하게 넘겨 정리한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짐. 준호는 참을 수 없었음. 정신적으로 구석에 몰려 있었다지만 조태오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음. 그가 건드리는데로 반응하는 약해빠진 몸뚱이가 병신같다며 자책함.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것은 준호에게 치욕 그이상도 이하도 아님. 숲에서 얻어맞을 때보다 훨씬 괴로웠음. 마음이 확 꺾임. 성인남자로서의 자존심은 물론이고 성직자로서의 신념까지 와르르 무너졌음. 그들의 얼굴을 보고도 떨지 말리라 다짐했던 그때의 아가토는 어디로 간거냐 싶음. 태오는 흐느끼는 준호를 멍하니 보고 있었음.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음. 입을 열었다가 또 병신같은 소리를 해서 준호가 날뛸까봐 겁이남.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잖아.’ 준호를 강간하기 전에 떠올랐던 마음의 소리가 어디선가 다시 들려옴. 태오는 고개를 왁왁 흔들며 소파에 널브러지듯 앉아 마른세수를 했음. 피부가 거칠함. 그러고 보니 잠을 제대로 못 잔지 좀 됐음. 준호는 여전히 울고 있음. 태오가 보고 싶은 것은 이런 게 아니었음. '웃어 봐요.' 태오는 꺼내고 싶던 말을 입안으로만 삼켰음.
태오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인생의 고됨을 느낀 적이 없었음. 명동 거리에서 쪽팔리는 경험을 했다지만 좆같은 감옥도 안가고 결국엔 사회에 나와서 잘 살고 있잖음? 상위 0.1% 금수저의 삶에 굴곡이란 없음.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가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은 전부 할 수 있으니 사는 것이 지겹게 느껴질 정도임. 그 탓에 마약에도 손을 댄 것이겠지. 흥미가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손에 넣어서 망가뜨려봐야 만족하는 지랄같은 성질머리를 가지게 된 것도 어찌보면 환경 탓이 큼. 그러던 이 젊은 재벌3세 망나니에게 처음으로 돈으로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생겼음.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곤 상명하복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죠태오는 사람대 사람으로서 대등한 관계를 이루기 위한 첫 단추를 어디에 끼워야 할지 몰랐음. 그래서 자신이 제일 잘 하는 짓을 했음. 돈지랄 말임. 뭐든 최고급으로! 라는 모토를 발휘함. 준호의 방에 들어찬 것들은 전부 겁나 비쌌음.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준호는 신학생임. 돈지랄이 통할 상대가 아님. 여동생을 위한다는 이유로 신학대에 들어갔다고 해도 어쨌든 7학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성직자의 길을 걸을 자격과 소질이 있다는 뜻이었음. 탐욕을 멀리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 죠태오와는 거리가 10만 광년쯤 떨어져 있음. 그리고 자길 납치해서 감금한 범죄자가 재력자랑 파티를 여는데 어느 누가 그걸 호감으로 받아 들이겠음? 무서웠으면 무서웠지. 애가타서 물욕템을 쏟아 부을수록 준호에게는 더 극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태오는 정말 몰랐음.
다음 날, 영화사를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의 태오가 본사 로비에 들어섰을 때 품안에서 벨소리가 울렸음. 공개되지 않은 개인 폰으로 온 것임.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태오는 자리에 멈춰섰음. 뒤따르던 수행원들도 멈춤. 태오는 화면에 뜬 발신자 불명 표시를 보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임. 재수없는 예감이 들었음. 통화 버튼을 누름. [조태오씨 되십니까.] 익숙한 목소리였음. 아니, 김 베드로 신부님 아니십니까. 이 번호는 어떻게 아셨나요. 태오는 반가워하는 목소리를 냈음. 물논 겉으론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음. 고용주가 다시 걷기 시작하자 수행원들이 따랐음. [아는 형사님께 부탁을 좀 했습니다.] 형사, 인상이 절로 찌푸려짐. 그냥 제 비서에게 말씀하셨으면 신부님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는데~ 태오가 멈춰 서서 능글능글하게 말했음. 수행원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줌. [바쁘신 모양인지 비서분과 통화가 안 되더군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최근 일이 좀 많아서 연락을 못 받은 모양입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하니까요.] 대화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짐. 태오는 짜증이 치밀었지만 내색하지 않았음. 부제님 소식은 좀 들리나요. 저도 개인적으로 사람을 몇 명 보냈는데 거 참, 행적이 묘연하네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천연덕스러운 태오의 연기에 수화기 건너편의 김신부가 잠깐 침묵함.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음. [피차 다 아는 사람들끼리 내숭떨지 말자.]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던 태오는 발을 멈췄음. 그 사이 수행원이 먼저 타서 열림 버튼을 눌러줌. 무슨 말씀이신지. 태오가 삐딱하게 말하자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음. [최준호, 네가 데리고 있지.] 그 말에 태오는 픽 웃었음. 목소리가 서늘하게 깔림. 김신부님 지금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좀 쉬는 게 어떻습니까. 부제님은 제가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김신부의 말에 태오는 완전 기분이 나빠짐. 통화 스피커를 손으로 가린 태오가 수행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림. 별장 주변에 무슨 일 없는지 보고하고 경계 강화 하라고 지시함. 손을 치우고 다시 말함. 지금 좀 무례하신 거 아닌가요. [됐고. 돌려보내. 일 커지면 아쉬운 건 너다.] 태오는 김신부의 낮춰보는 말투가 매우 마음에 안듬. 힘을 준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뜨자 이마에 핏줄이 불쑥 솟아남. 신부님. 부제님을 걱정하시는 건 이해하는데 저에게 이러실 이유가 없어요. 태오가 주름 잡힌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음. 걱정 마세요, 별 일 없으실 겁니다. 그건 본심이었음. 태오는 준호에게 잘해줄 생각 만반임. [분명히 경고했다. 너 잡아먹으려고 벼르고 있는 사람들이 잔뜩 있던데 뒤통수 조심해라.] 뚜- 전화가 끊김. 허 씨발. 검게 변한 화면을 노려보던 태오는 혀를 굴리며 엘리베이터에 탔음. 김신부가 말한 ‘벼르고 있는 사람들’이 누굴지는 짐작하고도 남음. 억지로 눌러 두었던 불안의 싹이 슬금슬금 피어오름. 전광판에 바뀌는 숫자를 보며 태오는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음.
뭐래? 제천법사의 물음에 김신부는 침묵함. 제천법사는 고개를 휘휘저으며 몸을 뒤로 쭉 뺐음. 이건 우리 같은 놈들과는 안맞는 일이야. 그러지 말고 그냥 그 서 어쩌구 형사한테 맡겨. 김신부는 빠르게 고개를 흔듬.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목소리가 무거움. 제천법사는 더 묻지 않았음. 김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남. 간다. 그래 가라. 둘은 가볍게 인사를 주고 받았음. 김신부가 신당을 나가자 제천법사는 한숨을 쉼.
김신부는 서도철과 이번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음. 김신부는 0신이의 일로 며칠 구치소에서 지낼때 조사를 위해 서를 들락날락 거리며 도철과 면식이 있었음. 준호가 실종되던 날, 외제차와 수단을 입은 젊은 남자를 봤다는 정보도 서도철이 구해준 것임. [그런 새끼들은 절대 뉘우치는 법이 없어요.] 목격자 진술서 사본을 건네며 서도철이 말했었음. 김신부는 긍정했음. 사실 도철은 태오의 최근 행적에 대해 무언가 나쁜 감을 느끼고 있었음. 그러나 그가 후원했던 카톨릭 단체들의 기부 기록은 깨끗했음. 제단에서 도와 줬다는 가난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음. 신부들과 함께 한다는 소문도 사실이었음. 어떻게든 털어 봤지만 책잡을 만한 게 전혀 안나옴. 매스컴은 오히려 크리스마스가 지나 갱생한 스크루지마냥 조태오를 묘사하고 있었음. 도철과 팀원들은 불신에 가득 찬 눈으로 착잡하게 상황을 주시해 왔음. 그러던 어느날 예전에 안면이 있던 김신부가 조태오와 관련해 할 말이 있다고 찾아옴. 정식으로 서품을 받은 카톨릭 신부로 신원도 확실했음. 그가 해준 말은 도철의 정신을 번쩍 들게함. 피가 펄펄 끓어 넘침. 무고한 사람을 유괴 납치 감금이라니, 피해자가 확실한 사건이라면 콩밥 익스프레스임. 그러나 김신부가 조건을 내세움. 비공개로 수사해 달라는 것임. 피해자인 준호의 신분이 세간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랐음. 도철은 자세한 이유를 물었음. 김신부는 굉장히 정석적인 사연을 꺼냈음. [그 녀석, 신학대 7학년생 입니다.] 불미스러운 소문이 따라 붙으면 장래에 문제가 생길거라고 했음. 도철은 답답했지만 정보제공자를 무시할 수 없었음. 그리고 신학생이라면 확실히 특수한 케이스긴 했음. 이번 사건이 물위로 떠오르면 씹고 뜯고 즐기기 좋아하는 매스컴에서 젊은 사제를 가만히 둘 리가 없음. 태오는 약을 했음. 문란한 소문도 한 둘이 아님. 단순한 성격의 도철도 피해자가 받게 될 강도 높은 언론 맛사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이 갔음. 김신부는 최준호에 대해 설명하며 그가 자신의 보조사제라고 했음. 보조사제가 뭐냐고 캐물었지만 김신부는 가볍게 웃으며 신부를 돕는 사제라고만 답했음. 그러고보니 김신부가 잡혀오게 된 사건도 좀 이상했음. 도철은 김신부의 사건 파일을 보았음. 이0신이라는 여고생에게 사이비 행위를 하다가 그녀를 사망에 이르게 할 '뻔'한 살인미수. 그러나 여고생은 깨어났고 그녀의 강력한 주장으로 풀려나게 된 요상한 사건이었음. 뭐 이번 일과는 관계가 없을테지만- 도철은 태오를 잡아넣을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였음. 지금이 딱 그 시기임. 도철은 경찰청 구석 흡연실 창가에 서서 담배를 빼어 물고 생각에 잠김.
김신부는 생각했음.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성직자 특유의 자기희생 정신을 떠나서 범신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음. 준호를 구마의 길로 끌어들인 것은 김신부 자신이었음. 이제 고작 서른인 젊고 새파란 인생을 악몽의 길로 끌어들인 것임. 물론 그리 말하면 틀림없이 준호는 고개를 저으며 제 선택이었다고 할 것임. 그런 녀석이었음. 김신부는 담배를 비벼끄고 카톨릭대 화단을 걸었음. 오늘 김신부는 학장신부에게 준호의 사정을 설명하고 처분을 미뤄달라 부탁하기 위해 온 것임.
태오는 빡이 치기 시작했음. 김신부와의 통화를 기점으로 하루종일 불쾌한 시선을 받았음. 수행원들이 살짝 귀뜸하길 미행이 붙었다고 함. 주의깊게 둘러 보니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얼굴을 익혔던 형사도 있었음. 대놓고 태오의 행동을 방해하지는 않았지만 '너 이새끼 지켜보고 있다'는 진심이 팍팍 느껴짐. 그래도 영장을 들고 쳐들어 오지 않는 걸 보면 아직 증거가 없다는 의미였음. 태오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김신부와 서도철을 깔끔하게 죽일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10가지 정도 생각해봄. 태오야. 사무실 창가에 서서 빌딩 밖을 노려보던 태오는 최상무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음. 최상무는 턱 밑을 쓰다듬으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음. 무슨 일인데. 짜증을 감추지 못하고 태오가 물었음. 최상무는 굉장히 내키지 않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음. 저... 그 최부제님이... 태오는 정신이 번쩍 듬. 뭐? 최부제가 뭐. 언성을 높임. 최상무는 한숨을 쉬며 소식을 전했음. 자해를 시작했다고 함. 창에 머리를 박고 링겔통을 깨서 그 조각으로 몸을 긋기까지 했다는 것임. 태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욕을 내뱉으며 가죽 의자에 털썩 앉았음. 최상무는 이대로 가다가는 문제가 생길거라며 진지하게 말했음. 태오도 바보가 아님. 그 정도는 알고 있었음. 처음 준호를 납치하고 한 며칠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협박해서 입 틀어막고 적당히 버리려 했었음. 계획이 틀어져도 아주 제대로 틀어짐. 지금 태오는 준호를 보내 줄 생각이 없었음. 준호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이었는데 태오는 그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했음. 같이 있고 싶었음. 자기를 봐줬으면 했음. 존나 일차적이고 일방적이었음. 그... 어떻게 할까. 최상무의 말에 태오가 짜증스럽게 뭘? 이라고 되물음. 계속 자해중이라며 일단 묶어놓긴 했다고 함. 태오는 인상을 팍 씀. 가볼테니까 오늘 임원진 모이면 브리핑은 모레 한다고 해. 신제품 발표를 예정보다 일주일 앞당긴다고 하면 개지랄 못할테니 그걸로 버텨. 태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쾅 열고 나감. 홀로 남은 최상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듬.
문을 연 태오가 제일 먼저 본 것은 흰 천으로 둘둘 말려 옆으로 돌아누운 준호였음. 무슨 누에고치처럼 말려 있는 모습이 퍽 재미있었지만 태오는 웃을 기분이 안들었음. 준호는 누가 들어오건 말건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음. 바짓단 아래로 가는 발목이 보임. 태오는 한숨을 쉬며 준호가 누워 있는 침대 머리 맡으로 걸어갔음. 왜그랬어요. 대답 없이 계속 눈을 감고 있음. 부제님. 이러지 맙시다 우리. 태오는 진심으로 피곤했음. 종종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몸을 움직여 풀곤 했는데 최근엔 그럴 기회가 없었음. 그리고 누군가를 때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음. 주먹으로 준호를 패고 발로 밟고 차던 기억이 떠올랐음. 그건 별로임. 태오는 넓직한 침대 위 빈 공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음. 매트리스가 출렁이느라 몸이 조금 움직였지만 준호는 눈을 뜨지 않음. 그러거나 말거나 태오는 실실 웃으며 누워 있는 준호 몸 위로 제 손을 턱- 올렸음. 움찔 튀는 반응이 느껴짐. 있죠, 부제님. 오늘 누구한테 전화 왔는지 알아요? 준호가 대답하지 않아도 태오는 계속 주절거림. 김 베드로 신뷰님. 또 몸이 움찔 떨림. 태오는 누워있는 준호 옆으로 엉덩이를 끌며 다가갔음. 그리곤 옆으로 누운 준호 몸 위로 제 몸을 바짝 겹침. 갈비뼈를 보호하기 위해 채워둔 두꺼운 천의 딱딱한 감촉이 볼에서 느껴짐. 동시에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전해져 옴.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음. 김신부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최준호 돌려 보내라고. 태오는 준호 앞에서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깨달았음. 어쩐지 감회가 새로움. 최준호... 이름을 중얼거려봄. 부제님을 많이 아끼나봐요. 태오가 실없이 웃었음. 마음에 안드네. 준호가 눈을 떴음. 그러나 태오는 무시하고 계속 주절거림. 계속 귀찮게 구는데... 엄청 거슬려요. 어쩌면 좋죠? 태오의 말에 준호가 입술을 깨뭄. 이마에 덧대어진 붕대에 피가 배여나와 있음. 태오는 손을 뻗어 그걸 꾹 눌렀음. 윽. 억눌린 신음이 터짐. 태오는 준호가 사랑스러움. 그래 사랑스럽다. 아마도 내가 얘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 태오는 그 부끄럽고 쪽팔리는 문장의 조합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중얼거렸음. 김신부님은 아무 관계도 없잖아요. 그를... 끌어들이지 말아요. 준호가 잠긴 목소리로 부탁했음. 태오는 잠시 조용히 듣다가 곧 몸을 일으켰음. 최준호. 나직하게 이름을 부름. 혀에 감기는 울림이 제법 마음에 듬. 부제님이 하나 착각하는 게 있어요. 난 김신부님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그쪽에서 오는 거지. 그렇게 말한 태오가 픽 웃으며 준호의 볼을 쓰다듬었음. 감촉이 서늘함. 정말 귀찮아서, 이번엔 꼭 처리해야 겠어요. '처리' 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준호가 퍼드득 튀어올랐음. 이 개자식아! 네가 인간이야? 악마같은 놈! 악담을 퍼부음. 태오는 푸하하 웃었음. 이제 겨우 깨달았나보네? 나 악마새낀거? 부제님 욕하는거 듣기 좋아. 좋은데... 좀 슬프다. 김범신 신부님이 그렇게 좋아? 태오의 물음에 준호는 이를 갈았음. 누구든 당신보단 나아. 아주 시원한 대답이었음. 태오는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 되었음. 태오는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음. 나에게 그런 말을 해도 되겠어요? 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준호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태오는 지친 한숨을 내뱉었음. 그래, 씨발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안그래? 뭘 잘해주니 마니 지랄이야. 태오가 씹어삼킬듯 내뱉으며 준호에게 눈을 맞췄다. 부제님. 김신부님 살리고 싶으시죠. 갈색 눈동자가 흔들렸음.
... 신부님.
... 뭐야 아가토, 네가 왜 이 전화를 받아. 조태오 그새낀 어디갔어.
이제 전화 안하셔도 되요.
뭐?
전화 안하셔도 된다구요. 저 잘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금 너 조태오 별장에 갇혀 있는 거 다 안다. 그자식이 뭔가 수작을 부린 모양인데 정신차려 최준호!
조태오씨와 함께 있는 건 맞는데 갇힌 건 아닙니다. 그.. 제 제가 사정이 있어서 의탁한 거니까..
야!
신부님. 걱정끼쳐서 죄송합니다.
야 최준호! 너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는 있는거야?!
...
아가토... 준호야... 무슨 협박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이러는 거 아니다. 판단 잘 해야해. 혹시 날 들먹이며 협박했으면.
신부님, 아니에요. 그런거 아닙니다. 저한테... 저한테 문제가 있어요. 제가 문제에요. 죄송합니다...
임마, 네가 죄송할 건 또 뭐야. 준호야. 잠깐만 야!
아이쿠, 전화바꿨습니다.
...
김범신 신부님?
너 이새끼 애한테 뭔 소릴 지껄인거야.
입이 참 험하시다. 그리고 최준호씨가 다 말하지 않았나요? 사실 저도 모른 척 신부님 속이려니 마음이 좀 그랬어요. 뭐 어쩔 수 있나. 부제님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달라 애타게 부탁하며 찾아왔는데...
너...
죄송합니다, 신부님~ 준호씨가 너무 힘들어 하셔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죠 부제님?
조태오. 옆에 준호 있으면 전해. 이러는 거 아니라고.
하핫- 그래 맞아요. 확실히 전화상으론 좀 그렇죠. 그럼... 어떡하나. 아! 부제님 얼굴 보면서 이야기 하면 좀 괜찮겠어요?
...
내일 오후 4시. 여기로 오세요. 부제님은 제가 설득해 볼테니 두 분 직접 얼굴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게 좋겠네요. 어딘지는 알죠?
김신부는 욕을 조태오는 웃음을,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침대에 기대 앉은 준호는 멍한 얼굴로 허공의 먼지를 쫒았음. 태오는 화색을 감추지 못했음. 준호 옆에 딱 붙어 앉아 어깨동무를 하더니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함. 잘했어요. 부제님. 그래도 존경하는 김신부님 직접 볼 생각하니 좋죠? 큭큭 웃으며 준호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음. 어휴, 너무 말랐다.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거 먹어요. 내가 특별히 신경써 달라고 할게. 맞닿은 어깨가 떨려옴. 태오는 그것을 느끼면서도 모르는 척 크게 웃었음.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 처럼 속이 시원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