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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준호 12

계속 보고 있다가는 숨이 막혀 뒤질 것 같았음. 가뜩이나 좁은 방인데 사면이 저를 좁혀오는 느낌에 태오는 속이 울렁거렸음. 높은 울음은 절규가 되어 방안을 가득 메웠음. 태오는 주저앉아 엉덩이를 뒤로 끌었음. 기도소리가 흘러나오는 폰 위를 더듬어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 태오는 이마를 한 번 쓸었음. 벽에 기대어 반쯤 쓰러져 있는 준호는 종국엔 하도 울어 힘이 다 빠졌는지 힉힉 흐느꼈음.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태오는 플라스틱 곽을 들고 비틀거리며 걸어가 문을 열었음. 음악소리가 밀려 들어와 방 안에 가득찬 우울함을 날려버림. 태오는 잠시 준호를 향해 흘끗 시선을 돌렸다가 밖으로 나갔음.


라운지에서 어슬렁거리던 박철민은 구석에 위치한 접견실에서 누군가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것을 봤음. 거래 때문에 조태오가 룸을 쓰기로 한 걸 알아서 그인간인가 싶음. 건들거리며 사람들을 뚫고 룸으로 향하던 철민은 문 옆에 기대 서있는 남자가 조태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음. 키가 크고 늘씬했는데 술을 많이 마셨는지 벽에 기대 흐느적거리고 있었음. 철민은 입맛을 다시며 그에게 다가갔음. 가까워질수록 입고 있는 옷에서부터 몸매까지 딱 철민의 취향이었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에 들어왔을 정도면 평타는 칠 것임. 안녕하십니까. 넉살좋게 인사를 건내며 남자 옆에 섬. 방에서 나오는 거 봤는데 조실장 일행인가요? 나란히 벽에 기대 서서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음. 그러나 철민은 능숙하게 말을 이어감. 외모를 스캔하는 것도 잊지 않음.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슬쩍 비치는 콧날과 입술이 제법 철민 취향임. 조실장 방에 있나? 철민은 몸을 기울여 똑똑 문에 노크를 했음. 답이 없자 슬쩍 문을 열어봄. 안에는 아무도 없음. 밀려난 소파와 흐트러진 테이블, 바닥에 굴러다니는 빈 주사기가 보임. 철민은 인상을 쓰며 문을 닫았음. 씨발 여기서 약 빨지 말라니까. 거칠게 욕을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데 문득 문 옆에 서있는 남자의 정체가 신경쓰임. 물논 남자는 준호임. 철민은 방 안에서 본 주사기와 준호를 연결시키고 씩 웃었음. 너 혹시 조실장이 데려온 애야? 말이 짧아져도 준호는 대답없이 벽에 기대 비실비실 웃고만 있음. 철민은 이제 슬슬 짜증나려고 함. 진척없는 대화는 치우고 험하게 나가볼까 하는데 준호가 고개를 듬. 울어서 부은 눈과 물기 묻은 입술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옴. 존나 잭팟임. 철민은 놀라서 입을 헤 벌리고 준호를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재스캔함. 그 끈적끈적하고 노골적인 시선을 준호는 알아채지 못하고 헤 하고 바보같이 웃었음. 약 했구나. 철민이 비싯비싯 웃으며 말했음. 재밌는 놈을 데려왔네. 근데 조실장은 어디가고 혼자 이러고 있어? 턱을 잡아 양옆으로 휙휙 돌리며 철민이 중얼거렸음. 무례했지만 상대가 그걸 지적할 상황이 아닌 것을 이용함. 손끝으로 코트 깃을 옆으로 치우고 셔츠 속까지 파헤친 철민은 눈쌀을 찌푸리고 숨 들이키는 소리를 냄. 허- 목덜미에 깨물리고 졸린 자국에 멍과 울혈이 가득한 몸은 대충 보기에도 평범한 상처가 아니었음. 철민은 준호를 남창이라고 단정내림. 최근 조태오가 계집질을 끊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 남자랑 붙어 먹었나 싶음. 철민은 피식 웃었음. 자기보고 더러운 게이니 뭐니 지랄하더니 정작 본인이 남자 뒤를 따먹고 다니셨다? 방안이 개판난 걸로 미루어 짐작해 좆같은 성질머리 발휘해 준호를 패고 뛰쳐나간 것 같음. 맞아서 그런건지 눈가가 붉은 걸 보니 이해가 됨. 철민은 준호 옆에 찰싹 달라붙어 등 뒤로 팔을 둘러 어깨를 쓸어내렸음. 조실장한테 얼마 받느냐 몸 보니 하드한 플레이 한다는 둥 능글능글하게 굴었음. 준호는 이해가 잘 안되는지 눈을 꿈뻑거리며 모른다는 말만 반복함. 철민은 준호를 이끌며 허리와 엉덩이를 더듬었음. 좀 마른 것 같지만 외모가 최상급임. 오랜만에 좋은 거 건졌다 싶음. 아무튼 그렇게 준호를 끌고 주차장으로 향함. 


좁은 복도로 들어섬. 주위에 사람이 없어지자 철민의 손이 바지 속을 파고듬. 준호가 덜컥 몸을 떨며 억지로 밀어냄. 하지마. 뭉그러진 목소리로 반항함. 철민은 인상을 썼음. 나 너 억지로 따먹는거 아니거든. 주머니를 두드리며 값 쳐줄거라는 표현을 함. 다시 손을 뻗어 만지려 하자 이번엔 더 강하게 저항함. 약에 취한 상태라고 방심했다가 마구잡이로 휘두른 손에 얻어 걸려 볼에 상처가 남. 철민은 이를 빠득 갈며 주먹을 휘둘렀음. 좁은 복도에서 피할 곳도 없었고 그럴 만한 상태도 못되었던 준호는 배를 맞고 그대로 바닥에 나뒹굼. 철민은 턱을 쓰다듬으며 준호를 내려보았음. 좀 반반하게 생겼다고 좋게 봐줬더니 도가 지나친데. 야. 얌전히 좀 있어봐. 손을 뻗어 준호의 어깨를 잡아 끌어당김. 휙 힘없이 딸려 올라오는데 그러면서도 술취한 사람처럼 손을 휘젓는게 영 거슬림. 아 귀찮게 구네. 자꾸 이러다간 침대까지 가기도 전에 피떡된다? 철민이 낄낄거리며 준호 팔목을 꽉 잡아 누름. 그때였음. 넌 여기서 나가기도 전에 피떡된다? 철민은 바로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음. 왼쪽 뺨에 주먹이 제대로 박힘. 억 소리를 지르며 쓰러진 철민은 본능적으로 맞은 부위를 감싸고 뒤로 물러남. 그러느라 준호가 옆으로 밀려나 벽에 부딪혀 주르륵 쓰러졌음. 철민은 볼을 감싸쥐고 바닥에서 일어나려다 두짝의 구두가 눈앞에 보이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음. 조태오가 서있음. 철민은 땀을 주륵 흘렸음. 혀로 입술을 축이며 뒤로 재빨리 몸을 일으킴. 아 조실장. 난 쟤가 마음에 안들어서 조실장이 깐줄 알았지. 비굴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리자 태오가 한숨을 쉼. 가뜩이나 기분 좆같은데 별 거지같은 것들이 성질을 돋궈요. 이봐요 박상무님. 태오가 허리를 숙여 얼굴을 철민 가까이 댐. 요즘 장사하기 힘들지? 태오가 빙긋 웃자 철민이 하하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음. 좀 쉬고 싶지 않아? 한 20년쯤 푹 쉬자 응? 내가 이렇게 배려를 잘해. 오랜만에 또라이기질 폭발함. 철민은 퍼렇게 질린 안색으로 사정사정함. 정말 몰랐다고 동공풀린 준호를 가리키며 남창에게 질린 줄 알았다며 한 번만 봐달라고 빌었음. 근처 열린 문틈으로 구경꾼들이 많음. 옹기종기 모여서 사태를 지켜보는 눈과 입 때문에 태오는 인상을 팍쓰며 구두끝으로 철민의 정강이를 가볍게 툭 쳤음. 줘 팰려고 했는데 일 커지게 생겼음. 박상무님. 쟤 남창 아니에요. 어디서 이상한 오해하고 오셨나본데 개소리 그만합시다. 그건 그렇고 깽값 필요해? 태오의 물음에 철민은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음. 그 꼴을 비웃으며 태오는 벽에 등을 기대고 널부러진 준호에게 다가갔음. 풀린 동공으로 철민과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음. 일어설 수 있겠어요?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짐. 태오가 내민 손 너머로 박철민뿐만 아니라 구경꾼들 모두가 준호를 보고 있음. 흐흐 웃던 준호가 갑자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함. 아아.... 준호는 몸을 감싸고 바닥을 뒹굴며 나직하게 신음성을 내질렀음.  


남창. 저게 조실장 애인이야? 왜 저래? 어디 모자란가? 에이 설마. 근데 게이였어? 쟤 그냥 몸파는 새끼같은데. 근데 왜 저렇게 소리를 질러. 약했나? 조실장 요즘 뜸하더니 남자 뒷구멍에 맛들렸나봐. 박철민은 왜 하필 조태오를 건드려서. 온갖 천박한 소리가 들려옴. 그들이 남창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준호였음. 태오는 웅성거리는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으르릉거림. 눈치를 보던 철민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음. 음악소리가 멀어짐. 태오는 말없이 바닥에 엎드려 비명을 질러대는 준호를 부축했음.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 주차된 차 앞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엄청 소모됨. 준호는 넋이 나가 보였음. 계속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잔뜩 뭉개져서 알아 듣기 힘들었음. 괜히 데려왔다 싶음. 박철민을 더 제대로 조져야 겠다고도 생각함. 이왕이면 마음에 안드는 가게까지 싸그리 박살내버려야 겠다고 다짐하며 이를 갈았음. 자꾸 웅크리려하는 준호를 뒷자석에 구겨 넣은 태오는 불편한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았음.


그날 이후로 별장에 틀이박힌 준호는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듬. 몇 번씩 반복해서 말을 걸면 대답을 해주긴 하는데 거의 단답식임. 태오 뿐만 아니라 수행원들이나 의사 간호사의 사소한 움직임에도 깜짝 놀라 몸을 떨었음. 모두들 준호 앞에선 작은 소리라도 내지 않기위해 주의를 기울여야했음. 자해도 다시 시작됨. 태오가 김신부를 들먹이며 막으려고 해도 막무가내였음. 아니 김신부 이야기만 꺼내면 오히려 더 날뜀.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음. 꼭 부마자 같다고 생각함. 실제로 준호는 묵주와 성경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음. 태오는 초반에 김신부와 준호를 태우고 부마자의 집으로 향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림. 구마의 기본은 진단. 일반적인 정신병력과 구분해 내야 하는게 중요한데 사실 이걸 딱딱 나누기가 쉽지 않다고 함. 동물들이 몰려들거나 시취가 나는 등의 초자연적인 부분만 제외하면 그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환자일 뿐이라고. 태오는 속이 쓰렸음. 준호는 부마자가 아니었음. 억지로 묵주를 손에 쥐어주면 그걸 잡고 가만히 있었음. 기도하라고 '명령'하면 영혼 없는 목소리로 주기도문을 외웠음. 김선생은 준호가 심각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했음. 혹시 최근에 그가 충격을 받을 만한 경험을 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음. 태오는 방문을 보고 픽 웃었음. 그 웃음을 오해한 김선생은 안색이 창백해짐. 태오는 아랑곳않고 다시 물었음. 그래서 저거 고칠순 있겠어요? 서비스센터에서 고장난 물품을 맡기며 건네는 질문 같음. 김선생은 속이 쓰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문제에는 환자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음. 태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 그냥 준호가 있는 닫힌 방문만 바라봄. 김선생은 가시방석이었음. 또 뭔 지랄을 하려나 걱정이 태산임. 가봐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태오가 말함. 김선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하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음.


바람이 심하게 불고 추운 날이 지속되다가 겨울 답지 않게 포근한 아침이 왔음. 태오는 방문을 열었음. 준호는 헤드에 등을 대고 가만히 있음.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울의 냄새가 났음. 태오는 침대 옆에 서서 손을 뻗었음. 준호는 흠칫 놀라지만 피하지는 않음.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태오가 말했음. 날씨가 좋아요. 비꼬거나 다른 뜻이 담기지 않은 다정한 목소리임. 어제까지 엄청 추웠는데... 오늘은 많이 풀렸어요. 주섬주섬 내뱉는 일상문구가 존나 어색함. 태오는 우물쭈물하며 준호의 어깨를 잡았음. 밖에 나가 볼래요? 이상했음. 그가 늘상 하는 권유란 말로만 그랬지 사실상 확정된 명령과 다를바 없었음. 그런데 지금의 저 말은 문자 그대로 '권유'의 뜻을 담고 있었음. 내키지 않으면 그만둬도 좋다는 선택지가 있었음. 태오는 준호의 눈을 보았음. 그리고 약간 놀랐음. 눈동자가 떨리고 있음. 나...나가요? 여기서? 목소리가 근원없이 이리저리 흔들렸음. 준호는 조금씩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음. 공황장애 증상이 오는 것 같음. 여기서... 나가면... 중얼거리며 혼자 생각을 진척시킴. 준호는 제 어깨를 잡고 있는 태오의 손목을 붙들었음. 저... 그냥 방에 있겠습니다... 목소리가 허상처럼 흔들렸음. 스스로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음. 튀어나오는대로 내뱉고 나서야 흠칫 정신을 차렸는지 입술을 우물거렸음. 다시 입을 열었을때는 좀 더 확고함. 여기에 있을겁니다. 꼭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음. 태오는 인상을 쓰면서 창 밖을 보았음.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음. 날이 정말 좋음.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근데 계속 방에만 있었잖아. 가끔 밖에 나가서. 태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준호가 매달렸음. 싫습니다. 태오는 흠칫 놀랐음. 방금 준호는 분명 싫다고 했음. 떨고 있었지만 약을 한 상태도 아님. 맨정신으로 제 의사를 표현한 것임. 상황은 좀 이상했지만 어쨌든 태오는 기뻤음. 알겠어요. 안나가도 되니까 걱정말아요. 억지로 안해. 태오가 부드럽게 말하자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하던 준호의 가슴이 천천히 원상태로 돌아옴. 그래도 불안한지 연신 눈을 굴리면서 눈치를 봄. 태오는 처음으로 준호의 의사표현을 들어서 기분이 확 좋았다가 잡힌 손을 통해 전해져오는 떨림에 살짝 기묘한 느낌을 받음. 뭘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음. 태오는 침대 옆으로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준호와 눈높이를 맞췄음. 그리고 조심스럽게 잡힌 손목을 빼어냄. 준호의 양 볼을 잡고 얼굴을 마주보며 태오가 말했음. 준호씨. 나 좀 봐요. 준호는 단단히 붙잡혀서도 기어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음. 뭐가 그렇게 싫어요? 왜 밖에 나가기 싫은 거야? 태오가 물었음. 그러자 준호가 어깨를 떨었음. 말을 하려고 입을 연 것 같은데 소리는 안나오고 뻐끔뻐끔거리며 떨리기만 함. 짧지 않은 시간동안 태오는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했음. 그리고 다음 순간 태오는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은 희미한 소리를 들음. 나는... 죄를 지었어요. 태오는 헛웃음 지었음. 뭐? 이해할 수 없었음. 죄를 지은 걸로 치자면 오히려 조태오 자신인데. 어이가 없어서 헛숨을 들이켰는데 갑자기 불안해졌음. 태오는 준호를 와락 끌어안았음. 여전히 피하지도 밀어내지도 않음. 아주 가까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멀게 느껴짐. 태오는 준호의 어깨에 턱을 올려 부비면서 크게 숨을 들이켰음. 체취가 약함.


준호는 두려움. 그저 두려움. 밖으로 나가기도 두렵고 잠깐 발을 움직이는 것도 두려웠음. 그 건물에서 자기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눈빛이 생생함. 남창. 몸을 파는 더러운 놈. 기억은 제 멋대로 꼬이더니 점점 살을 더해갔음. 그들은 타락한 성직자라며 침을 뱉고 돌을 던졌음. 처음엔 자신을 이렇게 만든 태오를 향한 증오가 솟구쳤음. 다음으로 원망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의사를 향했고 시트를 갈아주는 고용인을 향했음. 그러나 결국 종착지는 자신이었음.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했던 곳인데 이제는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았음. 나가면 모두가 자신을 비난할 것 같았음. 사제가 수치도 모르고 남자와 붙어 먹었다며 힐난할 것 같았음. 


억지로 손목을 잡아 문 밖으로 질질 끌어 내자 준호가 기절함. 그제서야 태오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음. 신경질적으로 김선생을 탈탈 털어도 전공이 아닌데 뭘 어쩌겠음. 외과의로서 찢어지고 부서진 상처만 치료해왔던 김선생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정직하게 말하자 태오는 길길이 날뛰었음. 내가 너한테 주는 돈이 얼만데 사람이 씨발 병신이 되어가는데 왜 못고치냐고 지랄지랄 개지랄을 함. 뒤늦게 연락을 받고 온 최상무는 침대에 누워 있는 준호와 개판이 된 방 중앙에 털썩 주저앉아 씩씩거리고 있는 태오를 마주하고 기가 찼음. 마구잡이로 던진 물건에 맞아 부은 이마를 붙들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김선생에게 가보라고 손짓한 최상무가 조심스럽게 태오에게 다가갔음. 태오야 왜 이래. 최상무의 말에 태오가 잠시 씩씩거리다가 뚱하게 대답했음. 형 그냥 나가. 나 지금 조절 못해. 다치기 싫으면 가. 그 말에 최상무는 준호가 누워 있는 침대로 흘끗 시선을 줌. 그만하자. 응? 이대로 가다간 너도 큰일 나겠어. 최상무가 천천히 말했음. 태오는 대답없이 아랫입술을 꽉 뭄. 형. 조금 진정된 목소리임. 어. 최상무는 태오가 내민 손을 잡아 당겨 그를 일으켜 세워줌. 구겨져 올라간 베스트를 내리며 옷매무새를 정돈한 태오가 말했음. 박철민 그새끼 밟아버려. 아니다. 깔끔하게 그냥 죽여버리자. 응 그러면 되겠네. 당장 실행해. 최상무는 한숨을 쉬었음. 여기서 더 문제 일으키면 안되는거 알면서 왜 이래. 지금까지 잘 참아 왔잖아. 그 말에 태오는 단정하게 넘긴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큰 소리로 외쳤음. 씨발! 시키는대로 하라고! 최상무는 이마를 쓸었음. 말이 안통함. 드디어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음. 알았어. 대신 죽이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니까 경쟁업체끼리 분쟁 생긴걸로 어디 한 두군데 부러뜨리자. 임규남처럼 처리하면 되겠지? 태오는 대답하지 않음.


어떻게든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준호와 어르고 달래고 윽박질러서라도 밖으로 나가려는 태오. 둘의 싸움은 늘 그렇듯 결국은 태오의 승리로 끝났음. 벌벌 떨며 바닥에 고정된 준호를 한발자국 두발자국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 아예 시야를 차단해버림. 태오는 준호의 눈을 천조각으로 가리고 그의 손목을 잡아 끌었음. 우습게도 눈이 보이지 않으니 발작이 현저히 줄어듬. 꼭 야생동물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태오는 준호의 손을 잡고 돌길을 걷는 것이 마냥 좋음. 그래 좋았음. 앞이 보이지 않아 저에게 의지해 비척비척 걸어오는 준호가 좋았음. 날씨 좋죠 준호씨. 태오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음. 대답이 없지만 그래도 좋다고 웃음. 어쨌든 지금 이 결과는 그가 늘 원해왔던 일임. 사랑하는 최준호가 옆에 있잖아. 도망은 커녕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않음. 그래 좋지 않은가.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했음.


김선생이 깨작깨작 가져오던 항우울제로는 슬슬 한계가 보임. 태오는 가게에 다녀온 이후 김신부에게 지랄같은 전화를 몇 통이나 받고 빡이 치면서도 약이 담긴 플라스틱 통에는 손도 안댔음. 솔직히 말해서 스스로도 자신의 의지가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음. 약을 안 한지 보름쯤 넘어가는 동안 좆같은 금단증상을 견디는 것보다 준호의 암울한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더 힘들었음. 태오는 저를 빤히 바라보는 준호의 갈구하는 눈빛을 의도적으로 무시했음. 저 눈을 잘 암. 많이 봤음. 태오는 준호가 약을 원한다는 것을 중독자의 입장에서 쉽게 알아챔. 그러나 주지 않았음. 이지경까지 와서도 어떤 선이 느껴짐. 넘으면 절대 안되는 선 말임. 준호가 태오의 허리를 끌어 안고 바르작거렸음. 제발... 태오는 냉정하게 그런 준호를 내려봄. 속으로는 불길이 휘몰아치고 있음. 제발... 줘... 준호가 흐으으 신음하며 침대에 앉은 태오의 가슴에 볼을 부볐음. 저것은 최준호가 아님. 저 순간 만큼은 그가 아는 최준호가 아니었음. 평소에는 관심도 없더니 이럴 때만 나를 찾아요? 태오가 저를 껴안고 끙끙 앓는 준호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었음. 속이 바삭바삭 말라감. 제발... 몇 번인지도 모를 제발 소리가 존나게 거슬림. 준호가 가슴에 뜨거운 숨을 토해냈을때 순간 태오는 혐오감을 느꼈음. 대상은 준호가 아닌 자신이었음. 그토록 고고하던 사람을 이런 꼬락서니로 만들어버린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따르는 죄책감. 정신차려보니 처음 느끼는 감정에 어쩔줄 몰라하는 자신이 있음. 무엇하나 생소하지 않은 것이 없었음. 태오는 준호를 거칠게 밀쳐냈음. 잠시 숨을 고르던 태오는 이를 갈며 침대 위에 널부러진 준호의 등 뒤로 팔을 감아 그를 일으켰음. 너는 이런 새끼가 아니잖아! 왜 이러는거냐고!!! 사실 자신에게 외치는 말임. 준호는 흐릿한 눈으로 태오를 보았음. 항우울제가 몸과 마음을 얼렸음. 채워지지 않는 것을 매꾸기 위해 준호는 약을 찾았음. 태오는 섹스할때마다 약을 줬음. 그렇다면 지금 그와 섹스하겠다고 하면 약을 주지 않을까. 일차원적인 생각을 그대로 실행한 것 뿐임. 그것이 통하지 않으니까 슬픔. 준호는 흐어엉 하며 다시 울었음. 태오는 이를 갈며 그런 준호를 거칠게 덮쳤음. 우왁스럽게 키스하고 셔츠 사이로 손을 넣었음. 혀를 부대끼며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을 삼켰음. 뜨거운 피부를 더듬으며 태오는 열렬히 응해오는 준호의 손길에 욕지기가 치밀었음. 그래서 손길에 폭력을 담았음. 억지로 다리를 벌리고 멍이 들 정도로 골반을 쥐어잡았음. 준호의 손이 태오의 베스트 주머니에 닿았음. 부스럭 소리가 나자 입이 벌어져 매끈한 혀가 보였음. 태오는 이를 갈며 잔인하게 웃으며 주사기를 꺼냈음. 준호의 눈이 태오의 손을 따라 움직임. 정확히는 태오의 손에 들린 주사기를 따라서. 태오는 그것을 꽉 쥐고 몇 번 희롱하듯 흔들더니 뒤로 던져버렸음. 아... 안타까운 소리가 흘러나옴. 그것을 입으로 막으며 태오는 준호의 다리 사이로 파고 들었음. 


항우울제 여섯알을 삼키고 정신이 몽롱한 준호의 눈에 안대까지 씌워 옆좌석에 앉힘. 태오는 운전하면서도 연신 늘어진 준호에게 시선을 돌렸음. 김선생의 추천으로 준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내내 둘은 말이 없었음. 병원에 도착한 태오는 준호의 손목을 붙잡고 복도를 걸었음. 고급 정장을 입은 남자와 안대가 씌워져 뒤따르는 남자의 기묘한 조합에 여기저기 시선이 끌렸지만 둘 다 신경쓰지 않았음. 미리 말해뒀던대로 이런저런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태오는 보호자의 신분으로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었음. 


뇌 MRI 촬영을 마치고 간호사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준호가 사라졌음. 소식을 전해들은 태오는 욕을 하며 준호가 있었을 촬영실 문을 열었음. 벗어 놓은 코트는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음. 심지어 신고 왔던 신발과 검사를 받을때 편하게 돌아다니라고 두는 슬리퍼도 그대로 놓여 있었음.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간호사에게 패악질을 부릴 마음도 안들었음. 그보다 어떤 불길한 예감이 태오의 가슴을 관통했음. 그 감을 따르는 쪽이 더 중요했음. 태오는 홀린 것처럼 진단실을 나와 병원 복도를 뛰었음.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어쩐 일인지 태오의 발걸음은 윗층 계단을 오르고 있었음.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차올랐음. 준호가 느꼈던 공황장애란 이런 것일까. 태오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어쩐지 옥상으로 향했음. 그리고 거기에 준호가 있었음.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태오는 멍청하니 옥상에 서있는 준호를 보았음. 정확히는 옥상 난간에 올라 서 있는 준호를 보았음. 5층짜리 병원의 옥상은 나무를 심고 벤치를 놓은 쉼터였음. 오늘 따라 날씨가 추워 아무도 없었음. 그리고 홴스도 없었음. 정말 아주 우연히도 며칠 전 휘어진 휀스를 교체하기 위해 고작 두평 남짓한 한쪽 난간의 휀스가 치워져 있었음. 거기로 올라선 것임. 태오는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음. 등을 보이고 서있는 준호의 머리카락이 거친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렸음. 귓가에 휘잉 하고 소름끼치는 바람소리가 났음. 꼭 높은 산에 올라온 것 같음. 고작 5층 건물일뿐인데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음.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태오쪽으로 흘낏 준호가 고개를 돌렸음. 거기 서십시오. 멀쩡한 목소리로 준호가 말했음. 약에 취하고 프로작에 절여졌다고는 믿기지 않았음. 아주 단정하고 예의바른 존댓말임. 말에 담긴 강한 힘에 태오는 저도 모르게 발을 멈춤. 뭐... 하는 거에요. 거기서 내려와요. 반면 태오의 목소리는 파도처럼 이리저리 휩쓸렸음. 준호는 다시 앞을 보았음. 얼굴이 보이지 않음. 더욱 겁이 났음. 이제야 겨우 정신이 드네요. 준호가 중얼거렸음. 태오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음. 저도 모르게 침음성이 흘러나왔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지난 일들이 별 거 아니게 느껴집니다. 준호가 담담하게 말했음. 그때 순간적으로 심한 바람이 불어 난간에 서 있던 몸이 휘청함. 태오가 욕설 섞인 비명을 질렀음. 씨발! 내려와. 거기서 내려오라고. 제발 제발요. 부제님. 내 말 들어요. 내가 잘못했어. 응? 극도의 공포심이 몰려듬. 아무 것도 안했는데 숨이 차올랐음. 태오는 자신이 덜덜 떨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음.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더러운 옥상 바닥에 무릎 꿇었다는 사실도. 준호는 가볍게 웃었음. 시체로. 단어일 뿐인데도 태오는 숨이 막혔음. 시체로 나가면 되겠죠. 얼마 전에 태오가 했던 말임.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죽어서 시체로 나가던가.' 준호의 말에 태오는 턱을 떨었음. 내가 잘못했어요! 다 전부 내 탓이야! 내가 부제님을 억압하고 강간하고! 다 내가 잘못했어! 제발 그러니까... 태어나서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죄의 고백과 후회의 말들이 흘러 나왔음. 그것의 어색함을 자각하지도못하고 태오는 다급하게 빌었음. 처음으로 상대가 자신의 절박함을 알아주길 바랐음. 제발... 태오가 중얼거렸음. 제발... 이번엔 똑같은 말을 준호가 중얼거렸음. 그리고 다음 순간 준호의 모습이 사라졌음. 아아아악! 태오가 바닥에 엎드려 몸을 떨며 절규했음. 꺽꺽 숨이 막혀 듣기 괴로운 소리가 흘러나와도 끝없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소리를 질렀음. 움직일 수 없었음. 차마 아래를 내려볼 엄두가 나지 않았음. 꺄아아악!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음. 태오는 벌벌 떨며 옥상 바닥에 웅크리고 비명을 질렀음. 몇 번이고 바닥에 머리를 찧었음. 이마가 찢어져 피가 비쳐도 멈추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