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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ul

로키의 독백

로키의 독백같은거 보고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다고 말 못해도 사랑받는데 있어선 타고난 존재가 있어. 바로 내 형, 토르야. 형을 보고 있자면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져. 강한 무력, 천둥의 신, 뭉툭하고 담대한 성격, 비정상적인 친화력, 그 외에도 많지만 대충 생략할게. 형 칭찬을 읊다 보니 좀 짜증나는군

 

물론 나도 대단하지. 적재적소에 마법을 써먹거나 사악한 술수를 부려 상대를 기만하는 재능은 가히 천부적이라고 할 수 있어. 나를 시기하는 무리들은 비열한 속임수의 신이라고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 또한 장점 아니겠어? 형이 잘났다고해서 멀쩡한 내 능력을 까내릴 생각은 없어

 

아스가르드의 로키는 굉장히 매력적인 존재야. 토르에 비해서 약간, 그러니까 아주 조금 그릇이 작긴 하다만 크게 문제되는 부분은 아니지. 왕이 될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했던 건 아냐.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가 성격이 좀... 복잡하잖아? 지금이야 형 옆에 한 자리 꿰차고 여유롭게 웃고 있지만 열등감으로 점철된 시절도 존재했다 이거지. 제대로 말하자면 좀 기니까 간단하게 꺼내볼까. 어린 시절엔 형의 단점만 보았어

 

힘이 센 걸 무식하다고, 용기가 뛰어난 걸 무모하다고 까내렸지. 지금도 약간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철없던 시절엔 훨씬 심했어. 형이 하는 행동은 무조건 나쁘다고 폄하했거든. 질투지 뭐. 부끄럽지만 사실인걸 어쩌겠어. 이왕 고백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끝까지 솔직하게 말해볼게

 

객관적으로 봐서 토르 오딘슨은 잘났잖아.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흠 잡을 곳이 없지. 잘생긴 얼굴이나 육감적인 몸매같은 좀 구체적인 부분 말이야. 어릴 땐 귀여웠는데 지금은 멋있어졌어. 사심이 섞였다고? 너희들도 토르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봤을 거 아냐. 모르겠어? 그럼 얌전히 죽던지

 

어릴 때 이야기를 해볼게. 내가 처음으로 형의 ‘약점’을 발견한 부분인데 웃기게도 그 약점이란게 나야. 무슨 소리냐면, 우린 왕성 북서쪽에 위치한 다크엘프의 숲에서 자주 놀았어. 명칭은 우리들이 붙였어. 형과 그 친구들인 워리어즈나 시프... 대충 어중이 떠중이 들이지

 

그들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아스가르드가 폭발해버린 지금와서 캐캐묵은 옛감정을 들춰봐야 뭘 하겠어. 우린 숲에서 술래잡기를 즐겨 했어. 나무도 빽빽했고 습기차고 서늘했지만 위험한 짐승은 없었거든. 숲은 낮이든 밤이든 어두침침해서 조금만 들어가도 분위기가 을씨년했지

 

애들은 뭐든 확대해석 하려고 하잖아? 결론은 명칭만 그럴 뿐 사실 아주 안전한 숲이었단 뜻이야. 보통 형은 친구들과 함께 술래잡기를 했고 난 책을 읽었어. 노는데 잘 끼워주지 않았거든. 그렇다고 괴롭힘 같은 건 아니었으니 걱정마 스위트한 개미들아. 오히려 내가 모두를 따돌린 셈이지

 

그 날은 우연히도 나와 토르 뿐이었지. 다들 집안 행사가 있다던가 가정교사가 왔다던가 시간이 맞지 않았어. 그래서 술래잡기는 일 대 일 이었어. 형이 술래였고. 내가 불리하지 않냐고? 맞아. 그렇지. 토르는 꼬맹이 일때도 체력이 무슨 새끼 빌지스나입 같았거든. 그렇지만 나에겐 마법이 있었어

 

일주일 전에 투명마법을 배워서 써먹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어. 형을 골려먹는 방법은 간단했지. 마법을 쓰고 가만히 있으면 됐어. 강철 꼬맹이는 바위와 나무를 부수고 다녔지만 나를 찾을 순 없었어. 시간이 갈수록 당당하던 형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했고 반대로 나는 즐거워졌지

 

얼마나 놀랐겠어. 어린 동생을 숲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엄청 끔찍했겠지. 처음엔 목청껏 외쳐 찾더니 곧 울먹이더라. 심사가 꼬여서 그런가 날 부르는 잠긴 목소리가 그렇게 좋았어.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단한 형이 나 때문에 운다고 생각하니까 오싹오싹 한거야. 그게 시작이었어

 

믿어져? 그 작은 꼬마가 제 형의 위대함에 흠집을 주기 위한 최고의 방법을 찾아 버린거야. 그렇게 한참을 헤메다가 헤임달을 부르러 돌아서는 형의 손목을 잡았어. 눈이 퉁퉁 부었더라. 연기를 좀 했지. 무서웠다고, 날 버리고 간 형이 너무 미웠다고. 이때의 순진한 토르는 의심없이 믿고 사과했어

 

요령을 파악하니 그 뒤론 식은죽 먹기였어. 숲에서의 사건 이후론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형 미안해. 다신 안그럴게.” 사과와 눈물 한방울이면 화를 가라앉히더라. 뱀으로 변해 칼로 배를 찔러도 말이야. 그냥 좀 심한 장난이라고 넘어갔어. 참 멍청하지 안그래? 그렇게 난 형의 약점이 되었어

 

여러 번 단계를 높여가며 형의 한계를 시험했어. 어디까지 선을 넘어야 버림 받을까? 두려움에 떨면서도 조금씩 내질렀어. 정작 내쳐지면 버티지 못하는 건 내쪽일텐데 이상하게 전혀 겁이 나지 않더라. 어떤 확신이 있었나봐. 형은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 실제로 그랬고...

 

배신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결국 실행 못했잖아. 퍽 가소롭지. 사카아르에선 장족의 발전으로 날 속이긴 했지만 마무리가 허술했어. 무법자들의 행성에서 잘 살라는 마음이었겠지. 참 물렁해. 몇 천 년간 지켜봤어. 형이 무슨 마음으로 죽음의 신에게 점령당한 아스가르드로 향했는지 알아

 

자기희생이라, 박수를 보내고 싶을만큼 대단했어. 나 마저 영향을 받아 구원자 포지션을 이룩했으니까. 푸른 빛줄기가 내려올때는 만족스러우면서도 조금 괴롭더라. 형이 빛나면 빛날수록 반대편에 있는 나는 그만큼 너절하고 초라해졌거든

 

그리고 방금 눈 앞에 거대한 함선이 나타났어.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행로를 가로막은 건 아닐테지.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칠거라 예상되니 이쯤 해야겠어. 어쩌면 요 독백이 마지막일수도 있겠네. 끝까지 형의 약점이 되어 뒤통수만 치는 건 모양새가 영 아니니까 이번에야 말로 용기를 내볼게

 

무섭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보고 기도라도 해줘

 

“내가 그리웠지?”

 

외치며 등장한 미스치프님과 조우할지 어떻게 알겠어? 너희들이 [제발 지배해 주십시오. 로키님] 넙죽 엎드려도 그럴 일은 없을거야 그럼 이만 행운을 빌어줘

 

 

~ 인워에서 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