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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주는 토르(로키토르) 10

달이 크고 높이 뜬 깊은 밤이었음. 드럼통이 잔뜩 쌓여있는 폐공장으로 들어간 토르는 허름한 겉모습과 달리 최신식으로 설비된 내부를 둘러 보며 눈을 가늘게 떴음. 서류에 적혀 있던 그대로였음. 검은 수트를 입은 자들이 낯선 침입자에게 경고 한마디 없이 총질을 하자 토르도 즉각 대응했음

발로 차서 날린 벽돌에 맞은 남자가 억 소리를 냈음. 발전한 살상도구도 아스가디언의 피부를 뚫진 못했음. 토르는 몸을 둥글게 굴러 기둥 뒤로 몸을 숨겼음. 옷에 구멍이 뚫리긴 싫었음. 실컷 총질을 해놓고 이제와서 누구냐고 외치는 미련한 자들에게 대답 대신 품속에서 꺼낸 작은 조명탄을 던졌음

번쩍- 엄청나게 밝은 빛이 작렬하지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음. 속으로 10초를 셌음. 기둥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내도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음. 다들 눈을 감싸고 신음하는 중이었음. '콜슨에게 감사해야겠군.' 토르는 바닥을 뒹구는 남자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음

긴 계단을 통해 지하실로 감. 흰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비상구로 달아나자 떼어낸 철문을 던져 막았음. 다리가 풀린 몇명이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음.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게 없다고 했음. 토르는 코웃음을 쳤음.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 냉랭한 태도를 보이자 저들끼리 속닥거리더니 경계함

토르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탈출구가 막혀 오갈데 없는 연구원들에게 다가갔음. 몇 명인가 의미없이 주먹을 휘둘러 왔지만 때린 쪽에서 손목을 감싸고 고통을 호소했음. 다들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음. 토르는 저와 덩치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를 지목했음. 그는 겁에 질려 쭈뼛쭈뼛 앞으로 나왔음

토르는 남자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기고 한손으로 으스러트렸음. 소름끼치는 소리가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공간으로 퍼졌음. 먼저 말하는 자는 자비를 베풀어 주겠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말에 담긴 뜻은 그렇지 못했음. 먼저 말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금발의 침입자가 경고하고 있었음

사람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어깨를 떨었음. 눈치게임. 누구 한 명이라도 나서면 붕괴되는 살벌한 침묵이 이어졌음. 토르는 팔짱을 끼고 얼추 기다려 주다가 인상을 팍썼음. 말로 해선 안되는건가. 가볍게 투덜거리며 손을 내밀었음. 별거 아닌 움직임에도 모두가 흠칫 놀라 벽에 등을 붙였음

가루로 만든 안경 주인의 두꺼운 목을 가볍게 쥐고 천천히 힘을 주었음. 엄지 손가락이 경동맥을 꾹 파고들자 남자가 컥컥 거리며 팔을 붙들고 매달렸음. 폭력과는 거리가 먼 부드러운 손놀림이었음에도 연구원은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흰자를 드러냈음. 맙소사, 누군가 중얼거렸음. 괴 괴물

괴물!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음. 토르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뗐음. 남자는 바닥에 쓰러졌고 입가에 거품을 물었음. 자, 다음은 누구지?

'그 그런 물질이 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어요.'

주근깨 가득한 남자가 공포에 질려 외쳤음. 토르는 그의 눈을 진득하게 응시했음. 사실인 것 같았음

토르는 김이 빠진 표정을 지었음. 이번에도 허탕이었음. 이 침입은 콜슨을 도와주기 위한 미션이었음. 에릭과 제인을 떠나면서 토르는 콜슨에게 당분간 그들을 지켜달라 부탁했음. 그 대가로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겠다 했더니, 콜슨은 그로선 드물게 빼지 않고 어떤 물건의 추적을 부탁했음

셉터라고 했던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것의 특성을 암기하고 하이드라 기지를 부수며 정체를 파악하는 중이었음. 그것도 이곳이 마지막임. 콜슨은 더 부탁하지 않았고, 토르 역시 여길 마지막으로 그가 아는 모든 이들과 연락을 끊을 생각이었음. 또한 모든 파괴행위를 그만두리란 마음도 먹음

계단을 오르며 주변이 기이하게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음. 의아한 생각이 들 때쯤 일층에 도착했음. 너무 고요했음. 직격당하면 한 시간 정도 눈이 멀어버리는 라이트 바머였지만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음. 신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자 토르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발걸음을 옮겼음

쓰러진 검은 수트 사내들은 가슴에 작은 구멍이 뚫린 채 사망한 상태였음. 허리를 숙여 상처를 살피던 토르의 귀에 누군가 작게 쿨럭이는 소리가 들렸음. 고개를 돌려보니 한 남자가 벽에 기댄 채 가슴을 감싸고 있음. 토르는 천천히 다가가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남길 말은 없나? 물었음

남자는 켁켁거리며 대답을 못했음. 성대를 당했는지 목소리가 안나오는 것 같았음. 상처로 보아 이 남자도 살긴 힘들었음. 남자는 손을 뻗으며 필사적으로 토르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문득 오래 전, 전쟁터에서 어머니에게 돈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던 앳된 병사가 떠올랐음. 결국 들어주지 못했었지



인기척을 느낌과 동시에 어깨 너머에서 금색 창이 튀어나와 남자의 가슴을 꿰뚫었음. 토르는 무릎 꿇은 채로 잔뜩 터져나온 피를 뒤집어썼음. 뒤돌아보지 않아도 창의 주인은 뻔했음

뭘 또 이런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거야?

남자는 눈도 감지 못하고 절명했음. 옷깃을 잡은 손이 툭 떨어짐

검은 동공이 혼탁해진 걸 확인한 토르는 손을 뻗어 눈꺼풀을 감겨주었음

토르

그 행동이 못마땅했는지 부르는 소리에 짜증이 가득했음. 로키. 토르는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렸음. 얼굴부터 가슴까지 붉은피가 가득 묻었음. 로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음. 더러워졌네, 씻으러 가야하지 않아?

본인이 이꼴로 만든 주제에, 참으로 뻔뻔했지만 로키는 원래 이런 녀석이었음. 토르는 딱딱하게 웃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음. 붉은 피가 질척하게 묻어나왔음. 제대로 닦이지 않고 오히려 지저분해졌음. 로키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올려 토르의 얼굴을 쓸었음

손끝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서리가 내렸는데 제법 차가울텐데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음. 금세 하얗게 눈이 덮여버린 얼굴을 거칠게 쓸어도 마찬가지였음. 오늘따라 왜 이렇게 둔하실까. 뜨거운 체온에 서리기 녹아 피와 함께 섞여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음. 토르는 로키의 손목을 잡아 내렸음

로키가 의아해하자, 여긴 더 볼일이 없다. 낮게 말하더니 잡은 손목을 놓고 얼굴을 휙휙 대충 쓸며 앞장섰음

흔적은 그대로 두는거야?

로키가 묻자 토르는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음. 폐공장에서 멀리 떨어져 상황을 주시하는데 헬기소리가 들려옴

개미들에게 뒤처리를 맡기는 건 제법 오랜만이잖아

늘 직접 '처리' 했었는데

토르가 두 사람과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었을때, 로키는 자신의 수법이 다시금 통했다는 사실에 등줄기를 꿰뚫는 쾌감을 느꼈음. 개미의 온전한 죽음보다 애매하게 살려두고 제발로 멀어지게 하는 편이 더 완벽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음

제인이나 스티브처럼 죽음으로서 토르에게 영원히 각인되는 것은 마음에 안들었음. 마리아나 에릭, 어린 제인의 경우 토르는 그들을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물러났음. 스스로 고립되는 길을 택한 토르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들과의 유대가 약해졌으니 로키의 수읽기는 완벽한 셈이었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들을 살려두었지?
딱히 이유는 없다

인간들의 특수기동대가 하이드라 조직원들을 줄줄히 체포하고 있었음. 저들 입장에선 운이 좋다고 해야겠지. 원래는 화마에 집어삼켜졌을 자들이었음. 토르는 미련없이 몸을 돌렸고 로키가 뒤따랐음. 둘은 밤그림자 속으로 사라졌음

1~2년에 한 번씩 에릭과 제인이 사는 로스앤젤레스의 집으로 엽서가 날아왔음. 세계 관광 명소 사진으로 한쪽 면이 채워진 엽서였는데 발신자는 불명에 적힌 건 Dear Angles 글귀가 다였음. 에릭은 현관 옆 벽에 코르크 보드를 걸었고 엽서가 도착할 때마다 제인이 압정을 꽂아 깔끔하게 정리했음

2000년, 새로운 세기와 밀레니엄이 합쳐져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넘실거렸음. 소비가 꾸준히 늘어났고 경기가 조금씩 회복되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는 호황을 이루고 있었는데 11월에 터진 끔찍한 테러 때문에 소강상태가 됨. 이때 토르는 시애틀에 머물고 있었음

캐피톨힐에서 길거리 공연을 구경하거나, 발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 들른 작은 카페에서 뉴스를 보았음. 회색 연기가 브라운관을 꽉 채웠고 자유의 여신상이 무너져 내리며 붕괴하는 비현실적인 장면에 모두가 경악했음. 서빙하던 점원은 토르의 갈색 자켓에 음료를 쏟았음

뉴스를 보고 있느라 뒤늦게 알아챔. 괜찮소. 세탁비를 청구하라며 사과하는 점원을 억지로 돌려보냈음. 점원을 제외한 카페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브라운관만 보았음. 폭파 장면이 전환될때마다 사람들이 술렁거렸음. 누군가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기도 했음

자연스럽게 마리아와 에릭, 제인이 떠올랐음. 토르가 알기로 그들은 여전히 애틀란타와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었기에 뉴욕에서 일어난 테러에 휘말렸을 가능성은 드물었음. 문득 10년 전에 연락을 끊은 콜슨이 떠올랐음. 엄청난 사건이 터졌으니 지금 쉴드의 상황이 어떨지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음

토르가 머무는 곳은 내부가 붉은 벽돌로 가득 채워졌고 전기선이나 수도관이 그대로 노출된 짓다 만 건물이었음. 귀찮은 증빙없이 현금을 주고 사들인 집이라 배수배관 시설만 대충 뚫고 바로 들어옴. 안은 간결했는데 생활에 필요한 아주 간결한 물품들만 구비되어 있었음

컴퓨터나 전화, 팩스, 텔레비전 같은 전자기기는 전무했음. 휴대폰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음. 셉터를 찾아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완수하지 못한 채로 콜슨과 연락을 끊었는데 로스앤젤레스나 애틀란타 앨라배마 등 주요 도시에 위치한 접선장소에도 안간지 오래임. 토르는 완전히 잠적했음

에릭과 제인에게 보내는 한 장짜리 엽서를 제외하고는 연결고리가 전무했음. 그것도 발신인을 적지 않고 텀을 두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보냈으므로 사실상 관계는 모두 단절되었다고 보면 됨

오늘따라 공기가 탁하네, 기분나쁘군
언제 왔나
방금

로키가 머플러를 거칠게 풀며 짜증을 부렸음

늘 있던 일이라 토르는 말없이 개수대에서 과일을 씻었음. 도시가 어수선하다는 로키의 말에 토르는 오늘 테러가 있었다고 알려줌. 로키는 코웃음을 치고 소파에 앉아 발을 꼬더니 책을 펼쳤음

전쟁이니 테러니 늘 있던 일이잖아
그렇긴 하지
하이드라인가, 어디서 터졌지?
글쎄, 장소는 뉴욕이더군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멈췄음. 토르는 씻은 포도를 접시에 담아 들고 저벅저벅 걸어가 로키 앞 테이블에 내려놓았음. 멈췄던 페이지가 다시 넘어갔음

아스가르드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갑작스럽게 전환된 화제에 잠시 머뭇거리던 토르는 로키 옆에 앉으며 물었음

데려가 줄텐가?
하는거 봐서

로키는 킥킥 웃으며 포도알을 따서 입으로 가져감. 말투가 기분 나쁠만도 했지만 딱히 화내고 싶지 않았음. 로키는 언제나와 같았음.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토르를 향해 쏟아 붓는 애정의 무게는 비교할 바 없이 무거웠음. 그래서 토르는 로키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음

또한 토르 본인부터 과거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약했음. 모친과 어린 동생이 아련하게 떠올랐지만 그들은 늘 웃고 있었음. 로키가 말과 토르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아스가르드는 동화속에서나 볼 법한 완벽한 나라였음. 토르가 없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 완벽한 황금의 세계였음

그런 곳에 끼어들자니 어쩐지 자신이 이물질처럼 느껴졌음

한가지 걸리는 것은 있군
말해 봐, 넓은 아량으로 들어주지
동생은 많이 자랐을테지
...
잘 지내나
본지 오래 됐어
그런가
그래, 아주 오래전에 봤지

‘오래전에’ 로키는 제 안에서 죽어버린 토르의 '동생'을 떠올리며 쓸쓸하게 웃었음

토르는 소파에 몸을 푹 파묻으며 팔짱을 꼈음. 뭐 잘 살고 있겠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건성건성 넘어가는 낙관적인 태도를 보니 죽은 동생의 대변인으로서 약간 부아가 치밈. 슬쩍 옆을 보니 토르는 포도를 우물거리며 눈을 감고 있음

만약 미드가르드에서 우연히 토르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로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스가르드의 왕좌에 우울하게 앉아 지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임

아, 왜 그러느냐
시끄러워

로키는 삐져나온 토르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성질을 냈음

쉴드 내부엔 누구 하나 앉아 있는 사람이 없었음. 데스크 직원이든 며칠 전에 들어온 신참 요원이든 다들 부산하게 몸을 움직였음.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음. 커다란 화면을 예의주시하는 요원들은 맡은 구역의 빨간 점 좌표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큰 소리로 숫자를 외치며 자판을 두드렸음

경력 20년에 달하는 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음. 그녀는 방금 개인 사무실에서 5분 동안 6명과 통화를 했음. 현장에 있는 콜슨에게 긴급 연락이 들어와 한 번에 두 명과 동시에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음. 사태가 긴박했기에 평소보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음

퓨리 국장의 개인 회선으로 통화를 마친 힐은 부하요원들을 불러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음

이틀을 내리 깨어있다가 겨우 소파에 길게 드러누운 그녀에게 누군가 커피를 내밀었음. 얼굴을 덮고 있던 팔뚝을 내리니 그녀의 전 상사임

페기, 엘파소에서 요양중이신걸로 알았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죠

너무 늙은이 취급하지 말게
슬프지만 사실인걸요
제법 아픈걸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셨음. 페기는 이제 80세였음. 일어나 있는 시간보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을 시기였음. 그럼에도 굽은 허리를 펴고 본부를 방문한 이유는 단순히 뉴욕 테러로 바쁜 옛 부하를 독려하기 위함은 아니었음

힐은 빠르게 용건부터 물었음. 페기는 빙긋 웃으며, 직선적인 성격은 여전하군. 소감과 함께 설명을 시작함

네가 이어받아 줄 프로젝트가 있어

비슷하게 침상에 누워 있을 나이인 제임스 뷰캐넌 반즈와 하워드 스타크의 이름을 필두로 페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기 충분했음

40대의 마리아 힐은 애틀란타 옛 집 창고에 묻어두었던 과거를 떠올렸음

많은 요원들이 쓰던 이름을 버리고 새로 짓는데 너는 꼭 마리아를 고집하더군
...아버지가 고심해서 지어준 이름이니까요
그때도 지금과 똑같이 말했지
기억력이 좋으신데요, 현역 복귀하셔도 되겠어요
아부가 어색해

힐은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함. 토르가 사라지고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CIA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함. 3년간 현장직으로 돌려지던 그녀는 몇 년간 따라 붙던 쉴드의 경호원을 격투술로 때려눕혔음. 며칠 뒤 콜슨 요원이 방문했고, 그와 함께 쉴드에 방문한 미스 블레이크는 닉 퓨리를 만났음

그에게 아버지의 활동이 기록된 두꺼운 파일을 받았음. 일주일 뒤, CIA를 그만두고 토르의 발자취를 쫓아 쉴드에 들어와서 힐 요원이 되었음. 그녀는 구석 캐비넷을 배정 받았는데, 다른 것들과 달리 구식에다가 모서리마다 칠이 벗겨진 허름한 것이었음

처음 캐비넷을 열었던 순간을 기억함

귀퉁이가 조금 찢어진 자신의 옛 사진이 붙어 있었음. 손등을 깨물고 울음을 삼키려 노력했었음

힐은 페기의 밑에서 쉴드 일을 배웠음. 콜슨도 많이 도와주었음. 당시 그는 토르와 연락을 하고 지냈지만 힐은 굳이 만나게 해달라 부탁하지 않았음. 언젠가 본인의 힘으로 찾을 생각을 했음

토르는 엄청나게 강한 주제에 요상한 부분에서 부끄러움을 탔음. 자길 보면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여러가지 대비책을 세워두기도 했음. 지금 마리아 힐은 레벨 9의 준 부국장급 요원임. 그리고 그녀의 허름한 캐비넷 안에는 사진 두장이 붙어있음. 마리아 블레이크와 도널드 블레이크

자유의 여신상이 무너지는 광경은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음. 하필 주말이었고 미국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를 정도로 그 상징성이 대단했기에 더욱 그랬음. 관광객들로 넘치는 자유의 도시 뉴욕에서 매초마다 사상자 카운트가 바뀌는 이번 테러는 2차대전 이후 금세기 최고의 이슈로 등극했음

콜슨은 아비규환인 현장에서 요원들을 지휘하며 단서를 찾기 시작했음. 조사가 진행될수록 이상한 점은 한 두개가 아니었음. 자유의 여신상은 관광명소였고 그만큼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한 장소 중 하나였음. 여신상이 무너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분이었음

근처 cctv를 확인해도 그 어떤 수상한 존재라던지 폭탄을 설치하기 위한 행적이 발견되지 않았음. 밤낮으로 방송되는 사고 뉴스에선 폭탄의 종류나 용의자, 테러의 목적 등을 오로지 추측에 의거해 내보냈음. 무엇 하나 확실한 사실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온갖 음모론이 뒤따랐고 정부는 골머리를 썩음

몇 년이 흘러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전문자들이 파견되어 조사를 시작했지만 의문을 명쾌히 해소해주는 획기적인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음. 시선 분란을 목적으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시작함. 쉴드는 독자적인 테러에 사용된 폭탄이 지구의 것이 아님을 알아냈음. 발표되지는 않았음

에릭은 낯선 남자의 방문을 받았음. 원래 처음보는 사람이 오면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을 콜슨이라고 소개했음. 콜슨은 들어오면서 벽에 걸린 보드에 좌르륵 붙어있는 엽서들에게 잠깐 시선을 주었음

필 콜슨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에릭은 그를 손님용 소파로 안내했음

콜슨은 에릭이 짚고 있는 지팡이를 흘끗 보며 자리에 앉았음. 뭔가 마실것을 권하자 한사코 사양했음. 에릭은 두 번 권하진 않았음. 둘은 마주보고 이야기를 시작함. 에릭은 10년 전 토르와 통화해 세무조사를 막아주었던 콜슨 요원이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니 어쩐지 감회가 새로웠음

콜슨은 에릭에게 쉴드의 자문요원으로서 일해줄 것을 요청했음. 세계 곳곳, 특히 미국 전역에서 관찰되는 중력 역전 현상에 대해 파악하는 중이니 도와달라함. 매력적인 제안이었음. 그간 몇 개나 되는 논문을 발표하며 물리학계에서 인지도를 쌓았지만 민간 차원에서의 연구는 한계가 있었음

쉴드의 지원하에 연구를 할 수 있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음. 그들의 오버 테크놀러지를 눈으로 확인할 생각에 들뜬 에릭은 콜슨이 내민 손을 잡았음

셀빅 박사, 혹시 토르와 연락이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당신이 연결책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 대답에 콜슨은 눈썹을 올리며 골똘히 고민했음

뭐라 입을 열려고 하다가 말을 아끼는 것 같았음. 에릭은 뜻밖의 단절상황에 마음이 편치 못했음. 현재로선 토르가 원하지 않는 이상 이쪽에서 먼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음. 제대로 잠적한 것임. Dear Angles 라고 적힌 빈 엽서들만이 그가 사라지지 않고 지구를 떠돌고 있음을 증명해 주었음

에릭은 콜슨에게 아이디 카드를 받아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 로스앤젤레스 외곽에 있는 쉴드 연구소를 방문할 수 있다고 말했음.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궁금하면 밖으로 나와서 손만 흔들면 대기중인 요원이 알려줄 것이라고 했음

지금까지 우리를 감시했다는 뜻입니까? 에릭은 어이가 없어 인상을 썼음. 불편한 침묵이 흐르자 콜슨이 짧게 사과했고 에릭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음. 이제 셀빅 박사는 고작 이 정도의 사소한 일로는 화내지 않았음. 콜슨은 실례가 아니라면 다리를 고칠수도 있다고 말함. 셀빅은 웃으며 사양했음

콜슨은 토르의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에 대해서 말해주었음. 감시를 붙인 것 또한 당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에릭은 턱밑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음. 알고 있음. 그는 정을 준 인간들이 자신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을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음

본인은 강하지만 약한 주변인들의 죽음에 쉽게 상처를 받죠. 그런 겁쟁이를 안심시키려면 우리들이 강해져서 신뢰를 주는 수 밖엔 없겠군요

에릭이 말했고 콜슨이 동의함. 둘은 토르를 주제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음. 박사와 요원은 제법 통하는 구석이 있었음

유명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한 입 맛보고 어이없는 꼬투리를 잡아 주방장을 불러냈더니 토르가 곤란한 얼굴로 로키를 말렸음. 미안하오, 이 친구가 입맛이 좀 까다로워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친구’ 워딩을 지적했음. 연인이란 호칭은 영 어색한가 보지? 싸늘하게 비웃으면 토르는 쩔쩔맸음

너를 위해서 이러는 것이다. 변명을 덧붙였음. 스티브와 함께 지내며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았던 경험을 생각하면 토르의 입장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었음

아무리 미개한 개미들이라지만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지. 제법 의식을 발전시키고 있잖아

아이러니하게 인간을 변호하기도 했음

식사를 마치고 나온 둘은 옷을 사고 술안주거리를 조금 샀음. 로키는 점원의 태도가 좋지 못했다 지적했고 토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느끼지 못했다고 대답했음. 네가 둔해서 그래. 언제나처럼 토르의 무신경함을 꾸짖는 쪽으로 대화가 흐름. 지겹게 반복되는 둘 사이의 데이트 패턴이었음

로키는 사람이 가득찬 파이오니어 광장에서 토르의 허리를 감싸고 그의 입술에 키스했음. 토르는 잠시 굳었다가 답례하듯 머뭇머뭇 키스를 돌려주었음. 입술이 닿을 때마다 토르는 반드시 눈을 감았음. 반대로 로키는 그의 속눈썹이 떨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눈을 뜨고 주시했음

몇 차례 버드키스와 프렌치 키스가 오갔음. 혀를 넣으면 움찔 떨리는 몸의 반응이 좋았음. 가늘게 눈을 뜨고 주위를 의식하는 모습도 제법 볼 만 했음. 로키는 애초에 하찮은 개미들의 이목 따위 신경쓰지 않았지만, 변한 의식으로 인해 따뜻하고 부러움 담긴 시선이 느껴지면 기꺼이 그것을 즐겼음

인간과 한걸음 떨어진 토르는 말수와 행동력이 많이 줄었음. 로키가 오면 인사하고, 투덜거리면 받아주고, 데이트를 할때도 대부분 로키가 먼저 계획을 잡았음. 로키가 부탁하면 토르는 거절할 줄 몰랐음. 형이 오로지 자신만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만족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음

가끔 토르는 거리에서 마주친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과거 함께했던 인연들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한참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처음엔 화내던 로키도 차츰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갔음. 시간은 데미갓보다 필멸자들에게 훨씬 잔인하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했음

인간들로 가득한 도시에 살면서도 그 어떤시기보다 고립된 생활을 하며, 토르는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로키가 주는 사랑에 안주하고 살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