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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주는 토르(스팁토르, 로키토르) 17

장정 다섯이 달려들어서 씨름한 끝에 토르는 비브라늄 수갑과 목줄이 채워져 헬리케리어로 옮겨짐. 토르는 많은 죄를 저질렀음. 그의 손에 죽은 이들은 상당수가 하이드라 조직원이긴 했지만 드물게 쉴드측 요원도 있었음. 당연히 내부인들의 시선이 고울리 없었음

스티브도 토르가 저지른 짓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음. 피해자가 한 둘이 아님. 단 셉터에 의해 일종의 정신조작 상태로 로키의 명령을 따랐다는 부분이 참작되어 어영부영 처분이 미뤄짐. 퓨리는 토르가 깨어날 때까지 감금하도록 지시했음. 토르는 사방이 특수유리로 제작된 감호실에 갇혔음

그간의 전투를 통해 토니가 분석한 데이터로 토르의 근력을 추정해서 만들어진 전용 감옥이었음. 반나절 기절해 있던 토르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음. 스티브는 속이 탔지만, 갑자기 날뛸 가능성을 염려하는 주위의 만류에 유리 너머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음

벗겨진 갑옷과 칼은 연구를 위해 옮겨짐. 토르는 품이 넓은 흰색 환자복을 입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가 초점 없는 시선을 들었음. "몸은 좀 어때요?" 유리에 손바닥을 댄 스티브가 말을 걸었음. 입모양대로 감호실 구석에 달린 앰프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옴. 토르는 스티브를 빤히 바라봄

"테서렉트의 위치를 알려주시오." 뒷짐을 쥔 퓨리가 물었음.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린 토르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음. 천장에 연결된 목줄이 철겅거렸음. "모른다." 주위가 술렁거렸음. 지켜보는 사람들은 세뇌 여부를 의심했음. 계속 로키를 향해 복종의 자세를 보인다면 다른 조치를 취해야했음

몇몇이 냉각기에 가둬야 한다는 둥 다소 듣기 불편한 말을 주고받았음. 스티브가 눈치를 주자 즉시 입이 다물어짐. 그러나 술렁거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음. 스티브는 유리 너머를 초조하게 바라보았음. "모른다?" 퓨리가 의문을 표했음. 그러자 토르가 눈을 느릿하게 감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음

"연구소에 갈 일이 거의 없었소. 어쩌다 들르는 것도 로키의 마법을 통해서였지. 안타깝지만 나는 모르오." 퓨리는 잠시 뜸을 들이다 고개를 끄덕였음. "돌아와서 기쁘군. 도널드 블레이크. 비록 환영할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의 입에서 케케묵은 옛 이름이 나오자 토르는 눈을 내리깔았음

"더이상 그 이름을 쓸 자격이 없어. 원주인에게 미안할 따름이군." 토르는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며 죄를 고백했음. 자신이 저지른 모든 살인을 기억했음. 죽인 사람이 총 몇 명이고 어떤 방식으로 살해했는지 한 사람 한 사람 눈앞에 선선하다고 말했음. 자책이 너무 깊어 위로할 방법을 찾지 못함

배신은 익숙했음. 여태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배신과 뒤따르는 죽음을 목격하며 살아왔음. 때론 자신이 그 논란의 소용돌이속에 서기도 했음. 하지만 이번은 전과 완전히 달랐음. 로키는 아스가르드에서부터 함께 자란 형제였음. 그에게 당한 배신은 세상이 무너질만큼 지독한 충격이었음

삶이 괴롭고 힘들어도 흐릿한 기억 속 ‘아스가르드’는 토르에게 믿는 구석이었음.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을 걷다보면 언젠가 기억을 찾게 될 터였음. 아스가르드는 안정이었음. 그래서 로키가 정체를 숨기고 접근해 연인이라 속였을때 그의 불멸성을 아스가르드에 덧씌워 당연하다 여기며 믿었음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임. 같은 시간이 흐른다고 그의 모든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진 않을텐데. 스티브의 귀 옆에 검을 꽂은 토르는 모든 지배를 벗어났음. 그리고 의식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올랐을때 그를 감싼 것은 절망이었음. 당장이라도 발밑이 쑥 꺼져 니플헤임으로 빠져들 것 같았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유리 벽에 기댔음. 과학자와 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고 입구로 보이는 닫힌 유리문 바로 앞에 스티브가 서있었음. 토르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자 움찔 놀라더니 유리를 짚고 말을 걸어왔음. "몸은 좀 아때요?" 상냥한 목소리에 어지러웠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음

입을 열지 않았음. 목소리가 흔들려 그의 걱정을 확신으로 바꿀 것 같았음. 그러나 퓨리의 질문은 토르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음. 로키는 세뇌한 학자들과 엄청난 짓을 꾸미고 있었음. 토르는 고개를 저으며 솔직하게 대답함. 로키의 지배에서 벗어났나 싶었는데 이젠 이들에게 종속된 기분이었음

마취가 통하지 않는 몸이라 피가 솟는 상처에 제대로된 의료조치를 취하기 전에 정신을 차려버림. 그탓에 토르는 간간히 피를 토했음. 의료진들은 가슴의 상처를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설사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맹수의 우리로 선뜻 들어가려는 사람은 없었음. 그래서 스티브가 나섰음

스티브는 지혈제와 거즈, 소독약등이 담긴 철제 트레이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음.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비하라는 주의를 한 귀로 흘리며 성큼성큼 걸어가 토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음. "잠깐 옷을 걷을게요." 스티브가 가슴 쪽 단추를 풀려고 하자 토르가 결박된 양손을 들어 손목을 덥썩 잡았음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밖이 술렁였음. 토르가 "됐어." 짧게 거부했지만 "아프면 말해요." 들은채도 안하고 억지로 토르의 손을 끌어내렸음. 가슴 중앙에 붉은 속살이 드러났음. 길쭉한 지혈제로 상처 주변을 철컥철컥 누르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동안 토르는 미동도 없이 스티브의 얼굴만 바라봄

"많이 다쳤군." 토르가 말하자 스티브가 시선을 올렸음. 그는 스티브의 얼굴과 목에 난 거뭇한 상처와 멍을 보고 있음. "금방 나아요." 안심시킬 요량이었지만 통하지 않았음. "미안하네." 착잡하게 중얼거렸음.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 얌전히 치료나 받아요." 단호하게 요구함. 토르는 입을 다물었음

스티브는 언제까지 토르를 계속 가둬둘 것인지 물었음. 퓨리는 힐에게 모든 권한을 이관했다고 대답함. 힐은 토르를 풀어주지 않았고 퓨리 역시 그를 구금해야 한다는 부국장의 판단을 존중했음

"바튼 요원은 괜찮은가?" 토르의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딴생각에 빠져있던 스티브가 퍼뜩 고개를 들었음

"아직 집중치료실에 있지만 곧 괜찮아 질 거에요." 간호사에 들은 대로 전하자 토르가 씁쓸하게 웃었음. "다행이군."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고맙네." 뒤통수를 툭 유리 벽에 기댐. 토르의 눈이 천장에 매달린 사슬로 향했음. 조용히 지켜보던 스티브가 퓨리에게 불만을 표했음

"저 사슬 좀 어떻게 안됩니까?" 퓨리는 어깨를 으쓱임. "그건 힘들겠군. 일종의 보험이라." 대상이 제어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충격이 신경에 직접 가해지는 구조로 제인이 쓴 것의 강화 장치였음. 단순히 가두기만 하는건 안심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무시하지 못함. 스티브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

토르 또한 투명한 감옥에 갇혀 동물원 원숭이가 된 제 신세에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았음

구금실 문이 열리고 목에 깁스를 한 토니와 뒤를 따라 쭈뼛거리는 배너가 함께 들어왔음. "댁 애인 정신 차렸다고 해서 보러 왔는데.. 테서렉트 위치는 알아냈나?" 토니의 말에 스티브가 고개를 저었음

토니는 혀를 차며 걸어가 스티브 옆에 섰음. 유리 너머를 보는 시선엔 불신이 가득함. 배너는 한 연구원에게 차트를 받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음. 토르는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음. "안에서 들려?" 유리 너머로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만 기울여 토니가 묻자 스티브가 고개를 작게 끄덕임

토니는 목의 깁스를 만지며 인상을 찌푸렸음. "댁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헬리케리어가 선회하는지 약한 진동이 느껴짐. 배너는 차트를 넘기다 토르 쪽을 슬쩍 흘겨봄. 바닥에 주저앉은 금발의 남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음. "뉴질랜드 서부 저택지구 근처에서부터 수색을 시작해야 한다는군요.”

“광범위해.”
“압니다.”

배너는 토니의 투덜거림을 익숙하다는 듯 넘김. 배너는 콧잔등을 긁으며 감옥 앞에 선 둘에게 걸어감. 옆에 서서 차트를 넘기자 토니가 받아서 훑음

"놈이 뭘 할지 대충 예상이 되는 걸."
"아마도 포탈을 열겠죠. 너머에서 얼마나 대단한 게 튀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영감님 애인같은 놈들이 수백마리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닐까?"
"말조심하게."
"아이고 무서워라."

배너는 토니와 셀빅의 연구일지에 대해 정보를 공유함. 두 이공학자들의 대화에 끼지 못한 스티브는-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다만 토르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상태를 살폈음

"미안하오." 

여태까지 무슨 말을 던져도 반응이 없던 토르가 먼저 사과를 건네옴. 토니와 배너가 동시에 토르를 바라봄. 그는 천장을 보던 얼굴을 내려 둘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말했음. 

"정말 미안하오." 

단단한 목소리였음. 토니는 한숨을 쉬며 비꼬았음. 

"죽은 사람 앞에서도 똑같이 말해보시지."'

스티브는 불편한 표정을 비쳤지만 나서서 말리진 않았음. 토르는 눈을 내리 깔았음. 토니는 그런 담담한 태도에 분통이 터졌지만 스티브를 보고 끙- 소리를 내며 두손을 내저었음. "골치 아프네. 토니 아웃." 차트로 시선을 돌려버림. 뒤이어 팔짱을 낀 배너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질문을 던졌음

"토르, 셀빅 박사가 셉터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했죠." 토르가 배너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음. "마지막으로 보았을때까진 그랬소." 배너는 한동안 에릭과 연구소에서 함께 일을 했었음. 통하는 부분도 많았음. 배너는 한동안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음. “닥터 셀빅은 신중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테서렉트를 연구하며 두 종류의 고민을 안고 있었어요. 안정과 파격. 늘 전자를 택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군요.”

배너는 입가를 쓸며 눈알을 굴렸음. 잠을 제대로 못잤는지 눈밑이 거무스름함

“브롱크스 연구소의 자료는 소실되었지만 셀빅 박사의 일지는 제 머릿속에 있어요.”

검자를 세워 이마를 톡톡 두들김. "만약 그가 위험한 모험을 감수한다면... 짐작가는 부분이 있어요." 배너의 말에 토니가 차트를 넘기며 전문용어를 꺼냈음. 테서렉트를 사용해 포탈을 열려면 탄소를 핵융합 가능하게 할 만큼 엄청난 온도가 필요하다느니 이해하기 힘든 내용의 정보가 쏟아졌음

옆에서 배너가 간간히 추임새를 넣으며 설명함. 세뇌 상태였던 토르에게 윤리성이 제거되었듯 셀빅 박사도 비슷한 상태라면 예측이 가능함. 그동안 비용문제나 윤리적 도의적 차원에서 몸을 사릴수밖에 없었음. 그러나 거침없어진 닥터 셀빅은 분명 미뤄둔 꿈을 이루고자 할 것이라고 배너가 추측함

토르는 그들이 하는 모양새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음

"모든 일이 끝나면. 나의 처분은 그대들에게 맡기겠네."

토니가 인상을 팍 찌푸렸음

"안죽는다며? 종신형 선고하면 평생 감옥에 틀어박힐거야?" 
"원한다면."
"연구실에 묶어놓고 온갖 비윤리적인 실험의 샘플로 이용당한다고 해도?"

"그걸로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지."

허! 토니는 말문이 막혔음. "토르 그런 짓은 하지 않아요." 대신 스티브가 부드럽게 달랬음. 다른 방법이 있을것이고 자신은 옆에서 돕겠다고 말함. 토르는 씁쓸하게 웃었음. "나는 괜찮네 스티브." 그는 배너에게도 솔직하게 사과했음

주먹을 뻗은 순간 죽이겠다는 각오도 했다고 이야기함. 너무 솔직해서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음. "배너 저 친구 정신 차렸나본데 멀쩡한 손발로 내 몫까지 때려주지 않겠어?" 토니가 배너의 옆구리를 찌르며 부추기자 토르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음. "그건 말리고 싶군. 그러다가 본인이 다쳐."

토니가 입술을 비죽임. "헐크가 튀어나와서 대신 때려줄텐데 뭐가 걱정이야." 토르는 피식 웃었음.

제인이 보러 왔음. 그녀는 약간 곤란한 듯 웃으며 장치를 사용한 것을 사과했음. 토르는 고개를 저으며 오히려 자신을 멈출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대답했음

맑아진 눈으로 다시 본 서른살의 제인 포스터는 과거 사랑했던 제인 포스터와 많이 닮긴 했지만 확연히 다른사람이었음. 토르는 에릭을 걱정하는 그녀를 달래주었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구해내고 사태를 바로잡겠다고 약속했음. 자신에게 하는 맹세이기도 했음

먹고 마시지도 않은 채 사흘이 지났음. 아스가디언의 경이로운 신체는 인간과 그 효율을 달리했음. 스티브는 매일 찾아와 토르의 상태를 보고받으며 말을 걸었음. [괜찮아] 똑같은 말만 했음. 그리고 사흘째 밤. 토르는 검은 옷을 입은 낯선 남자의 방문을 받았음. 처음엔 로키의 스파이인가 싶었음

남자는 토르가 익히 아는 표정을 짓고 있었음. 자신을 쉴드의 7급 요원이라고 소개했음. 남자는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유리문 앞까지 다가가 익숙하게 패드를 조작했음.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했는지 문이 반쯤 열리다 말았음. 내부에 붉은 조명이 들어왔음. 토르는 기대앉은 채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봄

그는 품속에서 총을 꺼내 소음기를 장착하며 안으로 들어왔음. "나는 네가 죽인 로버트의 가장 친한 친구였어." 소음기가 철컥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끼워졌음. 검은 가죽장갑을 낀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렸고 총구가 토르의 이마를 꾹 눌러왔음. 증오에 찬 시선이 적의를 가득 품고 있음

저 얼굴을 앎. 많이 보았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토르는 구속된 손을 올려 그의 손목을 잡았음. 남자는 움찔 떨면서도 멈추지 않고 이마를 꾹 눌렀음. "이런 걸론 죽지 않소." 담담한 목소리에 남자가 이를 부득 갈았음. "괴물새끼." 방아쇠가 당겨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퍼졌음

침을 꿀꺽 삼키며 총신을 살짝 뒤로 빼자 은색 총알이 우그러진채 얼굴선을 따라 바닥으로 떨어짐. 남자는 조용히 분통을 터트렸음. 괴물, 쓰레기, 개같은자식! 마구잡이로 튀는 욕설을 들으며 토르는 눈을 내리깔았음. 이 자의 분노는 정당했고 토르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속죄할 길을 찾지 못했음

몇차례 더 발사되었지만 총알은 피부를 뚫지 못했음. 남자는 결국 끅끅거리며 울기 시작했음. "네놈은 악마야!" 토르는 자조적으로 웃었음. "맞는 말이다." 동의하더니 구속된 양손을 들어 총을 든 손을 감싸 잡고 천천히 아래로 이끌었음. 남자는 의아해 하면서도 토르가 하는데로 내버려 두었음

총구가 얼굴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음. 목에 달린 구속구를 지나 가슴까지 내려옴. 토르는 손을 놓고 가슴께 환자복 천을 잡아 내렸음. 툭툭- 단추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났고 벌어진 옷 틈새로 거즈로 감싸인 가슴의 상처가 보였음. 피가 조금 번져있음

"여기를 노린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오."

남자는 얼떨떨하게 굳었다가 이내 험악한 표정을 지었음. "이런다고 동정할 줄 아나?" 토르가 희미하게 웃었고 그것이 사내를 자극했음. 푹푹- 총이 몇 차례나 낮은 발사음을 뿜었음. 연한 화약냄새가 피어올랐고 환자복 상의가 붉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함. 사내는 거칠게 숨쉬며 손을 떨었음

순식간에 주위가 고요해짐. 상체가 유리를 따라 스르륵 미끄러졌음. 털썩 소리와 함께 완전히 쓰러져 움직임이 없음. 흩어진 금발 사이로 피가 스며들기 시작함. 남자는 무기를 떨어트리고 천천히 뒷걸음질쳤음. 끝을 확인해야 했지만 알 수 없는 자괴감에 휩싸여 감옥 밖으로 도망치듯 튀어나감

고통과 동시에 눈앞이 가물가물해졌음. 이대로 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정신을 차리고 로키를 막아야 한다는 책임 섞인 의무감이 반반씩 뒤섞였음. 그러는 사이 삐익- 귓가에 시끄럽게 울리던 이명이 점점 멀어지며 의식이 어둠속으로 잠겨들었음. 그 어느때보다 죽음에 가까웠고 또한 포근했음

감옥의 전력이 차단되고 5분이 지나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음. 요원들과 연구원이 들이닥쳤음. 감옥을 지키고 있던 요원 둘이 잠들어 있음.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쓰러진 토르를 확인하고 캡틴을 불렀음. 위급상황에서 토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헬리케리어 내에서 그밖에 없었음

호출을 받고 달려온 스티브는 감옥 안에 들어서서 한동안 숨을 멈췄음

"들것을 가져와!"
"생명반응은 어때요?!"
"누군진 몰라도 전력을 끊어놨어."

소란스러웠음. 스티브는 미동도 하지 않는 토르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음

누군가 어깨를 잡아왔음. "캡틴. 일단 이 자를 옮겨 주시겠습니까. 스캔해보니 가슴부위에 뭔가 있는데 빨리 적출해야 합니다." 퍼뜩 정신이 든 스티브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급히 무릎을 꿇었음. 떨리는 손을 몸 밑에 집어 넣고 자세를 바르게 함. 확실히 무거웠지만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음

천장까지 매달린 사슬이 철컥 소리를 내며 풀림. 스티브는 토르를 안고 의료진의 지시를 받아 침착하게 이동했음.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스티브의 하얀 티셔츠와 손이 축축하게 젖어들었음. 흘끗 내려다보니 표정이 매우 평온해 보였음. 스티브는 아랫입술을 깨물었음

"무슨 생각이었어요."

토르는 처음보는 천장을 확인했음.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귓가에 울리는 저음에 고개를 돌렸음. 침대 옆에 스티브가 서있었음. 표정이 서늘함. 토르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유리 감옥이 아닌 평범한 방이라는 것을 깨달았음

"스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고 있어요."

예의 바르고 상냥한 목소리였지만 평소와 달리 안에 깃든 감정이 예사롭지 않음. 몸을 일으키려 하자 단단히 구속당하고 있는 터라 쉽지 않았음. 마음 먹으면 가능할 것 같았지만 그냥 포기하고 힘을 빼버렸음

"어째서 막지 않았죠?"
"그 사내는 무사한가? 처벌을 원치 않네."

"원한다고 마음대로 되는게 아닙니다."

냉정한 말투였음. 토르는 스티브를 바라봄. 늘 다정했던 남자가 처음으로 격렬한 분노를 겉으로 보이고 있었음. "당신은 삶을 포기하려고 했어요." 곧은 눈이 부담스러워 토르는 시선을 피했음. "그러면 안 되나?" 말이 끝나자 스티브가 거칠게 어깨를 잡아왔음

가해지는 악력이 강했음. "당연히 안 됩니다. 절대로." 갑자기 흔들리는 바람에 짙은 통증이 느껴졌음.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오자 어깨를 압박하는 힘이 조금 누그러졌음

"미안하.."
"미안하단 말은 그만해요. 그 대신 다음부턴 이런 멍청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해요."

"으음 스티브."
"약속."
"...그러겠네."

확실한 맹세를 받고서야 손을 거두었음. 그러더니 곧장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주었음. 토르는 시야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손가락을 흐린 눈으로 바라봄. 스티브은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베개에 말려들어간 머리카락도 정돈해줌

힐이 들어왔음. 저벅저벅 걸어온 그녀는 스티브 옆에 나란히 서서 싸늘한 눈으로 토르를 내려다 보며 할 말을 전했음. 토르의 구속을 한정적으로 해제하겠다는 뜻을 밝힘. 대신 언제든 제압이 가능한 구속구를 목에 달고 로키를 찾아 테서렉트을 확보할때까지 이쪽에서 일해줘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음

토르는 그러노라 답했음. 잠시 빤히 내려보던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음. 이마에 주름이 한 줄 더 추가됨. "제발 내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줘요. 아직 50대 중반인 딸을 심장마비로 보내고 싶으면 간밤처럼 행동해도 좋아요." 협박 아닌 협박을 했는데 의외로 통했음

토르는 목에 구속구를 달고 풀려남. 갑옷과 칼은 연구를 목적으로 압수당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음. 멤버들과는 헬리케리어의 브리핑룸에 어색한 재회를 가졌음. 나타샤는 토르가 [살짝 맛이 간 상태] 였다는 걸 쿨하게 받아들였음. 가장 많이 다친 바튼도 비슷했음

토니는 토르를 볼 때마다 비꼬며 시비를 걸긴 했지만 진지하게 탓하는 내용은 아니었음. 배너도 의외로 편하게 대했음. 그는 토르에게 공격 당한 뒤 공식적으로 30초간 사망 판정을 받은 경험이 있었음. 그래도 에릭와 가깝게 지내며 토르의 좋은면모를 자주 들었던 탓인지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음

토르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이야기했음. 로키는 테서렉트를 이용해 치타우리 군대를 소환하려 한다고 함. 토니는 테서렉트와 셉터를 사용해 지구를 지배하는게 그의 목적이 아닌지 추측함. "대통령 출마라도 시켜주고 싶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나타샤가 손가락에 끼운 작은 칼을 돌리며 탄식했음

"미친놈 속을 어떻게 알겠어. 싹 지배해서 자기 발밑에 두려는거겠지" 바튼이 투덜거렸음. "로키는 아스가르드의 왕이오." 토르가 입을 열자 "그래서 뭐 대우가 필요하다고?" 토니가 건들거렸음. 토르는 고개를 저음. "왕의 지위에 올랐어도 거기에 전혀 미련이 없다. 녀석은 권력에 욕심이 없소."

다들 대꾸없이 바라보자 계속 이어짐

"또 그는 나에게 집착한다. 제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지."
"그건 즉 너희 형제 사랑싸움에 지구가 박살난다 이 말이야?"
"부정은 못하겠군."

토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음

어벤저스가 로키의 저택에 들이닥쳤을때 예상대로 그는 이미 자리를 뜬 후였음

예상은 했지만 씁쓸한 건 어쩔수 없었음. 토르는 하얀 말 조각상 아래에 서서 음울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봄. 저택은 여기저기 파괴되고 엉망이었지만 장미정원은 여전히 아름답게 유지되어 있었음. ‘지금 세뇌를 푼다면... 너는 날 찌를까?’ 로키의 환영이 토르의 등에 달라붙어 은밀하게 속삭였음

세뇌가 풀린 지금도 그렇다고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함

“차라리 내가 가면..”
“그에게 돌아갈 겁니까?”

속삭이듯 혼잣말을 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여왔음. 토르가 몸을 돌리자 스티브가 서있음. 저택 내 수색은 금고 몇개를 빼곤 마무리 되었음. 멀리서 벽을 허물고 경계를 부수는 소리가 요란함

“그럴 생각은 없네.”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음. 그러자 스티브가 성큼 걸어와 토르의 앞에 섰음. “망설임이 느껴지네요.” 말하며 토르의 얼굴을 쓸었음. 이런식의 스킨쉽은 전부터 자주 있었음. 그러나 여기선...

“만약 당신의 동생이 이 모든 파괴를 그만두고 함께 떠나자고 한다면 받아들일 건가요?”

그 물음에 토르는 말문이 막혀버렸음. 스티브는 본질을 파고들었음. 로키를 향한 무른 마음. 세뇌해서 사람을 죽이게 만들고 제 마음대로 조종한 악질적인 짓거리를 그저 그런 장난으로 호도해 버리는 토르를 겨냥하고 있었음

“그건...”
“토르, 전 당신이 무슨 선택을 해도 존중할 겁니다. 하지만...”

스티브는 눈을 내리깔았음. 뺨을 쓰다듬는 손은 여전히 다정했음

“그 자는 토르를 상처입히고 있어요. 동생이라 생각하고 끝없이 양보하다 보면 분명 돌이킬 수 없어질 겁니다.”

그가 맞음. 로키가 동생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토르는 사건을 한없이 축소시켰고 그 결과 혼자 해결하려다가 이꼴임

‘형 만은 나를 탓해선 안돼!’ 가슴에 박힌 절절한 외침에 여지껏 끌려다니고 있음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내 사랑을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스티브는 부드럽게 말했음. 천천히 한발씩 내밀어 바짝 붙었음.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토르는 심장이 덜컹이는 것을 느꼈음

스티브는 양팔을 벌려 토르를 껴안았음. 두껍고 긴 손이 토르의 큰 몸을 폭 감쌌음

“슬프네요.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머뭇거리던 토르도 결국 그를 마주 안았음. 심장 뛰는 소리가 요란했는데 마주 닿였다보니 자신의 것인지 상대의 것인지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뒤섞여버림

“70년을 넘어왔음에도 남은 내 세월은... 당신에겐 눈 깜빡할 사이로 느껴지겠죠.”
“스티브 나는 자네를 사랑했어.”
“과거인가요?”
“지금도 여전해.”

이어질 말이 목 아래로 삼켜짐. ‘로키를 내칠수 없어.’ 토르는 스티브의 어깨에 제 얼굴을 묻었음. 기분 좋은 장미 향기가 은은하게 코끝을 찔렀음

로키와 포옹한 곳에서 옛 연인과 포옹하고 있다니 기분이 묘했음. 스티브는 토르의 등을 위아래로 부드럽게 쓸어줌. 저보다 훨씬 나이 많고 강하고 둔한 남자를 쉽게 깨질 유리처럼 취급하는 것도 여전했음. 스티브 로저스는 좋은 사람이었음. 그래서 토르는 하기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 할 말을 꺼냈음

“나를 잊고...” 맞닿은 몸이 딱딱하게 굳었음. “새로운 사랑을 하게나.” 토르는 천천히 그의 등을 쓰다듬었음. 의외로 눈물은 어떻게든 참아졌음. 둘은 서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음. “아프군요.” 육체적인 고통을 말함이 아니었음. 토르 역시 겪어본 일이었기에 누구보다 스티브의 마음을 이해했음

그러나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음. “기다릴게요.” 담담하게 말함. “미련한 건 압니다.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당신이 괴로워 하는 모습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요. 잘못된 길을 가는 것도 봐주지 못하겠네요. 알잖아요 내 고집.” 토르가 고개를 들었음. 따르듯 스티브가 웃으며 볼에 키스했음

"이 정도는 괜찮죠?"
"안 된다고 하면?"
"사과하고 한 번 더 할게요."
"내 의견을 존중한다더니."
"존중과 구애는 엄연히 다른겁니다."

뻔뻔하게 이어진 대화에 둘은 결국 피식 웃어버렸음. 스티브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음. 알고 있었지만 씁쓸했음. 결국 토르는 답하듯 그의 볼에 가볍게 키스했음

셉터의 지배가 풀린 것을 알텐데도 로키는 사람을 보내오거나 수작을 부리지 않았음. 그 고요함이 마치 푹풍전야 같아서 오히려 신경 쓰였음. 토르는 그동안 멤버들과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했음. 쉴드의 스파이가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로키 밑에서 일하던 사설 용병단을 하나하나 잡아들여 심문했음

그들로부터 뽑아낸 지명을 조합해 어벤저스는 몇 군대의 아지트를 급습했음. 많은 비밀스런 무기를 압수했고 감금된 과학자와 요주의 인물들을 구출해냄. 토르는 사람을 습격하는 것엔 극도의 거부감을 발휘했기에 백업 임무를 맡았음

“거 좀 나와서 주먹만 적당히 휘둘러 주면 빨리 끝나겠는데.”

토니는 투덜거리면서도 강요하진 않았음. 일은 신속하게 마무리됨. 멤버들은 개개인이 강했고 여러 번 함께 작전을 수행하면서 팀워크도 좋아졌음. 세뇌가 풀린 토르는 잘 웃고 유쾌한 사내였음

방금 30명이 넘는 민간인을 구출한 토르는 맥주를 마시며 스타크 타워에 마련된 트레이닝룸으로 향함

역기의자에 앉아서 스티브가 하이 플라잉 머신을 당기는 모습을 보며 말을 걸었음. “그거 지겹지 않나?” 토르가 묻자 “해야 할 일과죠. 지겹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요.” 스티브가 대답하며 숨을 훅훅 내쉬었음. 토르는 다시 맥주를 꿀꺽 마셨음. 목이 뒤로 넘어갈때마다 끼고있는 구속구가 부각됨

잠시 철컹거리는 구속구를 흘겨 보던 토니는 배너가 가져온 차트를 받았음. “정체 불명의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했어.” 그의 말에 스티브와 토르가 동시에 고개를 듬. 편한 복장으로 단백질 쉐이크를 들고 트레이닝 룸에 들어오던 바튼과 냇도 이쪽을 주목함. 배너가 화제를 이어감

“예상대로 뉴질랜드네요. 그런데 워낙 미약한 반응이라 완벽한 포털을 통해 나왔다고 보긴 어렵겠어요. 뒤늦게 수색해도 발견하지 못했고..”

스티브가 손잡이를 놓으며 물었음

“생명체라면 치타우리를 말하는 겁니까?”

배너는 고개를 저었음

“현재로선 알 수 없어요. 지면을 스캔했을 뿐이죠."

”생명 반응이 지구상의 그 어떤것과도 일치하지 않아서...”
“전투가 벌어지면 누군간 이번에도 나서지 않겠지?”

토니가 말했음. 콕 찍지 않았지만 주어가 누군지는 자명했음. 토르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음

”그들과의 싸움엔 앞장서겠네.”

토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진의를 의심함

“왜? 로키가 치타우리도 엄연히 자아를 가진 생명체라고 말했다며? 좀 호전적일 뿐이지 지구와 똑같은 행성에서 자기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왔을텐데. 그들은 네 이타심의 대상이 아니야?”

토니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묻자 토르는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음

토니와 배너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빈 맥주캔을 쓰레기통에 넣고 배너 옆에 있는 냉장고에서 새 캔을 꺼냈음

“나는 너희들을 훨씬 사랑한다.”

맥주캔을 따며 말함. 토니는 인상을 확 찌푸림

“그거 엄청 오만하게 들리네. 전부터 생각한건데 난 댁의 그 기묘한 인간 사랑이 도무지 이해가 안가”

토르는 맥주캔을 입에 물고 토니 옆에 서서 왼팔을 크게 둘러 어깨동무를 함. 

“사랑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나?” 

껄껄 웃음. 

“저기 나 이 팔에 질식사할 뻔한 경험이 있어서 트라우마 도질려고 하니까 좀 놔주지?” 

투덜거리자 스르륵 풀렸음. 실없는 웃음을 터졌고 방안에 부드러운 공기가 감돌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