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rite

gotg / 피터 퀼과 욘두 우돈타

피터 퀼은 중요한 거래를 망가트리고 거래 물품을 챙겨 도망쳤다. 늘 있었던 일이라 욘두는 주어진 각본을 연기하듯 우주를 가로질러 밀라노를 추적했다. 익살맞게 웃으며 자기를 잡아 보라는 피터의 통신에 욘두는 미소를 지으며 붉은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이 덩치만 큰 나약한 생명체는 자신이 꽤 사랑받는 존재임을 잘 파악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욘두는 타인에게 가진 패를 보여주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했다. 그런데도 그 패를 가지고 한술 더 떠 저를 이용하려 드는 피터의 괘씸한 행동을 눈감아주고 있었다. 욘두는 그것을 놀이라고 생각했다. 피터는 제가 가진 약간 특별한 전리품이었다. 보통 소유물은 얌전히 주인의 말을 들어야 했지만 가끔은 삐죽 튀어 나가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피터 제이슨 퀼이다.



그렇다. 

평소와 같았다. 

쫓는 자도 쫓기는 자도 결말을 알고 있다. 

이것은 단지 과정을 즐기기 위해 시작한 멍청한 게임이다. 



그랬기에 욘두 우돈타는 밀라노 구석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커다란 덩치가 꿈지럭거리며 일어나기를, 그 바보 같은 웃음을 짓기를, 변명을 지껄이기를 기다렸다.



라바저들이 웅성거렸다. 멍청한 놈들이다. 죽어? 이 녀석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녀석들은 피터 퀼을 모른다. 



욘두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웅크린 채 쓰러져 있는 커다란 몸을 내려다보았다. 숨을 쉬지 않았다. 눈을 감고 형편없이 구겨져 있다. "의료병을 불러!" 가까이 다가온 크래글린이 크게 소리쳤다. 욘두는 한족 무릎을 꿇고 앉아 피터의 진한 금발을 쓸어보았다. 피부에 닿는 느낌이 서늘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일까. 마지막 통신은 일주일 전이었다. 



일어나라, 꼬맹아.



어쩌면 이것도 계획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테란들은 저도 모르는 방식으로 동면하는 습성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늘 저를 속여왔으니 이번 역시 뒤통수를 치려는 걸지도. 차가운 피부를 쓰다듬던 욘두의 귀에 크래글린의 침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스." 욘두는 고개를 돌려 명령했다. "플라스크 수습하고 항로 기록해." 크래글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피터의 발치에 굴러다니던 초록빛 액체가 든 플라스크를 집어 들었다. 손짓으로 부하 몇 명에게 무어라 지시해 밀라노의 조종간에서 데이터를 뽑아냈다.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긴 게임의 끝은 속이 쓰릴만큼 허무하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아는 것을 행하기로 했다. 욘두는 저에게 플라스크를 맡겨 안드로메다 성운을 가로지르도록 만든 의뢰인을 잡아들여 고문했다. 비명을 지르며 모른다고 잡아떼던 녀석도 욘두가 환하게 웃으며 휘파람을 불자 싹싹 빌며 아는 것을 털어놓았다. 초록빛 액체는 개봉되지 않더라도 일주일만 지나면 자동으로 플라스크를 비집고 나와 에클렉터안을 떠돌았을 것이다. 라바저들을 초토화 시키기 위한 계획이었다. 크래글린이 밀라노의 데이터를 에클렉터로 다운로드해 분석하자 피터의 메세지가 떠올랐다. 텍스트로 이루어진 짧은 메모였다. 플라스크에 든 물질을 해독하기 위해 고대인의 혼혈인 자신의 피를 사용했으며 혈청을 열 개 남짓 만들었으니 필요하다면 쓰라는 내용이었다. 혹시 몰라 밀라노의 냉장고에 제 피를 넣어두었다는 덧붙임도 있었다. 실제로 작고 지저분한 냉장고 안에는 먹다 넣어둔 샌드위치 반쪽과 두 팩의 피가 들어있었다. 밀라노 안으로 들어섰을때 중독되었던 라바저들은 모두 혈청을 맞고 무사했다. 그것은 욘두도 마찬가지였다. 피터 퀼의 피로 만들어진 해독제는 혈관을 타고 몸에 흡수되었다. 게임의 마지막은 피터 퀼의 승리다.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으니까.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