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털이에 담배를 비벼 끈 김신부는 건장한 경호원의 뒤를 따랐음. 비싸보이는 장식품들이 가득 놓인 복도를 감흥없는 눈으로 훑으며 지남. 사무실 문을 열자 죠태오가 있었음. 그는 허리를 일으켜 마호가니 책상에 잔뜩 쌓인 서류를 살피고 있었는데 굉장히 바빠 보였음. 오랜만입니다 신부님. 전화라도 한통 주셨으면 기다리실 것 없이 바로 모셨을텐데. 태오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음.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왔습니다. 김신부가 운을 띄웠음. 태오가 손짓으로 소파에 앉길 권했지만 김신부는 거절함. 바빠 보이시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것이 있다고 했음. 태오가 의아한 얼굴을 함. 김신부는 준호에 대해 물었음. 모월 모일 이후로 준호를 보지 못했냐고. 태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함.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최부제님 말씀하시는 거라면... 못 본지 제법 됐습니다만. 대종상... 아니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받을 만한 연기임. 김신부는 태오의 얼굴을 빤히 바라봄. 둘 사이에 어중간한 침묵이 흘렀음. 잘 알겠습니다. 김신부는 작게 지친 숨을 뱉어냄. 태오는 걱정스런 얼굴로 최부제에게 무슨 일이 생긴거냐고 물었음. 김신부는 무덤덤하게 실종상태라고 대답함. 태오는 안색을 굳히며 사람을 보낼테니 찾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함. 김신부는 고맙다고 함. 죤내 물기가 사라진 건조한 대화임. 꼭 대본을 읽는 것 같음. 김신부가 사무실을 나가자 태오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하게 변함. 제법 눈치가 빠른 것 같은데... 중얼거리며 팔짱을 낌. 그렇다고 당장 처리할 수는 없었음. 쓰일 곳이 있는 카드였기 때문임.
빌딩 밖으로 나온 김신부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담배곽을 꺼냄. 어쩌다가 저런 또라이랑 엮인 거냐 아가토... 중얼거리며 담배를 입에 뭄. 사령들 상대하느라 도가 튼 김신부는 애저녁부터 싸이코패스 죠태오를 경계하고 있었음. 준호에게 대놓고 들이대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음. 다만 좀 잘못 생각한 것임. 죠태오가 준호를 향해 가진 감정이 우정 그 비슷한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이었음. 성격 드러운 재벌 도련님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우정놀이 하는구나 한거지. 준호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거라 믿었음. 그 잘못된 판단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임. 모월 모일 준호 휴대폰의 마지막 발신지는 어떤 술집이었음. 근처에서 준호를 목격한 사람이 있었음. 조태오가 술집 주인과 종업원에게 입단속을 시켰지만 화려한 외제차와 수단 차림의 남자는 눈에 뜀. 그러니 결국 이미 다 알고 떠보러 간것임. 김신부는 조태오의 본질에 대해 뒤늦게 깨닫게 됨.
태오는 휘파람을 불며 차를 몰았음. 김신부가 좀 걸리긴 했지만 중년 서제가 혼자 뭘 어떻게 하겠음?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함. 차를 타고 30분 쯤 달려 산을 낀 도로를 끼고 조금 돌아가자 지은지 얼마 안 된 신식 별장이 나왔음. 철문이 자동으로 내려갔음. 주차한 태오는 차에서 내렸음. 느긋한 발걸음으로 대리석 계단을 오르며 지난 밤을 떠올림.
벽에 비친 영상을 멍하니 보던 준호는 재생이 끝나자 발광했음. 이게 뭐냐고, 대체 왜 이러냐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러는 거냐고 숨이 넘어갈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쏘아댔음.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태오는 어깨를 으쓱했음. 그냥 내가 미친놈이라서 그래요. 미친 개에게 물려 죽었다고 부제님 동생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요? 태오의 대답에 준호는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음. 솔직히 어이 없었을 것임.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태오에게 상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라기엔 무리가 있었음. 준호는 기운이 빠져 허허 웃었음. 눈앞의 남자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음. 태오는 발가벗은 몸으로 망연자실 주저앉은 준호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줌. 정사의 흔적이 남아 얼룩덜룩한 몸이 가려지자 준호가 고개를 들었음. 꿈을 꾸는 것 처럼 탁한 얼굴임. 이제 날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준호가 묻자 태오는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기울이며 실실 웃었음. 글쎄요. 뒷 일은 깊게 생각 안해봤는데... 뭐 부제님 하는 걸 봐서 천천히 정하기로 하죠. 태오의 말에 준호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둥글게 말았음. 그리곤 천천히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함. 태오는 이판국에 와서도 신을 찾냐며 거칠게 굴려다가 멈칫 손길을 거둠. 물기 어린 목소리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임. 마치 노래하는 것 같아서 듣기 좋았음. 수행원이 식사를 들고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태오는 준호의 기도를 듣고 있었음.
지문을 대자 삑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음. 안은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설계된 제법 큰 방이었음. 준호는 등을 돌리고 멀리 떨어진 소파에 앉아 밖을 보고 있었음. 아침에 두고 나갔던 음식이 그대로 있음. 창문 근처엔 꽃병이 깨져 있었고 의자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걸로 보아 유리를 깨려다 실패한 모양이었음. 가뜩이나 몸도 안좋으면서 나름 노력 많이 했네요. 근데 요즘 전면 창은 강화유리를 쓰거든요. 태오가 비웃으며 준호에게 다가갔음. 태오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앞만 보고 있는 준호 뒤에 서서 까칠한 피부를 쓰다듬었음. 소름이 오소소 돋아남. 계속해서 목과 얼굴을 끈덕지게 쓰다듬어도 약간 움찔거리는 정도의 약한 반응만 보여줌. 묵언수행이라도 하는 건가요? 태오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세워 소파에 앉아 있는 준호의 어깨를 끌어 안았음. 연인에게 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손길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에 더 타격을 받았는지 준호가 벌벌 떨었음. 사실 태오는 지금 기분이 묘했음. 준호를 제 마음대로 다루면 충족될거라 생각했던 욕망이 다른 무언가를 갈구함. 그러니까 좀 더 일상적이고 애같은 것들. 부제님. 태오가 준호 귓가에 속삭였음. 여전히 대답이 없음. 웃어봐요. 또 뭔가 도라이같은 요구를 함. 웃으라고 해봐야 웃음이 날 리 없었음. 준호는 뒤에서 저를 껴안고 있는 태오가 그저 무서움. 흠 이건 좀 아닌가. 태오가 말을 무름. 내가 부제님한테 바라는게 뭘까요?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려옴. 준호는 속으로 생각함. 이새끼는 리얼 단단히 맛이 간 정신병자라고.
약을 놓고 강간한 날 이후로 태오는 준호에게 딱히 성적인 접촉을 해오지 않았음. 아니 그런 늬앙스는 풍겼는데 준호가 경기를 일으키며 거부하자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음. 준호는 그것이 자신을 배려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음. 먹이감을 물어 다리를 절게 만든 뒤 그것으로 어떤 요리를 할 것인지 정하는 과정에 불과했음. 태오는 끈질기게 준호에게 지금의 심정, 고통의 정도 등을 물었음. 별장에 감금된 후 준호는 의도적으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음. 약에 취해 강간 당하면서 허리를 흔들며 쾌락을 갈구하던 기억. 그것이 큰 죄라는 것을 알았고 엄청난 문제라는 것도 알았지만 일단 태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선 순위로 두었음. 자세히 파고들었다간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것 같았음. 모든 것은 어떻게든 여기를 탈출한 다음에... 그것은 준호가 정신을 유지하게 해주는 일종의 방어기제였음. 지금 준호의 멘탈은 아슬아슬한 한계치까지 몰려 있었음.
태오가 다시 김신부를 들먹인 날 준호는 묽은 죽을 입에 넣었음. 굴복의 첫단계임. 태오는 교묘하게 준호의 마음을 파고 들었음. 김신부를 지키라는 명분을 준호에게 준 것임. 잔뜩 마른 준호는 소파에 앉아 입이 무거운 의사가 놓아 준 링겔을 멍하니 올려 보았음. 선생님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여기에 감금당해 있어요. 준호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의사는 조용히 제 할 일만 하고 나갔음. 이런 일들은 늘 반복 되었음. 식사를 가져오는 건장한 수행원도 준호를 완전히 나무토막처럼 취급함. 결국 준호는 김신부를 위해서, 그리고 탈출을 위해서 스스로 음식을 집어 넣고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음. 매일 밤 일이 끝나고 찾아온 태오는 준호를 키우는 개 취급을 하며 제 할 말만 하다가 가버리곤 했음.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밤, 지문인식기가 삑- 소리를 낼때 준호는 문 바로 옆에 장식용 석고상을 들고 있었음.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의 옆모습이 태오라는 것을 확인한 준호는 없는 힘을 끌어 모아 석고상으로 태오의 머리를 내려쳤음. 빡- 큰 소리가 남. 태오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음. 준호는 손을 덜덜 떨며 부서진 석고상과 쓰러진 태오를 번갈아 봤음. 그대로 달아나야 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태오의 모습을 보니 덜컥 겁이 났음. 뻣뻣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숙여 쓰러진 몸을 툭툭 건드려 봄. 그러자 갑자기 손이 덜컥 뻗어 옴. 씨... 발, 미친... 꿈틀거리며 준호의 손목을 잡은 태오가 일어나려 함. 으헉! 깜짝 놀란 준호가 그 손을 뿌리침. 그리곤 그대로 밖으로 달아남.
이곳이 어딘지 모르는 준호는 그저 최대한 멀리 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힘. 링겔주사를 억지로 쥐어 뽑은 팔에서 피가 질질 흘렀음. 맨발이었지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조태오에게 잡히면 좆된다는 두려움이 더 컸음. 처음에는 도로로 나가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려고 했는데 가로등 하나 없고 차가 1도 보이지 않자 준호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가 빽빽한 산으로 들어감. 미친듯이 달리다 뒤를 돌아 보니 별장의 불빛이 희미함. 그제서야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옴. 준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떨리는 몸을 꽉 껴안고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음.
시간감각이 없음. 방향감각도 마찬가지임. 얼마나 걸었는지 모름. 이상하게도 숲은 끝이 보이지 않음. 일단 여기가 서울이 아닌 것임은 분명함. 길을 잃었다고 표현하기도 뭐 했음. 애초에 준호는 이곳이 어딘지 1도 몰랐음. 걍 처음부터 납치된 상태였으니까. 그래도 죠태오에게 사육당하는 것보다 숲에서 길을 잃는 편이 낫다고 생각함. 어떻게든 걷다 보면 뭐가 나오겠지 싶음. 운이 좋으면 민가를 발견해 전화 한통을 부탁할수도 있을 것임. 어두운 밤, 준호는 절뚝이며 낙옆 쌓인 산속을 걸었음.
어디선가 아주 희미하게 일정한 소리가 들려옴. 처음에는 바람소린가 했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해짐. 개가 짖는 소리였음. 준호는 공포가 한계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음. 트라우마 트리거가 당겨짐. 숨을 헉헉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마른 나무밖에 없음. 몸을 숨길 공간은 전혀 없음. 그리고 사실 숨는다 하더라도 준호 냄새를 맡고 쫒아오는 개들에게는 쉽게 발각될 것임. 공포에 질린 준호가 아무리 달려보아도 개소리는 가까워짐. 결국 검은 개들의 모습이 육안으로 보일 지경까지 차이가 좁혀짐. 사냥감을 포착했는지 이젠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음. 나를 죽이려고... 뒤를 돌아보던 준호기 넋이 나가 중얼거렸음. 체력이 바닥난 준호는 달리는 개들을 이길 수 없었음. 긴 다리가 나무 뿌리에 걸려 흙바닥을 두바퀴쯤 구른 준호는 몸을 일으키려다 바로 뒤에서 들려온 포효소리에 히익 하고 목졸린 소리를 냈음. 세마리의 개들이 준호를 앞뒤로 포위하고 으르릉 위협했음. 개들은 주저앉은 몸을 잠깐 일으키려는 시도조차 용납하지 않았음. 얼마나 지났을까 몸을 웅크리고 있는 준호의 귀에 끔찍한 목소리가 들림. 뭐 해요. 준호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고개를 들지 못했음. 내가 잠시 잊었어. 우리 부제님 약아 빠진거. 태오가 거즈를 댄 뒷머리를 주물거리며 말했음. 아... 준호는 이제 완전 제정신이 아님. 태오는 느긋하게 개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몸을 싸늘하게 내려다봤음. 쯧- 혀를 한 번 찬 태오는 준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그대로 확 당겼음. 악! 비명이 터져나왔음. 태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준호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댔음. 숨이 닿을 듯 가까움. 이건 다 네가 자초한 거야. 씹어 삼킬듯 한마디 한마디 꽉꽉 눌러 뱉음. 순식간의 얼굴이 확 돌아갔음. 쨕 소리가 나더니 뺨이 화끈함. 동시에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급하게 숨을 들이켰음. 옆구리도 터질듯 아팠음. 허벅지 근육이 눌려 찢어질 것 같았음. 태오는 준호를 말 그대로 '밟기' 시작했음. 씨발, 내가. 어이가. 없어. 후. 아주 그냥. 미친. 개들이 왈왈 짖는 소리를 들으며 뽀식이는 몸을 웅크리고 태오의 폭력을 감내했음. 잔인한 공기가 감돌았음. 완전히 늘어져 반응이 없는 준호 머리맡에 주저앉은 태오가 숨을 헉헉 몰아쉬며 얼굴을 거칠게 쓸었음. 씨발! 몇 번을 얼굴을 왁왁 쓸어내리며 마른세수를 한 태오는 준호를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꽉 물었음. 야. 퍽이나 무례한 호칭이었지만 알아 들어야 할 사람이 의식이 없음. 고요한 숲에 개들이 헥헥 거리는 소리만 잔잔하게 울림. 야아아아!!!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며 주먹을 쥔 손을 그대로 내리치려던 태오는 답지 않게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했음. 핏줄이 보일 정도로 힘을 준 주먹이 허공에서 부들부들 떨리더니 이내 목적을 잃고 풀어져 바닥으로 떨어짐. 태오는 조심스럽게 검지 손가락을 준호의 코밑에 대봤음. 희미한 숨이 살랑이는게 느껴짐. 맥이 빠지고 안심이 됨. 뭐냐 대체. 이런 좆같은... 그때 준호가 희미하게 앓는 소리를 냄. 쿨럭. 기침을 했는데 입에서 피를 왈칵 뱉어냄. 태오는 이를 악뭄. 괴로웠음. 태오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짜증과 분노에 잠겨 거친 욕설을 내뱉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