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눕다시피 앉은 태오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창 밖을 노려봤음. 소나무가 싱싱함. 하늘도 푸르고 맑음. 반대로 태오 기분은 좆같이 시들시들하고 흐림. 의사가 부어오른 머리에 알콜솜을 톡톡 적셨음. 아. 태오가 심기불편한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음. 중년의 의사가 어깨를 움찔 떨었음. 이내 의사는 프로페셔널한 손놀림으로 찢어진 머리 가죽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둘둘 말았음. 김선생님. 태오가 조용히 부르자 의사가 급히 대답함. 네 라고 말하는데 끝이 조금 떨림. 왜 아직 안 일어나는 거죠. 태오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의사는 최대한 정중하고 희망적인 단어를 골랐음. 식사를 많이 못해서 부실한 영양상태인데 설상가상으로 산속에서 '굴렀으니' 쉽게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대답함. 가만히 의사의 말을 듣던 태오가 피식 웃었음. 씨발 구르긴 뭘 굴러. 내가 팼지. 의사는 침묵함. 태오가 손짓하자 의사는 철제 트레이에 피가 묻은 솜을 담아 들고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더니 밖으로 나감. 발소리도 내지 않음. 태오의 주변 사람들은 다 저랬음. 늘 저에게 잘보이려 슬슬 기었고 거슬리지 않으려 애썼음. 서도철 같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애들만 빼고. 아 그리고 또 한 명. 준호도 뺌. 진지하게 생각하길 태오는 준호가 겁나 어리석다고 느꼈음. 그냥 적당히 기분 맞춰주며 네네~하다가 입안의 혀처럼 부드럽게 굴면 어련히 알아서 이뻐해 줄까?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가? 멍청하다고 생각함. 태오는 아마 잘 모를 것임. 지금 조태오는 잘난 레드 카펫 인생에 있어 매우 드물게도 타인의 입장으로 이입해서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음. 달빛을 받아 파랗게 질린 준호 얼굴이 떠오름. 겁에 질린 낯짝. 끔찍한 것을 보는 눈.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었음. 창 너머 산을 바라보던 태오는 굳게 닫힌 문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음. 미련한 최준호 부제님. 입 안에 모래가 가득 찬 것 같음.
존나 두들겨 맞았는데도 의외로 얼굴은 멀쩡했음. 한 대 맞은 뺨이 조금 부푼 정도임. 태오의 얼빠본능이 발휘된 것인지 얻어 맞으면서 본능적으로 머리를 보호한 탓인지 준호는 큰 생채기 없는 허여멀건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음. 반면 몸은 처참함. 갈비가 두 대 나갔고 왼쪽 발목은 금이 갔음. 허벅지 근육이 찢어졌고 폐가 심하게 눌리는 바람에 자주 헛숨을 들이키며 피를 토했음. 먹은 게 없어서 마른 손에 링겔 주사가 세 개나 연결되어 있었음. 태오는 존나 지가 패서 초주검을 만들어 놓은 주제에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준호의 팔등에 주사 바늘을 두 번 찔렀다는 이유로 간호사의 뺨을 때렸음. 그러고도 모자라 화병까지 던지려고 하는 걸 최상무가 겨우 말렸음. 길길이 날뛰던 태오는 씩씩거리며 준호한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니들 다 각오하라는 조또 또라이 같은 소리를 함. 처음부터 때리질 말던가... 모두의 마음 속에 떠오른 문장이었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사람은 음슴. 태오는 밤새도록 침대 옆 간이 소파에 앉아 준호를 지켜보고 있었음.
제천법사는 혀를 차며 김신부를 노려보았음. 쯧쯧쯧 천하의 김 베드로 꼬락서니를 좀 보라지. 김신부는 제천법사의 말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가지고 온 양주를 상 위로 밀었음. 서론이 길다. 빨리 보기나 해. 나 급하다. 김신부가 짐짓 엄중하게 언성을 낮추자 제천법사가 어꺠를 으쓱이며 술병을 받아 옷깃 밑으로 숨겼음. 대충 보이는대로 일러줄 터이니 적당히 알아서 해. 제천법사가 숨을 탁 내뱉음과 동시에 왼손에 들고 있던 쌀알을 상 위로 뿌렸음. 딸은 또 어디가고 퇴물 귀신 등에 업고 이러고 있는 건지. 김신부가 퉁명스럽게 말했음. 제천법사는 흩어진 쌀알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새를 쫒는 듯 손으로 훠이훠이거림. 산에 있네? 고개를 갸웃거림. 이놈 이거 이상한데. 비실비실해 아주. 김신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품에서 담배를 꺼내 뭄. 뭐가 좀 보여? 김신부의 말에 제천법사는 인상을 찌푸림. 동쪽이네.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아. 경기도야 경기도. 김신부는 고개를 끄덕임.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라 신당 안을 가득 채움. 제천법사는 뿌려진 쌀알 위로 부적을 태운 재를 흩뿌리며 넌지시 말을 걸었음. 솔직히 말해 봐라. 너 이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보러 온거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태 아냐? 이번에는 또 무슨 잡귀래? 그 말에 김신부가 픽 웃었음. 그런 거 아니야. 차라리 사령이었으면 좋겠다. 그 말에 제천법사가 손사레를 침. 과거 힘들었던 굿판을 떠올린 모양이었음. 어허이 무슨 소리를! 부산스럽게 상 위를 치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김신부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음. 야, 하나만 더 도와줄 수 있겠냐.
임원 회의 도중에 준호가 꺠어났다는 보고를 받음. 태오는 문자를 보고 의자를 덜컥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아랑곳 않음. 급한 일이 생겨서 가보겠습니다. 태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밖으로 튀어나갔음. 잠시 조용하던 회의실은 금새 평소의 분위기를 되찾음. 죠태오가 저러는 거 한 두번 본거 아니니 뭐. 여튼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와리가리하며 주의력 결핍 환자처럼 산만하던 태오는 띵- 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주차장을 죤내 가로질러가 차를 타고 엑셀을 밟았음.
숨을 헉헉 몰아쉬며 준호가 있는 방 문을 열었음. 침대 헤드부분을 세워 기대 앉아 있던 준호가 태오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음. 간호사가 거의 빈 수액통을 교체하고 있었음. 태오는 뚜벅뚜벅 걸어가 준호 옆자리에 털썩 앉았음. 일단 달려오긴 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몰랐음. 우물쭈물하는 사이 어색한 침묵이 흘렀음. 링겔병을 교체하느라 달칵이는 소리만 울림. 또르륵- 방울져 떨어지는 수액의 양을 적당히 조절한 간호사가 밖으로 나가자 그제서야 입을 열었음. 눈 떴네요. 내뱉고 좀 후회했음. 일어난 거 빤히 보고도 모르겠냐, 존나 병신 같은 말이네;; 민망한 와중에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함. 너무 조용함. 개들을 끌어다가 사냥감처럼 몰아 세우고 뼈가 부러질 정도로 존나 패기까지 했음. 전처럼 어색한 욕이라도 뱉던가 하다 못해 내보내 달라고 울부짖을거라 예상했었음. 부제님? 태오가 다시 불렀음. 그러자 준호가 고개를 돌림. 시선을 피하지 않음. 당신이 나에게 왜 이러나 생각해 봤습니다. 입을 연 준호에게서 흘러나온 말이 의외로 정순해서 태오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세움.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게 즐거운 거죠? 압박하고 몰아세워서 바닥을 구르는 것을 구경하고 싶은 거겠죠. 준호가 고개를 숙였음. 어깨가 조금 떨리고 있음. 순간 태오는 그것을 감싸주고 싶다고 생각했음. 손을 뻗다가 지례 놀라 몸을 뒤로 물렸음. 이제 됐습니다. 마음대로 해요. 준호가 힘없이 중얼거렸음. 목소리가 신기루처럼 흔들림. 그래도 이것 만큼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준호가 고개를 들었음. 느릿하게 입꼬리를 올리기 시작했음. 어딘가 허무한 느낌을 주는 미소였음. 조태오씨, 나는 당신이 무섭지만 그 뿐입니다. 태오는 저도 모르게 입을 조금 벌렸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은 그냥... 준호가 말을 이었음. 댁이 키우는 그 개들, 딱 그 정도의 존재에 불과해요. 단정한 말이었음. 비꼬는 것도, 도발하는 것도 아님. 태오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음. 준호의 진심이었음. 존나 좆같은 진심. 태오는 무심결에 몸을 일으켰음. 의자가 지직 끌리는 소리를 내며 뒤로 조금 미끄러졌음. 자리에서 일어난 태오를 준호는 가만히 올려다 봄. 냉정한 눈임.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1도 없음. 문득 태오는 예전에 했던 혼잣말을 떠올렸음. 술에 취한 준호를 차에 태우고 가며 '특별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던 비뚤어진 다짐. 그것이 이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존나 허세부린 셈임. 명동거리에서 굴렀을때보다 더 좆같은 기분이었음. 좆같다 못해 처참하고 끔찍함. 뭐... 내가... 태오는 뭐라 말을 하려다가 그대로 멈췄음. 비틀어진 미소를 억지로 지음.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림. 태오는 손을 올려 준호의 볼을 쓰다듬었음. 내가... 이래도 부제님한테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개새끼에 불과하다는 겁니까? 볼을 쓸었음. 열오른 피부의 감촉을 즐기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입술을 문지르기도 했음. 성적인 늬앙스가 가득 담긴 노골적인 손길임. 그러나 준호는 피하지 않음. 불쾌하다는 의사표현도 없음. 그냥 길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를 보는 무심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음. 이런 개같은 짓거리가 끝나길. 얼굴을 쓰다듬던 손이 천천히 이동해 목젖을 부드럽게 누르다가 어깨를 지나 쇄골까지 주르륵 내려갔음. 가슴을 스쳐 더욱 아래로 내려가자 준호가 이를 악물었음. 부러진 갈비뼈를 건든 모양임. 그것을 귀신같이 포착한 태오가 과장되게 웃으며 주절거렸음. 아무렇지도 않다면서? 나 따위! 그러자 준호가 태오를 올려다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음. 원래 개에게 물리면 아픈법이죠. 그 말에 태오는 멍한 표정을 지었음. 잠시 침묵하던 태오가 느리게 중얼거렸음. 그렇네. 물리면 아프지. 씨발. 그래 아플거야. 그리고 다음 순간, 손바닥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갔음. '짝'도 아닌 '빡' 소리가 났음. 태오는 준호의 뺨을 내리침. 대비하지 못한 폭력에 혀를 조금 깨물었는지 입가에 피가 비침. 그러나 기어코 신음을 내비치진 않음. 태오는 그 작정한 독기에 질려 이를 악물었음. 대단하네 진짜. 어쩐지 허탈해진 태오가 실실 웃으며 뒤로 물러났음.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음. 준호를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음. 태오는 꼬인 매듭을 풀기보다 잘라버리고 새 것을 구하는 것에 익숙한 인간이었음. 뽀식이도 그냥 잘라버린다면 편해질 수 있을 것임. 그러나 태오는 자신이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음. 태오는 뒷걸음질 치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도망치다시피 밖으로 뛰어 나갔음. 쾅- 문이 세게 닫혔음.
태오는 복도를 걸었음. 힘이 풀린 다리가 흐느적거렸음. 누가 봤으면 술에 취했나 의심할 걸음걸이였음. 손바닥이 아직 화끈했음. 때린 내가 이렇게 아픈데 맞은 최부제는 어떨까, 여기까지 생각한 태오는 하하- 하고 조금 웃었음. 어이가 없네. 버릇과도 같은 말버릇이 평소와는 다른 의미를 품고 나왔음. 이쯤되니 태오는 진지하게 생각해봄. 준호를 향한 제 감정에 대해서. 존나 죠태오 인생에 있어서 최초이자 아마도 최후가 될 자아성찰이지도 모름. 태오는 인정해야 했음. 자신에게 준호가 좀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을. 사랑이니 뭐니 낯뜨거운 동사는 때려치더라도 적어도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그에게 느끼고 있음. 이제와서 무슨- 약을 놓고 강간하고 비디오를 찍고 패고. 태오는 자신이 뽀식이에게 한 짓을 떠올려봄. 진짜 핵쓰레기임. 노답. 뭐 더 어떻게 해야 관계가 개선될지 1도 몰르겠습니다. 그리고 방금은 아예 대놓고 '너는 개새끼입니다. 날 문 개새끼입니다.' 라는 소리를 들었음.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며 태오는 계속 준호를 떠올렸음. 개를 보고 겁에 질린 준호, 마약에 취해 벌벌 떠는 준호, 쾌락에 들떠 엉엉 우는 준호, 얻어 맞다가 정신을 잃은 준호, 그리고 냉정한 눈의 준호. 별장 로비를 지나는데 올려다 본 하늘이 아주 맑음. 마음이 아주 복잡함. 아무리 생각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음. 탓할 대상도 없음. 아니 있긴 했는데 그 대상이 자신임. 스스로 다 망쳐놓은 것임. 눈밑이 떨렸음. 손 끝으로 눈가를 짚었는데 조금 축축했음. 허- 씨발? 이젠 하다하다 별... 태오는 눈을 벅벅 문지르며 거칠게 걸었음.
부러진 갈비뼈와 금이 간 다리뼈등 처참한 몸상태를 생각하면 혼자 이곳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음. 결국 준호는 체념하게 됨. 탈출해야 한다는 제1의 목표를 잃자 남은 것은 결국 과거 끔찍했던 기억의 되새김임. 잠이 들면 자신을 누르고 있는 태오와 그 패거리들의 얼굴이 보였음. 눈을 떠도 지옥이었음. 하루 24시간동안 잠깐 화장실을 가거나 씻을 때를 제외하곤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냈음. 살아 숨쉬는 시체였음. 할 수 있는 거라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정도 밖에는 없었음. 그마저도 내키지 않았음. 재수 없으면 태오의 차가 별장에 도착하는 모습을 다이렉트로 봐야 했기 때문임. 시간이 지날수록 준호는 점점 더 지쳐감.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태오는 그저 개에 불과할 뿐이라고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개의 밑에서 허덕이던 자신도 혐오하는 생각의 악순환에 빠져듬. 산에서 굴렀을 때 돌에 찍힌 팔뚝의 딱지를 강박적으로 긁었음. 피가 줄줄 흐르자 오히려 안심이 됨. 처음에는 기도문을 외우며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뜸함. '내가 신을 찾아도 될까' 라는 의심이 치밀었기 때문임. 이성으로는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라는 생각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끊임없이 스스로를 더럽고 끔찍한 존재로 여김. 이율배반적인 주장들이 충돌함. 준호는 끊임없이 앓았고 악몽에 시달렸음.
태오는 준호가 저를 거부하고 냉담하게 대해도 계속 부딪혔음.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임. 식사도 직접 가져갔고 붕대를 갈아주는 것도 직접(!!!) 했음. 죤나 조태오와는 가장 거리가 먼 단어인 '간호'라는 것을 하고 있음. 그러거나 말거나 준호는 무시함. 태오는 준호가 자꾸 팔뚝의 상처를 헤집는 다는 것을 알았음. 계속 그러다간 흉질 거라는 말에 준호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싸늘하게 웃으며 계속 긁었음. 상처 긁지 말아요. 태오가 다정하게 말했음. 준호는 무시함. 태오는 다시 말했음. 부제님, 상처 건들지 말아요. 준호는 여전히 무시함. 태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준호의 팔목을 꽉 잡고 억지로 떼어냈음.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얼핏 상냥한 것 같지만 손목에 가해지는 힘은 그렇지 않음. 왜 말을 안들어 자꾸. 억양이 기묘하게 올라갔음. 화가 치밀고 있다는 뜻이었음. 준호는 몸을 흠칫 굳힘. 계속 함께 지내다보니 자동적으로 그의 버릇을 익혀버린 것임. 태오는 준호가 상처를 헤집는 것을 멈추자 기분이 좋으면서도 미묘하게 짜증나기도 하고 여튼 복잡함. 어쨌든 건드리지 않으니 됐음. 갑자기 조용해지자 태오가 큼큼 목을 울리며 분위기를 환기시킴. 그러고보니 부제님 매일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으니 심심하지 않아요? 태오의 말에 준호는 무슨 개소리 하냐는 듯 무심하게 쏘아봄. 티비 넣어 줄까요. 영화라도 보면서 기분전환도 하ㄱ... 거기까지 말한 태오는 갑자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준호를 보고 잠깐 의아함.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싶음. 그러다가 '영화' 라는 단어에 생각이 미치고 아차!했음. [그보다 영화나 봐요. 지금 딱 재미있는 부분이야.] 준호는 담요 밖으로 나온 제 두 손을 꽉 마주잡고 육안으로 보기에도 심각할 정도로 벌벌 떨고 있었음. 아니 저, 그런게 아니라... 태오가 뒤늦게 후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준호에게 손을 뻗음. 그러나 그 행동이 오히려 문제였음. 하지마! 만지지마! 준호가 비명을 질렀음. 움직이기도 힘든 몸을 어떻게든 뒤로 물려 태오에게서 떨어지려고 함. 침대가 삐걱거렸음. 당황한 태오가 다시 손을 뻗자 준호는 이제 완전 악을 씀. 저리 가! 미친듯이 비명을 질러대는데 태오는 안색을 굳히고 두 손을 귀 옆으로 들어 올림. 자, 봐요. 나 안 만지잖아. 이것 봐요. 그러나 준호는 양어깨를 감싸고 뒤로 물러남. 거친 움직임으로 인해 주사바늘이 빠져 담요가 빨갛게 물들어 감. 이쯤되자 태오는 안되겠다 싶어서 침대 위로 올라가 준호의 몸을 강하게 껴안고 당겼음. 예상했던대로 준호가 미친듯이 발악하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씀. 태오는 준호를 안고 밀어내는 오른 팔을 억지로 잡아 침대 헤드로 눌렀음. 진정해요. 내가 다 잘못했어. 말 실수야. 미안해요 부제님. 태오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정한 목소리로 사과했음. 안타깝게도 그것은 준호에게 전해지지 않았음. 얼마나 지났을까, 태오에게 잡혀서 간간히 펄떡펄떡 튀어오르던 몸이 조금씩 가라앉아감. 껴안은 몸의 떨림이 많이 사그라들자 태오도 안심이 됨. 그러나 곧 다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함. 훌쩍이는 소리였음. 울고 있었음. 태오는 준호를 껴안은채 그대로 얼어 붙음.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물에 잠긴 기도문이 울려퍼짐.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듬.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내가 니 운전기사냐. 제천법사가 투덜거렸음. 김신부는 대답 없이 산속에 위치한 고급 별장을 노려보았음. 조태오를 미행한 보람이 있었음. 길이 외길이고 주변에 가로등은 커녕 지나다니는 차가 한 대도 없어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따라 왔음. 제천법사의 마티즈 조수석에 앉아 멀리 불이 켜져 있는 별장을 노려보던 김신부는 담배를 빼어 물었음. 그래서 어쩔거야 이제. 제천법사가 운전대를 탁 치며 운전석에 기댔음. 김신부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했음. 어쩌긴 뭘 어째, 최준호 빼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