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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토르 토르 기억상실 끗

첫 플래시백 때와는 달리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함. 로키는 닥스의 연구실 구석에 마련된 침상에 누운 토르의 곁을 지킴


왜 안 깨어나는거지?

그때보다 더 긴 기억을 되새기고 있을거야

...기억을 찾을까?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네

끔찍하군!


로키는 초조한 얼굴로 형을 내려다봄


일주일이 지나도 토르는 깨어나지 않음. 긴 생에 체감상 몇 초조차 되지 못하는 시간이 마치 영겁처럼 느껴짐. 닥스가 고서를 뒤져 토르 주변에 무언가 마법진을 띄웠지만 큰 효과가 없었음. 


그리고


보름이 지나자 토르가 눈을 뜸. 잡은 손이 떨리는 것을 무시하고 로키가 토르를 부름 brother...


로키..

기억나?

무슨... 윽, 머리가 아프군

토르! 날 봐!


로키가 신경질적으로 외쳤음. 머리를 감싸 쥐고 끙끙거리던 토르는 제 팔을 잡고 흔드는 동생의 기세에 찌푸린 얼굴을 펴지도 못하고 몸을 일으킴


날 봐 토르 제발, 날 기억해?

? 당연하지. 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거냐, brother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제 어깨를 두드려오는 토르를 보며 로키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킴. 어쩌면- 하고 연약한 기대를 품고 토르, 다시 부른 순간-


지구에는 잘 도착한건가? 테서렉트는? 백성들은 무사해?


토르가 이마를 누르며 다급하게 말했음.


로키? 왜 그래, 다들 무사하냐고 묻지않느냐


로키가 멍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자 토르는 초조하게 대답을 재촉함


로키!

모두 노르웨이에 있어

...다행이군


그제야 안심했는지 한숨을 쉬며 두 다리를 침상밑으로 내림


토르

그래

형은 계속 잠들어 있었어 

뭐라고?

새로운 아스가르드는 아버지가 떠난 절벽 너머에 있어

이런, 대체 얼마나 정신을 잃었지?

...오래 잠들었어, 아주 오래

로키?


환영해 your majesty


뒤늦게 돌아온 닥스에게 인사를 한 후 로키는 토르와 노르웨이로 감. 오딘이 발할라 떠난 절벽에서 잠깐 시덥잖은 과거 이야기를 나누고 곧장 공중에 뜬 아스가르드로 들어감. 바이프로스트에서 헤임달과 발키리가 반겨줌.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페하. 토르를 뺀 나머지에겐 이중적으로 들리는 인사였음


백성들의 환대를 받으며 토르는 늠름하게 궁으로 입성함. 그를 위해 마련된 재현된 왕좌에 앉아 쑥쓰럽게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자 젊은 전투병들이 무구를 들어 올려 환호성을 지름. 바야흐로 새로운 아스가르드의 출범이었음. 떨어진 곳에서 로키가 기둥에 기대어 조용히 지켜봄


형에게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마. 헤임달에게도 전해

괜찮겠어?


드물게 물어오는 발키리에게 로키는 어깨를 으쓱함


나는 변덕이 심하거든, 뭐 슬슬 질릴때도 됐지. 깔끔하잖아

무리하지마

다정한걸?


멀리 토르가 피난민 아이를 목마 태우고 껄껄 웃고 있음


보기 좋군


로키가 표정없이 중얼거림


토르가 노르웨이에 머무는 동안 로키는 어벤타워에 들러 멤버들에게 천둥의신이 돌아왔음을 알림. 그동안의 잠들어 있던 걸로 입을 맞추기도 끝냄. 모두가 로키의 의도를 의심했지만 테서렉트에 이어 서리거인 함까지 닥스에게 넘겼다는 말에 입을 다뭄. 로키는 토르가 아르바이트했던 카페에도 들름


플래시백을 일으킨 토르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그만둔 뒤로 카페엔 새로운 직원이 일하고 있었음. 더는 쉴드의 인원들이 음료를 주문하러 들르지도 않았고 어벤저스 멤버가 모일 이유도 없는 평범한 카페테리아가 됨. 로키는 시럽 두 펌프에 시나몬 가루를 뿌린 라떼를 주문하고 늘 앉던 구석 자리로 감


직원에게 받은 음료는 토르가 만들어 주었던 것과 전혀 다른 맛이 났음. 로키는 한모금 마시고 그대로 컵을 내려 놓음. 레시피는 똑같을텐데 그때와 다르게 예민한 혀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함. 로키가 앉아 있으면 대충 일을 마무리 지은 토르가 큰 손에 묻은 물을 앞치마에 닦으며 맞은편에 앉았었음


빈 자리를 보던 로키는 그대로 일어나서 카페를 나옴. 짜증나게도 가게 앞 인도와 주변에 위치한 건물들은 형과 함께 걷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듬.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토르와 함께 했던 장소가 나와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임. 마음 같아선 싹 다 엎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럴순 없지


쌓았던 것이 무너지면 다시 처음부터 쌓으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음. 평소엔 핑핑 잘도 돌아가던 머리가 그때는 왜 현실도피를 택한 것인지. 실패에 익숙한 로키는 좌절과 포기에도 길들여져 있었음. 마음 깊은곳에 존재하는 또다른 자신이 그때 형이 자신을 받아줬던 이유를 속삭여옴


과거를 잃은 토르는 로키를 몰랐으니까! 직접 경험한 동생과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동생의 차이점이 와닿지 않는 것임. 그점을 이용해 자신의 잘못을 은근슬쩍 축소하여 토르의 불안한 마음의 파고 들었음. 반성은 안함. 완벽해진 토르 오딘슨을 파고들 틈이 없음을 로키는 인정하고 포기해야했음


사과를 구할 생각은 없음. 로키는 순순히 물러날 생각임. 사카아르의 엘리베이터에서 형이 말하지 않았던가, 둘의 길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형이 기억을 찾은 순간 억지로 묻어두었던 그때의 대화가 다시금 살아남. 너는 너, 나는 나. 잠시 멈추었던 토르의 말은 로키에게 도달해 깔끔하게 박힘


아스가르드의 재건이 마무리 되어감. 한동안 토르의 곁에서 성실히 작업을 돕던 로키는 어느 날 밤, 토르의 방에 찾아와 사랑한다는 말을 하더니 자취를 감추었음. 발키리와 헤임달에게 로키의 행방을 물어보아도 고개를 저음. 제 죽음을 위장하기도 했던 동생이니만큼 변덕이겠거니 생각함










처음에는 작은 의문으로 시작함. 근 몇 달을 잠들었다고 들었는데도 이상하게 중간중간 졸게 됨. 왕좌에 앉아 깜빡 눈을 감았다 뜬 토르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음. 시야의 끝엔 왕궁의 넓은 실내와 활짝 열린 웅장한 정문이 보임. 무의식적으로 있을 리 없는 유리문을 찾고 있었음


고풍스러운 아스가르드의 높고 넓은 문이 아닌 지구의 아담한 유리문. 토르는 엄지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누르며 신경질적으로 눈을 감았음. 잠이 들면 묘하게 눈에 익은 장소에서 익숙한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함. 답답한것은 깨어나면 다 잊는다는 점임. 분명 처음일텐데 이상하게 그리움을 느낌


어느 날은 작은 소년의 등에 매달려 빌딩 사이를 노니는 꿈을 꾸었음. 아는 얼굴이었음. 어벤 타워에 들렀을때 저를 보며 입을 꾹 다물고 볼을 긁적이던 피터. 분명 초면일텐데 본 적 없는 웃는 얼굴을 상상하는게 어렵지 않음. 작은 의문이 모이자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위화감이 커짐


브룬힐데


왕궁 구석에 마련된 작은 수련실에서 몸을 풀던 발키리가 고개를 돌리니 토르가 서 있음. 


폐하, 무슨일이시죠?

헤임달을 찾았는데 자리를 비웠더군

흐응

궁금한 게 있는데 답해줄 수 있겠는가

...질문에 따라서요


토르는 팔짱을 끼고 눈을 내리 깔았음


내가 계속 잠들어 있었던게 맞나?


아주 잠깐 그녀가 몸을 굳혔음. 곧 평소의 당당하고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돌아옴.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을 토르는 놓치지 않음. 


폐하는 계속 마법사의 보호 아래 있었어요.


거짓은 아님. 그러나 완벽한 진실도 아니었음. 토르는 무어라 입술을 달짝이려다 눈을 꾹 감았음.


말해 줄 생각이 없군

...폐하


헤임달이 자리를 피한 이유가 이것인가? 나에게 거짓을 고할 수 없기 때문에? 토르가 불쾌감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였음. 브룬힐데는 말없이 손에 든 투구를 내려 놓았음. 조용한 그녀의 태도에 토르는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음.


머리가 아파. 차라리 수르트가 나오는 꿈을 꾸는 편이 나을 정도야


잠이 들면 낯선 곳에 서있네. 기분이... 그래 제법 좋기도 했지. 하지만 깨어나면 고통스러워. 기억이 완전하지 않아. 뭔가 단단히 잘못됐어


육체적 전투에 최적화된 토르는 정신 조작에 다소 취약한 면이 있었음. 브룬힐데는 한숨을 쉬었다.


폐하, 저는 말할 수 없어요

어째서지?

약속했으니까요


아스가르드 왕의 명령에도 입을 열 수 없나?

딱히 내키지 않네요

브룬힐데!


자신이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단호하게 밀어붙였다. 아스가르드에 합류하긴 했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전 발키리’ 였고 토르에겐 그런 그녀를 억압할 명분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억지를 부리는 이유는


전날 꾼 꿈 때문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기억이 생생했다. 로키가 나왔다. 볼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사랑해.’ 라고 속삭이는 제 동생 말이다. 우습게도 그 말은 굉장히 친숙했고 당연하게 받아야 할 것 처럼 느껴졌다. 토르는 부드럽게 웃으며 ‘나도 마찬가지다.’ 대답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미친 줄 알았다. 겨우 일어나 수반에서 세수를 하기 전까진 계속 꿈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동생이 세상없이 다정한 얼굴로 입술을 겹쳐왔다. 언제라도 속일 준비가 되어있는 미스치프가 아닌 신뢰가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미친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동생과 키스했음에도 당연히 따라야 할 불쾌감이 없었다. 충격이었다.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 습관처럼 뒷목을 주무르는데 그 손길이 꼭 타인의 것처럼 느껴졌다. 정확히는 로키의 차가운 손. 깨닫자마자 비명이 튀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 차분히 대화를 할만큼 이성이 따라주지 않는게 당연하다


브룬힐데!


다시 큰 목소리로 불렀다. 천장이 높은 수련실에 낮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제법 위협적이었으나 브룬힐데는 위협보다 그 너머의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더는 숨길 순 없겠죠. 젠장, 헤임달 그양반 나한테 이딴 짐을 지우다니


엄지와 검지로 눈썹을 누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토르는 잔뜩 굳은 얼굴로 바이프로스트로 향함. 사라졌던 헤임달이 검을 거꾸로 세우고 기다리고 있음.


어디로 가실 겁니까


헤임달의 말에 토르는 어벤저스 타워라고 답함. 곧 검이 열쇠로서의 사명을 수행함. 무지개 다리를 타고 토르는 어벤저스 타워에 도착함


토니는 부루퉁한 얼굴로 치즈버거 포장지를 벗겼음. 거지같은 이사진들이 얼마전에 가동한 워해머 일로 주가가 어쩌구 하며 귀찮게 굴었음. 고심끝에 회사를 해체하고 싶을 정도였음. 작업실 한켠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버거를 한입 베어물려던 순간, 토니 스타크! 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옴


토르?


언제나처럼 드러낸 존재감을 숨길줄도 모르고 당당하게 들어옴. 다소 굳은 얼굴로 저벅저벅 걸어온 토르는 토니의 어꺠를 잡아 억지로 일으켰음. 뭐야 왜이래! 치즈버거를 놓칠뻔한 토니가 당황에 항의하자 토르는 양 어깨를 잡은 손을 풀지않고 목소리를 깔았음


잘도 날 속였더군?


이 미친 형제놈들아 좀 냅둬!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상황이 진지했음. 아아아 아프다고 이것부터 좀 놔, 토니는 엄살섞인 말을 흘리며 토르의 손에서 빠져나옴. 해명해보게, 토르의 말에 토니는 짜증섞인 목소리를 냄


원망은 네 동생에게 해

로키가 한 짓을 잊었나? 왜 그 녀석의 말에 순순히 따랐지?


토르의 말에 토니의 눈이 이채롭게 빛났음


색다른 모습인데

무슨 소리지?

정말 싹 잊었나봐?


토르는 답답함. 잔뜩 굳은 얼굴로 멱살을 잡을 기세라 토니는 이크- 소리를 내며 양손을 들어 진정하라는 제스춰를 취함. 


그렇게 감싸고 돌더니... 그 레인디어가 가엾어 보일 지경이야

...내가 로키를?


이어진 토니의 말에 토르는 대격변급 충격을 받음. 너네 사겼어, 그것도 아주 찐하게ㅎ 침대도 부숴 먹어서 세 번 바꿈(이건 뻥) 토르가 믿기지 않는듯이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며 비틀거림. 저런저런 충격이 크겠어, 토니가 익살스럽게 말하며 등을 두들겨줌. 


거 거짓말이지?

안타깝게도 진짜야


나를 속였다간 오딘께 맹세코 용서하지 않겠네.

보여줘?

...뭘?


혼란스러워하는게 좀 가엾었지만 토니는 이 상황을 즐김.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보관된 영상을 날짜순으로 넘기던 손가락이 영상 하나를 터치함. 토르가 얼빠진 얼굴로 휘청거림


어이쿠- 왜 이렇게 무거워


토니가 투덜거림


영상에 나온 것은 로키와 자신이었음.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에서 포옹하고 있었음. 거의 끝부분에 ‘사랑해’ 라고 말하는 로키의 목소리가 들렸음. 동시에 어떤 장면이 오버랩됨 ‘형은 아무것도 몰라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 동생의 장난인가? 발키리와 헤임달, 스타크까지 동원된 장난? 말도 안됨


토르는 저를 부축하는 토니를 밀어내고 휘적휘적 걸어 내려가 타워 밖으로 나감. 뒤에서 비전이 걱정스럽게 불렀지만 무시함. 건물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로 꽉 찬 맨하튼 거리가 나옴. 주로 묠니르를 이용해 타워에 들르곤 했던 토르로선 익숙할 리 없는(익숙해선 안되는) 풍경이어야 했는데


멍하게 걸었음. 익숙한 간판과 가로등, 지나다니는 차들, 시끄러운 양아치들. ‘토르, 싸인해주세요!’ ‘사진 찍어줘요.’ 라고 외치던 시민들. 잠에서 깨면 잊었던 꿈이 떠올랐음. 타워에서 나와 어디론가 규칙적으로 들렀었지. 속이 안좋음. 계속 움직이던 발이 멈추자 눈앞에서 익숙한 유리문이 나왔음


어서오세요!


힘차게 외치는 오너의 목소리도 익숙했음. 속이 울렁거렸음. 주문하시겠어요? 어느새 걸어가 카운터앞에 섰음. 토르는 이마를 쓸어 내리며 헛웃음을 지었음


이곳이 익숙하오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어버림. 그러자 오너가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저도 손님이 익숙하네요...


답함


커피머신이 시끄러운 소리를 냄. 레버를 당기고 몇 초를 세야함. 우유를 담아 스팀머신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고... 생소한 지식이 머릿속에 쏟아져 들어오자 환장할 지경임. 토르는 뒷걸음질 치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가게 밖으로 뛰어나감. 


말도 안돼...


중얼거리며 왔던 길을 걸어 어벤타워로 돌아감


토니가 다 먹은 치즈버거 포장지를 뭉쳐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중임


어딜 그리 급하게 다녀오시나

신경끄게

잊고 있는가본데, 이 건물 주인이 누군지 상기하는게 좋을거야

...shit

예쁜 말 써야지

자네한테 배웠다네

지식은 많을수록 좋아


토할 것 같다, 스타크. 토르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림


임신일지도


토니가 콜라를 마시며 중얼거림. 너흰 참 뜨거웠지


오, 제발 입닥치게

웁스


낯선 행성에서 2년간 헐크로 지낸 배너의 심정을 간접 체험하며 토르는 토니 맞은 편 소파에 털썩 주저앉음.


그래 어쩔거야

..


네 동생 연락 끊긴지 좀 됐어. 내가 준 카드도 안쓰는 모양이더군. 토니가 말함


속으로 조용히 동생의 이름을 불러 봄. 묻힌 기억이 떠오르는데 자연스럽게 연결되질 않아 답답했음. ‘사랑해.’ 덜덜 떨고 있었지. ‘형을 사랑해.’ 이건 좀 달콤하게 말했던가. 같은 뜻을 품은 단어였지만 부를때마다 담겨 있는 감정이 다채로웠음 ‘나도 사랑한다, 로키.’ 결국 제 대답까지 떠올려버림


토르는 로키를 사랑했음. 과거형인 이유는 여전히 그렇다고 말하기엔 도무지 제 기억같이 느껴지지 않았기 떄문임. 동생을 앞에 두고도 그 말이 나올까? 단순히 기억에 새겨진 문장이 아니라 감정을 담아 사랑한다고 로키에게 말할 수 있을까? 소파에 몸을 파뭍고 한숨을 쉼


스타크, 부탁이 있어








남부 한적한 마을 카페라운지에 앉아 차를 마시던 로키는 제 위로 드리운 그림자에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음


잘도 찾아냈군

남의 거처에 방문할땐 머리카락 간수를 잘하게

...유념하지

노르웨이로 가보게

이유는?

자네가 쓴 수식에 문제가 있어


로키는 눈썹을 치켜 올렸음


섬이 가라앉을지도 몰라


웃기지 말라며 제 마법의 완벽성을 주장하던 로키는 묵묵히 보고만 있는 닥스를 보며 초조하게 이를 갈았음


사실이 아니면 후회하게 해주지, 마법사

날 찾을 수 있다면 말이지


닥스는 제 할말만 하고 사라짐. 로키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림. 한 백년은 잠적하려고 했었는데 계획이 뒤틀림












잠깐 멀리서 살펴보고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음. 로키는 절벽에 서서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떴음. 공중에 떠있는 아스가르드는 굳건하게 그 위용을 뽐내고 있음. 문제가 있다면 어디일까? 머리를 굴리며 섬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데-


로키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음. 로키는 딱딱하게 굳음


억지로 얼굴 근육을 움직여 화사하게 웃는 표정을 만들고 뒤돌자 토르가 서 있었음. 오랜만에 본 제 형은 여전히 센스없는 후드 티와 진을 입고 있음


이런, 마법사를 이용하면서까지 날 불러내다니

내 힘으론 널 찾기 힘들어서 말이다

흠, 무슨 일이야

꼭 이유가 있어야 볼 수 있는건 아니잖느냐


형 답지 않잖아. 제 갈길 가자고 해놓고

그랬지

왜 날 불렀지?


날을 세우는 로키를 보며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연다


일을 참 잘 처리했더구나, 내가 나설 필요가 없었어

...

덕분에 왕좌에 앉아만 있었구나

토르

이런 행정은 나에겐 무리겠지

입안의 혀처럼 구는 형의 모습은 재밌지만... 용건을 말해


돌아와라. 토르가 말했음. 뭐라고? 로키는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음. 장소도 대답도 과거 제 누이와의 일을 떠올리게 만들어 불쾌했음


농담치곤 재미없어


부탁하는 쪽은 토르인데 초조해지는 건 자신임. 로키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


농담이 아니다

내가 형 말을 들어야 할 이유를 대봐


빨리 이 지지부진한 대화를 끝내고 싶었음. 토르를 보고 있으면 자꾸 미련이 치밀어 이성적으로 굴 수 없음.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다 잊은 주제에! 미련하고 멍청한 토르 오딘슨! 속으로 욕을 퍼붓던 로키는 이어진 토르의 말에 심장이 발 끝까지 떨어질 정도로 놀람


날 사랑하잖아


방금 뭐라고 했어

네가 날 사랑한다고 했다


확인사살임. 로키는 얼떨떨하게 굳음. 비웃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림. 토르는 이미 확신에 가득 찬 눈으로 저를 보고 있음. 형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나쁘지 않았지만 상대가 자신인게 문제임


무슨 소리야

부정이 늦구나 brother


통렬한 찌르기였음


화를 내자니 김이 빠져버림. 로키는 다 포기하고 힘없이 물었음


기억 난거야?

조금

언제부터 알았어

네가 사라지고부터 계속 꿈을 꿨다

...모두 장난이었다고 하면 믿겠어?


부질없는 희망을 담아 보지만


요즘 형제들은 장난으로 섹스하나?


라고 답해버리는 형을 보며 할 말이 없어짐


돌아와

...

아스가르드의 로키잖아

형 가끔 엄청 잔인한거 알아?

내 어디가?

...됐어, 난 이제 오딘슨도 아니고 형 곁에 머물 이유가 없지

날 사랑한다며

제길 멍청한 토르! 그래서 떠난다는 거잖아! 가끔 그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을지 궁금해


로키가 진심으로 분통을 터트리자 토르는 어깨를 으쓱함


나도 널 이해할 수 없다. 아우야

그러니 제 갈길 가시죠. 폐하


로키는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는 자세를 취하며 한껏 비꼬았음. 토르는 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염


로키, 너도 날 사랑하고 나도 널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한다는거냐? 네 변덕에 맞추기 힘들구나


로키 자꾸 놀란다


지금 뭐, 날... 사랑한다고? 


로키의 말에 토르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임. 사카아르에서 제 등에 복종 디스크를 붙이고 만면 가득 웃던 모습과 똑같아서 로키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짐. 날 놀리는 건가? 혹시 내 등에 그게 붙어 있는거 아냐? 혼란에 빠진 동생을 보며 토르는 껄껄 웃음


네 반응을 보아하니 누가 장난의 신인지 모르겠구나


본인 입으로 말하면 부끄럽지 않아? 로키는 속으로만 생각함. 등 뒤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천년간 놀림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아짐


형제애를 말하는건 아니지?

섹스하는것도 형제애의 연장이라면 그렇다 할 수 있겠군

오 제발...


큰 소리로 웃는 토르를 보면 진지해지기 힘듬ㅎ


나는 헝을 기만했어

넌 언제나 그렇지 않느냐

...기억없는 형의 마음을 파고들어 내 사랑을 강요했지

나도 너를 사랑한다

...곁에 두면 계속 배신할걸

그게 네 매력이니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만

오, 형은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구나

솔직하다고 해다오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로키를 보며 토르는 씁쓸해짐. 절벽에 오기 전까지 계속 고민했었던 자신이 바보같음. '거절해야지' 마음만 먹다가 결국 보류하고 받아들였던 과거 테크를 그대로 밟음.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동생이 멍청한 토르ㅎ 라고 놀려도 할 말 없음


로키가 울듯이 매달리는 눈을 해오면 결국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다. 제 갈길 가자는 말도 '네 갈길은 내 길과 같지? 그러니 함께 가자'라는 의미가 되어버림ㅋ 인정하면 편함


탁 트인 절벽 너머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옴. 멀지 않은 곳에 떠있는 섬을 배경으로 형제는 한폭의 그림처럼 배경에 녹아듬


또 우는거냐

시끄러워

이렇게 마음이 여려서 어떡할까 내 동생은

침대 위에선 내가 형을 울리니까 됐어

? 운 적 없다만

...정말 멍청한 대화야. 형이랑 말을 섞으면 늘 이렇군

싫어?

...그럴리가


로키가 큭큭 웃었음. 토르는 두 팔을 벌리곤 말했음


이리 와, 로키


속이 뜨겁다


그토록 괴롭고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럭저럭 추억이 된다. 토르와 함께 있으면 모든게 사소하게 느껴졌다. 로키는 가지지 못한 시원시원하고 올곧은 제 형은 복잡한 매듭을 쉽게 풀어버리는 재능을 가졌다. 한때는 그것을 질투했었지만 역시 돌이켜보면 과거의 일 일 뿐이다.


마른 풀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로키가 발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려도 토르의 팔이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 마침내 앞에 선 동생을 조감 과하다 싶을 정도로 꽉 안아 등을 토닥여 준다. 바람이 둘을 스치고 지나갔다


날 놓지마

그러마









제인이 한 말이 있다

지금 그 여자 이야기가 왜 나와

내가 연인에게 기대지 않는다더구나

확실히 형은 지나치게 혼자 다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지

그러니 앞으론 네가 날 도와다오

...또 배신당하면 어쩌려고

그래도 괜찮을 만큼만 기대마

그러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