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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팁토르 썰

스팁토르로 이런 거 보고 싶다. 어느 날 금발이 하얗게 샌 늙은 토르가 스티브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현재의 토르는 우주에 일이 생겨서 지구에서 모습을 감춘지 좀 됐겠지. 노인 토르는 이상하게 스티브 옆에만 있으려고 할거다. 왜 나와 함께 지내려고 하냐 물어보면 대답없이 씩 웃기만 함

 

운동하고 장보고 가끔 영화나 연극을 보는 등 유흥이라곤 거의 없는 담백한 삶인데도 노인 토르는 스티브 곁에 붙어있기를 원함. 상당히 이상하지만 갑자기 시간을 거스르고 나타난 몇 만년 산 친구를 내치자니 좀 힘든 상황. 스티브는 반강제적으로 그와 함께하게 되는데 딱히 나쁘진 않았음

 

나이가 많다고 해도 토르의 기억력은 좋았고 미래가 심하게 바뀌지 않는 한에선 조언도 해주겠지. 그 약간 오딘처럼 초월자적 현명한 이미지임 당신은 내가 아는 토르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스티브가 말하면 노인 토르는 고개를 저으며, 그때와 달라진 건 없다네. 나도 자네들을 향한 내 감상도

 

어느날 노인 토르가 스티브에게 함께 바람 쐬러 가지 않겠냐고 물어봐서 별 생각없이 가자고 했더니 노르웨이 절벽임. 헤아리기 힘들 만큼 먼 옛날 아버지가 떠난 곳이었소. 노인 토르가 손을 내밀며 바위로 안내함. 둘은 바위에 앉아서 시시껄렁한 일상 이야기-스티브가 말하고 토르가 들어줌-를 함

 

얼마나 지났을까 노인 토르의 몸이 금색으로 빛남. 스티브는 본능적으로 이게 그의 마지막임을 깨달음. 당황해서 손을 뻗자 노인 토르가 허공을 해매는 손을 잡고 손등에 키스함. 잘 있게나. 언젠가 우린 다시 만나게 될거요. 사랑하오. 라고 말하며 금빛으로 흩어짐

 

스티브는 날이 어두워 질때까지 그가 사라진 하늘 너머를 바라 봄. 몇 달 지나서 현재의 토르가 돌아 온다. 금발 토르는 특유의 호탕한 미소를 지으며 이번엔 좀 힘들었다고, 그래도 그대들을 보고 싶어 얼른 해치우고 왔지! 껄껄 웃으며 외침. 스티브는 그를 보며 노인 토르가 생각나서 기분이 이상함

 

토르 귀환 기념 파티에서 괜히 울적해진 스티브는 타워 베란다에 혼자 나와 있는데 토르가 다가옴. 그는 아스가르드르 전통주를 마시며 조금 취했는지 양 볼이 붉은 상태였음. 평소와 달리 머뭇거리는 모습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함. 스티브가 궁금해하자 토르는 우물쭈물 마음을 다잡고 크게 외침

 

그대를 사랑하오, 나와 함께 해주지 않겠소? 천둥신다운 당당한 고백이었는데 얼굴이 불그스름하다. 술 탓이라 변명하기 위한 것임을 눈치 챔.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노인 토르가 한 말이 떠오름 [언젠가 우린 다시 만나게 될거요.] 스티브는 지금이야말로 운명의 순간임을 확신함

 

스티브는 대꾸없이 웃으며 승낙함 방금 좋다고 했소? 믿기지 않는지 두 번 세 번 물어본다. 대답은 여전함. 나도 자네가 좋아. 토르는 얼굴 달아올라서 스티브 껴안고 볼 부빗부빗함. 이렇게 외계인의 지구 귀환 축하 파티는 스티브랑 토르의 연애 첫 날 기념파티로 바뀌어 버리고~

 

힘을 모아 우여곡절 끝에 지구를 지키길 여러번.. 둘은 싸움도 별로 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오래사는 스티브와 함께 하는 토르는 그의 마지막 순간에도 변함 없이 곁에 있어 주겠지. 처음과 똑같이 반짝이는 긴 금발을 주름 가득한 손으로 쓰다듬던 스티브는 곧 끝이 다가옴을 느낌

 

스티브는 몸을 일으킴. 부축해 주는 토르의 손을 잡아 올려 손등에 키스하며 웃으며 말하는 것이다. 내 사랑, 언젠가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러니 울지 마. 스티브는 편안하게 눈을 감고, 토르는 늘 씩씩하고 행복하라는 그의 유언대로 최선을 다해 삶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몇 만년의 길고 긴 삶의 끝자락에서 먼 옛날 사랑했던 캡틴 아메리카를 보러 과거로 돌아가는 노인 토르가 보고 싶었다. 인피니티 코즈믹 러브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