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sul

사랑 주는 토르(토르제인) 1

끝없이 사랑주는 토르 보고 싶다. 오딘에 의해 추방당한 것이 아닌 아스가르드를 지키기 위해 수르트랑 싸우다가 지구로 떨어졌다고 하자. 로키토르 기반으로 토르제인이나 토르른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됨. 딱히 보상 받을 생각없이 주기만 했는데 상냥한 필멸자들에게 사랑 받으며 행복하고 슬픈 토르

 

로키토르가 기반이 되는건 필멸자들과의 사랑에 영원이 없기 때문이다. 애정의 뜨거움은 비할데 없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신생과 100년도 못살고 죽어버리는 인생이 맞물리면 새드엔딩이 내장된 결말.. 토르와 같은 시간을 걷는 건 로키 뿐이므로. 염세적인 동생과 낙천적인 형은 약간 평행선 느낌

 

깊은 잠에 빠진 오딘과 약해진 프리가를 대신해 젊은 왕 토르가 즉위함. 얼마 지나지 않아 수르트가 라그나로크를 일으키려고 아스가르드를 습격함. 여기서 로키는 토르와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입양된 왕제임. 그래서 우리가 아는 성인 토르의 곁에는 14~15세 정도의 소년 로키가 있었음.

 

바이프로스트부터 결계를 쳐 막아두고 있긴 했지만 수르트에게 뚫리는 건 시간문제라 토르가 직접 묠니르를 들고 전투에 나서는 모습 보고 싶다. 프리가와 로키가 걱정하지만 괜찮다고 달래며 왕으로서 뒷전에 설 수 없다 밀어붙임. 하지만 아스가르드에 가까워진 수르트의 강한 힘은 만만하지 않고

 

결국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임을 받아들인 토르는 바이프로스트로 마중나온 로키 이마에 입맞추며 이제 네가 왕이노라, 아스가르드를 부탁한다. 선포함. 로키는 사색이 되어서 나는 형을 대신할 수 없다고 절규함. 힘을 위시한 나보다 똑똑하고 현명한 네가 왕의 자리에 걸맞는 인물이다며 달래주겠지

 

창백하게 질린 로키에게 제 붉은 망토를 둘러주고 앞에 무릎 꿇음 왕이시여, 출전을 허락해 주소서 로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토르의 금발 머리에 손을 얹고 축성함. 토르는 대답없이 웃어주다가 새로운 왕을 뒤로한 채 발키리들과 수르트에게 간다

 

그리하여 로키는 원하지도 않았던(원할지도 모를 미래를 빼앗긴) 왕좌에 오르게 됨. 어린 로키는 강한 형을 질투하기보다 숭배하고 우러러 보았음. 당연히 형이 무사히 돌아올거라 믿었지만 찾은 것은 묠니르의 부서진 조각 뿐이었음. 프리가는 깊은 상심에 빠져 로키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발할라로 감

 

워리어즈가 곁을 지키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토르의 친우들이었음. 물론 로키와 아스가르드를 위해 충정을 바침. 하지만 어린 나이에 과중한 위업을 지게 된 로키에게 신뢰감을 주기엔 부족했음. 장난의신으로 자랐을 로키는 토르의 부재로 인해 열등감을 느낄 새도 없이 염세적으로 성장함

 

'현명한 왕이 되어야 한다.' 토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로키의 머릿속에 강박적으로 각인되어버림. 포 더 아스가르드, nnn년간 꿈속에서 괴롭히는 외침임. 로키는 아스가르드와 아홉왕국의 평안을 빌며 왕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며 외롭게 살아감. 헤임달에게 토르의 생사를 묻던 전통도 100년이

 

지나자 더는 행해지지 않음. 토르 오딘슨은 죽은자로서 부서진 묠니르의 조각과 함께 아스가르드의 한켠에 비석으로 기념됨. 곧 영원한 잠에 빠진 오딘도 황금빛으로 변해 발할라로 갔고, 로키는 우연찮게 비밀 창고에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되지만 그뿐이었음. 아스가르드의 왕이니까

 

라우페이가 은밀한 제안을 해왔지만 칼같이 잘라버림. 죽일 가치도 없다며 아홉왕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서 얼음동굴에 유폐시킴. 로키는 오딘이나 토르처럼 강하지는 않았지만 현명했기 때문에 쓸데없는 유혹은 과감하게 처냄. 전사였던 형을 대신해 군사력에도 힘을 쏟음. 아스가르드는 강성함

 

모든 열등감과 삽질의 대상이 되었을 형이 사라진 세상의 로키는 제 유능함을 적재적소에서 발휘할 수 있었음.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결핍이 있었음. 그리고 그 결핍은 자신이 서리거인임을 깨달았을때 더욱 커졌을 것이다. 발할라로 갈 수 없으니까! 다시 만날 수 없으므로

 

겉으론 현명한 왕이었지만 속은 텅 빈 상태의 로키는 성인이 되어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서서히 썩어들어감. 또 하나 로키의 불행은 그런 제 상태를 파악하고 어떻게든 대처해줄 존재가 없었다는 것임. 그나마 헤임달이 조금 느끼긴 했지만 제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소용이 없었음

 

왕위와 함께 받은 토르의 붉은 망토를 둘도 없는 가보처럼 보관했음. 가끔 꺼내서 만져보기도 하고 날아간지 오래인 향기를 찾는 행동은 결코 평범한게 아니었지. 설령 지적해줄 자가 있었다해도 로키의 마음의 병세를 멈추지는 못했을 것임. 아스가르드가 평화로울수록 로키는 메말라감

 

토르 시점으로 돌아가자면 수르트를 죽이는건 성공했지만 큰 부상을 입고 바이프로스트에서 떨어져 지구에 쳐박힘. 하필 1800년 후반 남북전쟁이 한창인 미국 어느 쓰레기장 같은 곳에 떨어졌는데 거기서 노숙자들에게 주워짐. 큰 부상이었지만 강한 육체 덕분에 금방 아물었음. 다만 기억은 불확실

 

정신을 차린 토르는 저를 간호하는 늙은 노숙자의 팔을 꽉 붙잡아 부러트리는 바람에 그 뒤론 힘을 쓰는데 소극적이 됨. 긴 금발에 범상치 않은 신체와 외모조건으로 보아 어디서 굴러먹던 천 것은 아니라는 추측으로 한몫 잡으려고 주워온건데 여긴 어디고 자긴 누구냐는 소리를 하니까 다들 혀를 참

 

너같이 암것도 모르는 놈들은 나라에서 모아 정신병동으로 보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토르는 겁이 안나겠지. 그래도 힘 세고 어느정도 의사소통도 되니까 부려먹힘. 그렇게 n년이 흐르는데 나이를 먹지도 않고 약해지지도 않으니까 어느 순간 다들 악마보듯 토르를 대하는 것이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최고령 노숙자(토르가 팔을 부러뜨렸던)가 약간 모자란 손자 대하듯 토르를 봐줬는데 병에 걸려 죽음. 혼자 어디로든 가버리라 유언처럼 남겨도 토르는 앙상한 손만 잡아주다가 혐성 동료들에 의해 목화농장으로 팔려가게 됨. 살짝 힘만 줘도 밧줄을 끊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음

 

노예해방이니 뭐니 전쟁은 한창이었지만 완전 딴 세상 이야기임. 그나마 최악의 주인은 아니었던지라 죽을만큼 부려먹히진 않았음. 뭐 토르는 체력이 남달라 상관없긴 했음. 노숙자들과 함께 쓰레기장에서 지내면서 평범한 사람들처럼 힘조절하는 법을 배웠음. 다른 노예들과 피부색이 달랐는데

 

흑인이 아니라고 편한 취급을 받은게 아님. 토르는 말을 잘 안했고 복종하는 법을 배운 상태였음. 저를 돌봐주던 노인 노숙자에게 '절대 힘을 쓰지말고, 윗사람에게 반항하지 말기.' 강하게 주지당한 말을 따랐을 뿐임. 토르는 무슨 행동을 해도 심지어 벌을 받아도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함

 

그래서 약간 정신이 모자란 장애인처럼 취급을 받았음. 까만 피부와 더불어 장애인들을 인간 이하 취급하던 미개한 시대였음. 토르는 허우대만 멀쩡했지 흑인들과 똑같은 처지였음. 그렇지만 피부색이 다르단 이유로 흑인쪽에도 섞이지 못하고 붕 뜬 상태였음. 새벽에 눈을 떠서 목화밭에서 일하고

 

돼지죽같은 부실한 식사를 하고 다시 밭으로 가 일하고, 가끔 중간관리자에게 불려가 나무 장작을 패거나 청소를 돕기도 했음. 말을 시키는 사람도 없었고 먼저 꺼낼 필요도 없었음. 심하면 일주일 넘게 아무말도 없이 지냄. 그러다가 가구를 팔러 온 남자와 그의 딸 제인 포스터를 만나게 됨

 

제인은 그 시대 기준으로 괴짜에 가까운 여성이었음. 20대 후반 당시로선 과년한 나이에도 혼인하지 않았고 자수를 놓거나 요리를 하는 등 집안일에는 젬병이었음. 가구 세일즈맨 아버지의 자유방임덕도 컸음. 여자는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그녀는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 스스로 독학했음

 

남자와 제인은 분위기에 맞는 가구를 짜기 위해 며칠간 저택에 머물렀음. 늦은 밤, 그녀는 저택 뒤 작은 산 위에 올라가 염소기름 등불에 의지해 별자리를 그렸는데 거기서 토르를 만남. 토르는 뗄감을 구하려고 늦게까지 뒷산에서 도끼질을 하던 중이었음. 쿵-쿵- 소리가 일정하게 울리자 겁을 먹은

 

제인이 등불을 들고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쓰러졌는데 토르가 손을 잡고 일으켜주며 둘의 인연이 시작됨. 처음엔 긴 금발을 질끈 묶고 앞섬이 벌어진 단단한 몸과 잘생긴 외모에 호감이 생겼음. 토르는 과묵했지만 말을 걸면 결코 무시하는 법이 없었음. 이해하기 힘든 질문은 모른다고 꼭 답했음

 

그 솔직함이 제인의 마음에 들었음. 노예라고 들어서 처음엔 좀 놀랐지만 문제되는 점은 아니었음. 말했다시피 그녀는 괴짜였으니까. 당시 최하 계급이 노예였다면 '자유인 여성'은 그보단 높을지 몰라도 '자유인 남성'에 비하면 낮았음. 노예인 토르는 주인과 관리자에게 복종하는 듯 보였으나

 

제인에겐 토르는 고분고분 순종하고 비굴하게 굴 남자처럼 느껴지지 않았음. 걷거나 앉거나 하다 못해 목화밭에서 몸을 숙여 일할때조차 출처를 알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음. 동시대 남성들과 다르게 자신을 무시하지도 않았음. 어쩌다가 함께 시내로 심부름을 갈 일이 있었는데 뒷골목에 쓰러져 있는

 

병든 노인을 무시하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보면 약자에 대한 예의도 갖추었음. 제인이 보아온 그 어떤 남자들과도 달랐음. 그녀는 점점 토르에게 빠져들었음. 그리고 토르 또한 활기찬 제인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음. 그녀는 말이 많았지만 딱부러졌고 생명력이 넘쳤음

 

토르에게 제인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이었음. 힘을 꾹 누르고 지내느라 쌓였던 평소의 스트레스도 종달새처럼 끊임없이 말하는 그녀 곁에 앉으면 확 누그러지는 기분임. 첫눈에 반했던 제인과 달리 토르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감.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자 토르는 잊었던 과거 한켠을 되찾음

 

황금빛으로 물든 성과 아름다운 도시, 그리고 작고 소중한 뭔가를 아껴주었던 장면을 떠올렸음.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음. 어쩐지 선물을 받는 기분이 됨. 제인과 손을 잡으면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고 그녀의 말을 듣고 답할수록 지식이 충만해지는 기분임. 둘은 남들의 시선을 피해 사랑을 키워나감

 

제인은 강한 여성이었지만 현실을 모르지는 않았음. 제 감정에 솔직했지만 토르는 노예였고 연애는 고사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 치뤄야 하는 대가는 쉽게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었음. 속으로 고민하는 제인과 다르게 토르는 거칠것이 없었음. 노예로 지내긴 했지만 족쇄로는 토르를 속박하지 못함

 

힘을 쓰지말고 높은 분께 대들지 말라고 한 노숙자의 말은 흐려진지 오래임. 제인의 작고 보드라운 몸을 품에 안고 있으면 다 잊혀짐. 그에겐 인간을 제압할 힘이 있었고 그 어떤 총과 칼로도 뚫리지 않을 강한 몸을 지녔음. 제인을 만나기 전엔 목적도 방향성도 없었기에 죽은듯이 지냈지만 이젠 다름

 

늦 봄,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는 세콰이어 나무 아래서 제인이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말했음. 토르는 나도 사랑하오, 라고 대답했음. 달콤함에 눈이 먼 둘은 밀회를 지켜보는 눈이 있는 것도 몰랐음. 역경은 순식간에 휘몰아침. 토르는 굳은 얼굴로 저를 부르는 관리인의 뒤를 따라갔다가 창고에 갇혔음

 

쇠자물쇠로 잠긴 통나무 곳간 따위 주먹질 한방이면 간단하게 부서졌겠지만 토르는 망설였음. 오랫동안 억누르고 산 영향보다 이걸 부수고 나가면 혹여라도 제인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음. 갇히기 전 관리자에게 노예 주제에 여자를 넘보냐는 말을 들었기에 더 그랬음. 그래서 머뭇거림

 

그런 토르를 제인이 찾아옴. 모포를 뒤집어쓰고 몰래 찾아온 제인이 다급하게 자물쇠를 품. 그냥 부수고 나갈 수 있었지만 조용히 하라며 심각하게 작업중이라 묵묵히 기다림. 문이 열리자 제인이 달려듬. 토르는 얼떨결에 그녀를 껴안고 멍하니 내려다 보았음. 함께가요. 그녀가 말했고 토르는 끄덕임

 

그렇게 토르는 제인과 도망침. 제인은 도망친 노예가 어떻게 되는지 알았기에 절대로 들켜선 안된다고 생각했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움. 내 걱정은 마시오, 제인. 진심이었지만 제인은 인상을 쓰며 수염을 팍 잡아당김. 당신은 조용히 있어요, 내가 다 알아서 해. 엄청 씩씩하게 말하며 지도를 펼침

 

뉴욕으로 가요

뉴욕?

인구가 많아서 사람들 틈으로 숨어들면 되요. 토르, 열차 타 봤어요?

멀리서 본 기억이 있소

 

제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올리며 토르가 대답했음. 일단 루이지애나에서 벗어나면 한결 나을거야. 제인이 지도를 내려 보며 중얼거렸음. 토르는 그녀의 목에 머플러를 둘러줌

 

루이지애나 깡촌에서 증기기관차를 탐. 역무원에게 뒷돈을 주고 양들이 가득한 칸에 오른 둘은 서로를 꼭 껴안고 구석에 앉았음. 누린내와 배설물 냄새가 끔찍했지만 둘은 자주 웃었음. 제인은 환한 얼굴로 미래를 이야기했음.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 좋소. 제인의 머리에 턱을 부비며 토르가 말함

 

나도 그래요. 제인은 웃으며 토르의 수염에 머리를 부볐음. 토르는 정말 괜찮은 줄 알았음. 자신과 함께하기 위해 그녀가 포기한 것들의 무게를 의도적으로 무시했음. 뉴욕에 도착한 둘은 적은 돈으로 방을 하나 마련함. 토르는 작은 석탄가게에서 일을 제인은 바느질을 시작함

 

별을 읽고 상식에 밝은 여자였지만 그런 지식탐구는 살아가기위해 필수불가결한 행동에 비해 뒷전으로 밀렸음. 이것도 토르는 몰랐음. 그녀는 토르와 있을때 행복해 보였고 실제로 그랬음. 제인을 위하는 길은 자신과 함께하는 것 뿐이라고 자만심을 부림. 체온을 맞대고 정직하고 바른 삶을 살아감

 

도망친 노예따위 흔하디 흔한 이야기였어도 토르는 눈에 뛰는 남자였음. 남부에서 노예를 굴리는 농장주들 사이에 흑인이 아닌 허우대 멀쩡한 백인 남자 노예는 드물었음. 토르의 옛주인은 사악하고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적으로 그랬다는 뜻임. 토르의 수배전단은 전국에 뿌려짐

 

뉴욕은 넓었고 나날히 발전하는 도시였음. 인파 속으로 숨으려던 제인의 판단은 옳았음. 토르가 흑인이었다면 발견되지 않았을것임. 전쟁이 끝나갔지만 노예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던 기득권들은 각종 정부사업을 낙찰받기 위해 뉴욕으로 몰려 있었음. 거기에 농장주의 지인도 있었음. 운이 없었음

 

석탄을 짊어지고 길거리를 걷던 토르를 마차를 타고 지나던 남자가 유심히 관찰함. 지인이 준 수배범과 비슷했음. 큰 키에 금발, 근육질 몸에 푸른 눈, 듣자라니 자유인 여자와 도망쳤다고 했지. 남자는 아랫사람을 시켜 토르를 미행하게 함. 사용인은 토르와 함께 있는 제인을 확인하고 보고했음

 

남자는 눈을 얇게 뜨고 손을 비비며 토르와 제인을 잡아올 것을 명했음. 둘을 농장주에게 건네주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빠르게 계산함

 

아침, 기대와 달리 돌아온 하인들은 빈손이었음. 어딘가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옷차림도 얼굴도 엉망인 상태로 "놈은 인간이 아니에요, 그건 괴물이야." 중얼거림

 

머리를 몽둥이로 내려쳤는네 쇠로 만든 지렛대가 휘어졌다고 했음. 당황한 하인들이 여자를 먼저 잡으려고 하자 그 행동이 괴물의 화를 돋군 탓인지 눈을 번뜩이며 몽둥이를 부수고 밧줄을 찟어발김. 60년을 살아온 잔뼈 굵은 건달들은 아연실색함. 다행히 여자가 말리는 바람에 목숨을 건질수 있었음

 

젊고 힘센 것들을 더 데려가!

 

주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명령하자 하인들은 우물쭈물함. 그 꼴들이 짜증나 당장 잡아오지 않으면 죄다 사탕수수 농장에 팔아버릴 줄 알라며 으름장을 놓음. 하인들은 노예는 아니었지만 남자의 악랄함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음. 어쩔수 없이 인원수를 늘렸음

 

제인은 지렛대로 얻어맞은 토르의 뒷통수를 슬피며 어쩔줄 몰라했음. 난 괜찮소. 가격당한 부위를 보여주느라 머리를 숙인상태로 토르가 말했음. 큰 소리가 났는데..당황한 목소리에 토르는 제 머리를 헤집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음. 걱정마시오. 내가 처리할 수 있어요. 그 말에 제인은 딱딱하게 굳음

 

사람을 다치게 해선 안돼요

그들은 그대를 해치려 했소

명령받아 그런 거에요

하지만

토르, 당신은 이상하게 강하네요

 

제인이 짐을 챙기며 말했음. 둘은 작지만 소중했던 보금자리를 등지고 인파속으로 녹아듬. 하지만 인원수가 늘어난 무리는 행인들 보다 머리 하나는 큰 토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함

 

대낮에 혈투가 벌어짐. 지나가는 행인도 많았음. 토르는 달려드는 남자들을 손쉽게 던져버렸음. 과일 행상에 직격타를 당해 사과와 포도가 엉망으로 바닥을 굴렀음. 제인은 다급하게 토르의 허리에 매달렸음. 여기서 벗어나요. 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옆구리에 끼고 발을 굴려 공중에 떠오름

 

발밑으로 놀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보였음. 제인은 동여맨 모포를 붙들고 눈을 질끈 감았음. 쿵쿵 소리를 내며 지붕에서 지붕으로 옮겨 감. 몇 번을 건물 사이를 오가다 인적 드문 골목에 착지함

 

당신은 천사인가요?

천사가 뭐지?

신의 사자를 뜻해요. 대체 뭐가 뭔지..

미안하오

사과할게 뭐에요

 

둘은 계속 도망쳤음. 한 번 들켰는데 두 번이라고 괜찮을거란 보장이 없었음. 그녀는 토르가 힘을 사용하지 않길 바랐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키는대로 함. 싸구려 염색약을 사서 금발을 검게 물들임. 둘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거처를 옮겼음. 그렇게 부평초처럼 떠도는 사이 제인은 많이 약해짐

 

제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토르는 안절부절 못했음. 아스가디언인 토르는 평생 아파본적이 없었음. 노숙자 생활을 하며 그가 본 '아픈'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져서 결국 죽음을 맞이함. 노예였을 적도 사정은 비슷했음. 제인처럼 온몸에 열이 올라 쓰러진 흑인들은 쓸쓸하게 격리되어 죽어갔음

 

항생제는 고사하고 의원을 부르는 값도 만만치 않았음. 토르는 작고 허름한 침대 옆에 무릎 꿇고 손을 잡아줌.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제인이 힘없이 칭얼거렸음. 토르는 고개를 끄덕였음. 내가 불러오겠소. 진지하게 말하자 제인은 붉게 물든 얼굴로 고개를 저었음. 안돼요, 그러면 당신이 죽어요

 

죽지 않아

정말이죠? 약속해요

절대 죽지 않겠소

 

손등을 쓰다듬어주며 토르가 말하자 그제야 제인이 웃었음. 새벽녘까지 계속 열이 오름. 둘이 머물도록 도와준 친절한 노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듬. 안타깝지만 열병에 걸려 살아남은 자는 보지 못했다고 함. 토르는 늙은 노숙자의 마지막을 기억함

 

그때도 앙상한 손목을 붙들고 있었음. 죽음, 시간이 흐르는 한 막을 수 없는 것. 하지만 제인은 늙은 노숙자와 달리 아직 젊었음. 처음으로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음. 제인에겐 배우기만 함. 사랑, 육체의 따뜻함, 행복, 억울함, 슬픔, 마지막으로 자책, 자신이 아니었으면 그녀는 아프지 않을것임

 

그대도 죽지 마시오

 

잠든 제인의 이마에 키스하며 토르가 소망을 담아 간절하게 중얼거림. 그리곤 방에서 나왔음.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노파를 깨워 모아둔 돈을 다 주며 말했음. 사람이 올때까지 제인을 부탁한다고, 또한 자신은 나쁜 악당이라고 말했음. 노파의 확답을 받고 토르는 길을 나섬

 

자기를 찾는 이들을 역으로 찾아가 아무 소용없는 쇠사슬을 팔목에 두름. 토르는 탈주한 노예 주제에 감히 자유인의 딸을 납치해 몹쓸짓을 한 죄목으로 감옥에 갇힘. 소식을 들은 제인의 아버지가 달려와 저주를 퍼부으며 딸을 돌려달라 외쳤음. 그래서 토르는 악마를 연기함

 

네 딸은 죽어가고 있다. 토르는 그가 아는 가장 사악한 인간의 모습을 덧씌우며 웃었음. 재판장에 서서 죄를 고백하며 제인 포스터의 위치를 알려줌. 아버지는 다급히 사람을 보내 허름한 집에 누워있던 딸을 구출함. 노파는 시킨대로 악당에게 협박을 받았다 말했음. 토르에겐 교수형이 선고됨

 

그녀에겐 내 최후를 말하지 마시오

 

유언을 남기라는 말에 목에 밧줄을 건 토르가 대답했음. 제인의 아버지는 치를 떨며 그 따위 부탁이 없어도 내 딸의 귀에 악마에 대한 소문이 들어갈 일은 없다고 이를 갈았음. 신부가 마지막으로 기도문을 외움. 작은 신호와 함께 발판이 사라짐. 토르는 눈을 감음

 

다들 토르가 죽은 줄 알았음. 그래서 다른 죄수들의 시신과 함께 낡은 수레에 담겨 공동묘지로 옮겨짐. 더러운 모포에 감긴 죄수의 시신은 묘지에서도 가장 구석지고 축축한 곳에 단체로 매장되었음. 시신을 차곡차곡 던져 넣고 젖은 흙이 그 위로 덮혀짐

 

그날 밤, 묘지기는 흙이 파헤쳐진 걸 발견함

 

겨우 정신을 차린 제인은 이제 고통은 끝났다며 저를 안아오는 아버지의 포옹을 받으며 힘없이 물었음. 토르는요? 그녀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악마처럼 일그러졌음. 놈은 제가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지옥을 뜻했지만 제인은 다르게 생각함. 그는 정말 천사였을까, 그래서 하늘로 돌아간걸지도 몰라

 

어느쪽이든 결코 만날수 없음을 직감했음. 제인은 누운채로 펑펑 울었음. 제 손목을 잡고 있던 굵은 손가락의 촉감이 생생했음. 손등을 쓸어주며 사랑한다 끊임없이 속삭였었지. 순식간에 찾아온 사랑은 열병이 나으면서 신기루마냥 함께 사라졌음. 꿈과도 같은 달콤함은 공허하게 끝남

 

사람은 망각의 동물임. 과거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음. 몇 년이 지나고 제인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다정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음. 똑똑한 부인의 연구를 적극 지원해주는 그도 일종의 괴짜였음. 제인은 가끔 창문 너머로 있을리 없는 사람을 찾기도 했음. 해가 지날수록 그 횟수는 줄어감

 

자식을 셋을 둔 노년의 제인 포스터는 염소기름 등불에 의지해 별자리를 그리던 아가씨 시절과 다를바 없이 장난꾸러기처럼 웃었음. 손주를 앉혀두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현명한 할머니 역할도 해내며 그녀의 행복한 삶은 끝을 향해감. 남편이 죽고 10년이 지나 그녀도 침상에 누움

 

노안으로 눈앞이 가물가물하던 제인은 의사의 처방대로 조용한 2층으로 옮겨짐. 자식과 손주들의 곁을 지키며 슬픈 표정을 짓자 그녀는 웃으며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쓸어주었음. 모두가 나가고 혼자가 되자 그제서야 표정이 좀 가라앉음

 

바람이 불어와 창가로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가 서있었음

 

정말로 천사였군요

제인

이리와요, 토르

제인이 웃으며 손을 들었음.

 

토르는 조금 주저하다가 그녀의 곁으로 감. 나무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냄. 침대 옆에 무릎 꿇고 앉아서 앙상하고 쭈글거리는 손을 잡아줌

 

약속 지켰네요

그대의 말이니까

하지만 쓸쓸해 보여요

당신과 함께라 괜찮소

나는 곧 떠나요

그때까지 내가 곁에 있겠소

 

제인은 잡힌 손을 빼내 토르의 얼굴을 쓸었음. 그녀에겐 옛날, 토르에겐 현재. 제인은 가슴 속 깊이 치밀어오르는 슬픔을 느꼈음. 이 가엾은 남자는 반백년도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음. 그때와 다를바 없는 얼굴로, 감정으로 이자리에 서있음

 

토르, 날 잊어요

 

제인은 웃었음

 

난 당신 말고도 소중한 사람이 잔뜩 있어요

 

잔인할지도 모를 말이었지만 다행히 토르는 웃었음

 

당신이 행복해서 다행이오

 

거짓은 없었음. 제인은 토르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음

 

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날 잊고, 사람을 만나요. 사랑을 해요

 

토르는 뺨에 올려진 제인의 손을 제 손으로 덮었음. 따뜻했지만 곧 식어갈 것임. 죽음이 그녀를 어딘가로 데려가면 다시 혼자가 되겠지만 상냥하고 고집센 제인은 토르에게 다시 약속을 요구함. 사랑을 해요. 똑같이 상처받고 같은 과오를 범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행보를 강요했음

 

약속하오

 

제인은 조용히 웃으며 눈을 감았음. 토르는 계속 제인의 손을 잡아주었음. 그 감촉을 느끼며 제인은 편안하게 마지막 숨을 쉬었음

 

'사랑을 해요.'

 

토르는 소리없이 울었음. 그 말은 다정했고 또한 잔인했음. 멀리서 제인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토르는 다시 혼자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