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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주는 토르(로키토르) 6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인간 앞에서 약해진 모습이 싫었음. 그 정도의 감상으로 죽음을 앞둔 노인의 손자 행세를 했는데 돌아온 토르의 격한 반응은 제법 만족스러웠음. 그는 로키를 신기한 마법을 쓰는 유용한 아스가디언 정도로 여기고 있는 듯 했음. 형이 은근슬쩍 자신을 의지해오는 것이 좋았음

 

로키는 언제나처럼 흘러갈 채비를 하는 토르를 만류함. 네 미련함은 익히 알았지만 눈앞에 떨어진 것도 버리고 돌아설 줄이야. 로키의 말에 토르는 툭 내뱉듯 대답함. 적당히 쓸 돈은 있어. 로키는 콧방귀를 뀜. 고작 한 달 정도? 싸구려 여관에 체크인 할 수 있겠지. 토르는 부정없이 목장을 바라봄

 

조나단의 장례를 치뤘음. 괴팍한 노친네 정도로 통하는 그였지만 장례식땐 제법 많이 참석함. 토르는 도날드로서 변호사를 만나 목장 땅과 가축의 처분에 대해 논의한 끝에 조나단의 땅을 마을 공용의 재산으로 기부함. 그래도 가축을 처분하니 그 액수가 제법 컸음. 토르는 펜실베니아를 떠남

 

오하이오를 지나 켄터키의 작은 소도시에서 자리를 잡음. 가진 돈으로 한적한 교외에 작은 집을 사고 일자리도 구함. 10년 정도 그렇게 살았음. 전쟁이 끝났지만 나라가 안팍으로 불안한 냉전시대였음. 어딜 가든 외지인에겐 불친절했음. 조나단같은 사람도 없었기에 토르는 제법 고생해야 했음

 

목수일을 시작함. 자주 들르는 단골 식당에서 추파를 던지던 웨이트리스랑 짧은 연애를 하고 헤어지기도 했음. 제법 평범한 인간처럼 살아감. 가끔 등장한 로키는 불만에 차서 틱틱거렸고 토르는 나지막히 웃었음. 일상이 굴곡없이 흘러감. 토르는 오는 사람은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은 잡지 않았음

 

토르 오딘슨은 겉으로 보기에는 잘 웃고 사랑이 넘치는 남자였지만 그와 사귄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긴 건 끝내주지만 속은 텅 빈 머저리야" 가차없이 평했음. 그도 그럴것이, 날 좋아해? 나도 네가 좋아. 라고 말하는 토르는 거절을 모르는 헤프고 깊이 없는 남자로 통했음

 

로키는 다행이라고 여겼음. 가끔 잠든 토르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때마다 그의 개미사랑이 점점 담백한 쪽으로 발휘되고 있음을 알았음. 성애적인 쪽보다 인간 전체를 향한 이타심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함. 과거 아스가르드 백성들을 아끼던 모습이 떠오름. 로키는 형이 천둥신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함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음. 그리고 그 생각은 얼마 후 깨졌음

 

생필품을 사서 거리를 걷던 토르는 양아치들에게 둘러싸임. 건장한 토르는 보통 시비에 잘 걸리지 않았음. 그러나 술에 취한 남자들은 쪽수를 믿고 과감해졌음. 넘치는 힘을 자랑하고 싶던 망나니들에게 뿌리없는 토르는 좋은 표적이었음

 

돈을 요구했고 토르는 얌전히 지갑을 내밀었음. 처음엔 장난 섞인 시비였지만 반항없이 저들 말에 순순히 따르는 모습이 폭력성을 자극함. 양아치들은 토르를 골목 구석으로 몰아 넣고 본격적으로 린치하기 시작했음. 때리는쪽 손발이 더 타격받았을 터였지만 술에 취해 아픔도 모르고 신나게 휘두름

 

바닥에 쓰러진 토르는 허벅지, 배, 등, 얼굴을 무자비하게 밟는 발길질을 감내함. 그러나 인간의 그 어떤 적의도 자신을 해하진 못함. 아무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음. 그래도 몸을 말고 때리는쪽이 원하는 반응을 보여줌. 어쩐지 바보같다고 생각을 하는데 흥분이 가신 양아치 무리가 슬슬 뒷걸음질 침

 

그들은 미동없이 쓰러진 토르가 죽었을거라 생각했음.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제 손발이 아프겠냐며 잔뜩 겁먹어 볼멘소리를 냄. 그렇게 한동안 우왕좌왕 하더니 서로의 얼굴을 쳐다봄. 잠시 후, 그들은 토르를 두고 도망쳤음.

 

어리석은 자들이군, 토르는 그렇게 중얼거림

 

어리석은건 너야

 

로키였음

 

로키는 모든 장면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음. 양아치들이 토르를 데리고 골목 깊숙히 들어가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멍청한 시비를 거는 것도, 그에 아무렇지 않게 순순히 지갑을 내놓는 형의 모습도! 모두 눈에 담았음. 로키는 마법을 써 그의 내면을 파고들 필요가 없었음. 토르는 체념하고 있었음

 

깨닫는 순간 등줄기로 소름이 스침. 지금까지 토르가 보여주는 수동적인 모습은 단순히 인간을 향한 것만이 아니었음

 

무슨 생각이야 뭐가 왜 놈들을 막지 않았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네 명예를 지켜야지!

나에겐 명예가 없어

 

아무것도 없어, 이어진 토르의 말에 로키는 이를 부득 갈았음

 

일어나

 

골목 구석에 누워 하늘을 보는 토르에게 비죽거리며 말했음. 그러나 그는 대답없이 어두운 밤하늘만 바라봄. 구름이 많아 달도 나오지 않았음. 구르는 쓰레기나 더러운 먼지와 검뎅이가 잔뜩 묻은 더러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음. 로키는 발걸음을 옮겨 토르의 앞에 서서 내려다 봄

 

푸른 눈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미래가 아닌 과거를 향하고 있었음. 고작 100년 남짓한 찰나를 추억으로 포장하고 그리워하는 형을 향해 분노가 치밈. 우리가 함께한 몇 천년의 삶은 아무 의미도 없는거야?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말을 억지로 참으며 로키가 손을 내밀었음 일어나

 

토르는 관성적인 미소를 지으며 팔을 올려 로키의 손을 잡았음. 그 순간 로키는 눈을 빛내며 평소보다 깊이 토르의 내면을 파고들었음. 온갖 바스라진 기억과 새로 생겨난 기억이 혼재된 공간을 뚫고 밑바닥에서 검은 구덩이를 발견함. 그것을 건드리자 엄청난 고통이 훅 몸을 잠식함

 

토르가 이마를 감싸고 비틀거렸음. 로키는 손을 떨치고 뒤로 물러서 가슴을 감싸쥠. 토르, 너! 분노로 몸이 떨렸음. 로키는 똑똑히 보았음. 숨기고 있었던 그의 파괴적인 감정. 죽고 싶은거야..? 로키가 이를 악물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음. 토르는 이마를 감싸쥔 채 벽에 기댐. 한참 대답이 없음

 

그 침묵이 승낙이었음. 로키는 치미는 노여움을 주체할 수 없었음

 

죽고 싶다고? 토르 오딘슨이? 눈 깜빡할 사이에 죽어버릴 인간들과의 이별에 상처받아서?!

로키

닥쳐! 그 얼굴로 그 목소리로.. 나를 부르지마

 

로키는 떨리는 양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음. 그리고 조금 사악하게 웃었음

 

보고싶어?

 

로키의 몸이 빛났음. 토르는 눈이 부셔 인상을 썼음.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인영을 확인하고 토르는 눈을 한계까지 치떴음

 

내가 보고 싶었어요 토르?

 

스티브가 서있었음. 토르는 몸을 휘청이며 벽을 짚고 눈동자를 떨었음. 그리곤 이를 으득 물었음. 입가로 핏물이 흘러내림

 

로키, 네놈..

 

당장, 그만둬.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설마 나를 죽이기라도 할 건가요? 로키가, 스티브가 말했음. 다음 순간 토르는 더 참지 못하고 몸을 움직였음. 목을 쥐고 엄청난 힘으로 바닥에 내리 꽂음. '인간이었으면 죽었겠군' 토르의 체중을 고스란히 받으며 로키는 신음을 흘렸음

 

그 얼굴을 내 눈앞에서 치우란 말이야!

 

토르가 으르렁거리며 외쳤음. 이렇게 화가 난 형은 평생 처음이었음. 로키는 두려움 반, 흥분 반으로 무모한 도박을 해봄. 저 주먹을 제대로 맞으면 배리어를 쳤다고 해도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었음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손을 올려 형의 뺨을 쓸었음

 

로키는 기억에서 본 대화를 토대로 연기를 시작함

 

식사는 했어요? 늦어서 미안해요, 토르가 이런 수모를 당하기 전에 내가 나서서 그들을 쫒아버렸어야 했는데..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요. 맛있는 핫케이크 만들어 줄게요

 

두툼하게 당신 전용으로, 졸리는 목의 고통을 피해 환하게 웃었음

 

목을 쥔 손이 미친듯이 떨렸음. 진동을 피부로 느끼며 로키는 형의 뺨을 계속 쓰다듬었음. 흥분으로 붉어진 피부가 서늘한 손가락에 착 달라붙었음

 

울지말아요, 내 사랑

 

굵은 눈물이 그대로 떨어져 스티브의, 로키의 얼굴을 적셨음. 뜨거웠음

 

으..으윽...

 

악 다문 잇새로 신음이 흘러나왔음

 

스티.. 스티브... 미안하네..

 

목을 쥔 손이 풀어져 로키의 가슴 위에 놓임. 얼음물에 빠지기라도 한것처럼 몸을 떨었음. 로키는 제 위에서 눈물을 흘리는 형을 멍청하니 바라보다가 뺨을 쓸어주던 손을 내려 목뒤로 감쌌음. 그것이 신호가 되어 토르는 로키의 가슴위에 얼굴을 대고 오열하기 시작했음

 

긍지를 모르고 죽음을 생각하는 천둥의신에게 화가 나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으나, 막상 몸부림치며 엉엉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음. 로키는 마법을 풀 생각도 못하고 스티브가 되어 형을 달랬음. 토르는 미친듯이 용서를 구했음. 힘을 숨긴 것이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것 등등

 

이건... 나의 미련이지

토르

원래대로 돌려, 로키

 

잠긴 목소리로 토르가 말했음

 

화낼거잖아. 어쩌면 죽일지도

전에도 말했다시피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토르가 스티브의, 로키의 몸 위에서 떨어지자, 잠시 망설이던 로키는 스팁의 모습을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남. 그 순간 토르가 주먹을 날려왔음

 

윽! 로키는 볼을 감싸고 바닥을 나뒹굴었음. 토르는 눈물을 닦으며 낮게 중얼거렸음. 해치지 않는다고 했지 때리지 않는단 소리는 아니었어. 로키는 혓바닥으로 입안을 훑으며 어이없어 웃었음. 피맛이 느껴짐

 

이제 돌아가라

당분간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상처받았어

듣던 중 기쁜소식이군

 

로키는 순순히 물러났음. 제 행동이 지나쳤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음. 토르가 꾸는 악몽의 80퍼는 스티브와 관련된 것이었으니. 로키는 인기척을 지웠음. 토르는 등을 벽에 기대 앉아 잠시 마음을 추스르다가 흩어진 생필품을 봉투에 주워담아 골목에서 나왔음. 눈가를 쓸며 집으로 돌아감

 

그날 밤, 집에 돌아간 토르는 오랜만에 갈색 봉투의 짚끈을 풀었음. 잘 접힌 종이를 조심스럽게 펴고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접어 봉투에 넣었음

 

꺼져

 

유품을 갈무리하며 고개도 돌이지 않고 말했음. 마법을 느껴서 한 말이라기보다 넘겨짚은 것에 가까웠지만 로키에겐 뜨끔한 말이었음

 

로키가 돌아가고도 한참, 토르는 낡은 중고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음. 금새 다시 그림이 보고 싶어졌지만 참았음. 달도 보이지 않아 을씨년한 하늘을 창문 나머로 응시하며 그대로 눈을 감았음. 잠은 자지 않을 생각임. 분명 악몽을 꿀 것이므로

 

늦은 아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파에 앉아 무표정하게 탁자 위를 바라보던 토르가 고개를 들었음. 계십니까? 토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감. 문을 열자 경찰이 서있음. 폭행사건이 있었단 신고로 확인차 왔다고 함. 사건이 벌어진지 족히 10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참 빠른 출동이었음

 

몇 대 맞긴 했지만 상대 얼굴도 모르고 크게 다친곳이 없어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함. 그러자 경관이 묘한 표정을 지음. 미간을 손으로 짚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사실 댁을 폭행한 이들의 손발이 말그대로 가루가 되었다며 잠시 경찰서를 방문해 달라고 했음. 토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음

 

점심을 먹고 경찰서로 향함. 딸린 유치장에 손발에 깁스를 한 청년들의 옹기종기 앉아 있다가 토르를 보고 사색이됨. 알고보니 린치 후 도망쳐놓고 다른 사건을 일으켜(가정집 침입) 잡혀온 모양임. 건달들은 귀신을 본 것 마냥 경기를 일으킴. 덩치 큰 경관이 유치장 문을 내려치며 조용히 하라 외침

 

슬슬 떠날때가 됐군. 10년이면 예상보다 좀 이르지만 대충 그러려니 생각함. 토르는 의자에 앉아 경관의 질문에 답했음

 

조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창고에서 위가 뚫린 샌드백을 꺼내와 적당히 짐을 챙겨 넣었음. 공증을 통해 법적 절차에 따라 구입한 집이었지만 처분하려니 여간 귀찮은게 아님

 

옆에서 도와주는 로키도 없었고, 로키- 떠올리자 기껏 가라앉혔던 분노가 다시 치밀었음. 그가 스팁으로 변했을때 토르는 완벽하게 자신을 잃었음. 흘러내린 금발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리며 샌드백 가방을 한쪽 어깨로 짊어 지고 집을 나옴. 익숙해진다 싶으면 떠돌아다니는 인생이 지겹게 느껴짐

 

늦은 오후 터미널로 향하던 토르는 건너편에서 다급히 달려오는 남자를 보고 발을 멈춤

 

전날 밤 린치에 가담한 양아치들 중 한명이었음.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약간 멀찌감치 멈추더니 입을 염. 부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겁먹은 목소리로 말을 더듬음. 토르는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음

 

운이 좋았다

거짓말! 그렇게 맞았는데 상처 하나 없잖아

보이지 않는 곳은 엉망이야

 

곧 남자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힘겹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음. 토르는 그의 진심을 가늠했음. 별 대꾸가 없자 아예 무릎을 꿇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기 시작함. 마지못해 알았다고 답하자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남

 

그러더니 뒷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내밈. 린치 전에 빼앗아 간 지갑임. 토르가 받자 그제야 좀 안심한 표정임

 

남자는, 버나드는 기어코 토르에게 식사를 대접했음. 둘은 작은 레스토랑에서 마주앉아 대화함. 함께 다니던 건달들과는 소꿉친구로 지금은 망나니라도 예전엔 좋은 친구들이었다고 함

 

남의 집에 침입해 난동부려놓고?

 

들은 죄목을 읊자 버나드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임. 갑자기 토르는 이 자가 개과천선한 이유가 궁금해짐

 

토르였기에 폭행에서 무사할 수 있었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자들은 살인자들이 되었을 것임.사과를 받아주긴 했지만 토르는 이런 인간들을 좋아하지 않았음

 

아.. 아이가 있습니다

 

얼마전에 파이가게 점원과 결혼한 버나드는 속도위반으로 얻은 딸이 있었음

 

치기로 일을 벌이긴 했지만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토르를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음. 한 살도 안되는 어린 딸을 두고 살인자가 된다니, 그의 고백에 토르는 피식 웃었음

 

너는 비겁한 인간이군

압니다.. 그래도 당신이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할 말은 끝난 모양이니 이만 가보겠네

아, 어디로 가시나요

알려줄 의무가 있나

죄 죄송합니다

 

토르는 미련없이 식당을 나왔음. 시덥잖은 대화를 좀 했다고 그새 어두워짐. 손목에 찬 낡은 시계를 보니 벌써 8시임. 눈살이 찌푸러짐

 

정류소로 가니 그새 내슈빌행 교통편이 막혔음. 테네시를 거쳐 애틀란타로 가려고 했던 토르는 인상을 썼음. 먼 옛날 제인과 루이지애나에서 도망치느라 탔던 기차가 경유한 곳에 애틀란타가 있었음

 

제인은 애틀란타가 좋은 곳이라고 했음. 사람들은 활기가 넘쳤고 외지인에게도 너그러운 도시라 했지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 세기가 바뀌었으니 제인과 같은 감상을 받을지는 미지수였음. 토르는 매표소 점원에게 다음 날 테네시행 버스시간표를 받아서 정류소를 나왔음. 날이 추워서 그런지 거리가 한산했음. 예정이 뒤틀렸음. 어쩔 수 없지. 토르는 한숨을 쉬며 샌드백을 고쳐 메고 집으로 돌아갔음

 

선잠이 들었던 토르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가늘게 떴음. 비척거리며 걸어가 창문 틈으로 보니 어제 그 경관이 현관에 서있음. 눈을 부비며 문을 열었음. 경관은 토르에게 동행할 것을 요구했음. 아침부터 무슨 일입니까? 묻자, 댁을 린치했던 놈들 중 한명이 간밤에 죽었소. 라는 답을 받음

 

경관을 따라 경찰서로 갔음. 어떤 예감대로 죽은 남자는 버나드였음. 단 토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의 아내도 함께 살해당했다는 사실임. 둘 다 칼에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는데 새벽까지 아기 우는 소리가 멈추지 않아 방문했던 옆집 노부부에 의해 발견됨. 처음에 수사관은 토르를 의심했음

 

토르, 도날드 블레이크는 마을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외지인이었음. 말수가 적었고 목수일을 마치면 집에 틀어박혔음. 다른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숨어든 젊은 범죄자라는 소문도 있었음. 이웃과 유대를 맺지 않고 사귀던 여자들과도 두어 달 후에 결별했으니 평판이 나쁜 것도 어쩔수 없었음

 

결정적으로 레스토랑에서 버나드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음

 

토르는 유치장에 갇힘. 한 경관이 그의 눈앞에서 샌드백에 든 갈색봉투를 만질 때 조금 움찔 했지만 날뛰진 않았음. 머물던 집도 수색했지만 흉기는 발견되지 않음. 계속 이어지는 심문에도 토르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음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이 싫었던 청장은 도날드 블레이크를 범인으로 사건을 종결하고 싶었음

 

고문에 동반한 미개한 심문를 했음. 토르는 자백은 커녕 입을 다물어버림. 칼날에도 상처입지 않고 담배불도 피부를 파고들지 못하자 담당하는 경관들은 미지의 존재를 상대하는 공포를 느꼈음

 

상부의 명령에 거스를 순 없었음. 괴물이라고 우겨봐야 정신감정 소리만 들을것임. 일주일이 지났는데 진행이 지지부진이라 발등에 불이 떨어짐

 

그러다가 범인이 잡혔음. 산책하던 시민이 공원 구석에 버려진 피묻은 흉기를 발견해 경찰에 넘겼음. 흉기는 버나드 부부의 몸에 새겨진 칼자국과 일치함

 

칼의 주인은 버나드의 친구이자 토르를 린치했던 두 남자 중 한명이었음. 유치장 밖으로 나온 토르는 건너편에서 경관 둘을 양옆에 달고 걸어오던 살인범 옆을 스쳐지났음. 남자는 고개을 숙이고 토르의 시선을 피했음

 

'지금은 망나니라도 좋은 친구들이었어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함

 

친구의 칼에 찔려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미없는 질문이었음. 인간들은 극과 극임. 다들 비슷하게 연약했지만 사악하거나 선량하거나 용기있거나 무모하거나 이기적이기도 했음. 버나드는 분명 나쁜 인간이었지만 딸을 위해 마음을 고쳐먹었다 했었지

 

자식이라..

 

문득 궁금해진 토르는 서류를 정리하는 경관에게 물었음. 어린 딸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됩니까?경관은 귀찮다는 듯 답해줌. 친척이 없다고 했으니 복지사가 데려가서 입양시키든지 알아서 하겠지. 토르는 샌드백을 등에 짊어지고 경찰서 밖으로 걸어 나왔음. 오랜만에 맞는 바깥 바람이 시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