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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주는 토르(로키토르, 스팁토르) 14

결국 사랑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

그런 간단한 진리대로 살 수 없는 자신을 탓하며 토르는 리우로 향했음. 탑승수속에 들어가는 여권이나 신분증명은 로키에게 배운 마법으로 간단히 넘길 수 있었음. '넌 마법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기본적인 운용법은 알고 있었어.'

그렇게 말하며 토르에게 마법을 가르쳤음. 과연 로키의 말대로 간단한 술식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음. 손가락 끝에서 시작되어 몸을 감싸돌며 바닥으로 내리 꽂히는 푸른 번개를 멍하니 보고 있자 로키의 손바닥이 거칠게 눈을 덮어 왔었음. 왜 그러느냐 묻자, 그냥. 하며 변덕을 부렸었음

[brother]

듣는 순간 뇌리를 관통하는 기억이 있었음. 울부짖는 동생은 매우 연약해 보였지만 포옹해주며 [잘 할 수 있을거다. 너는 똑똑하고 현명하니까] 라고 위로했었음. 드문드문 떠오르는 장면은 짧게 잘려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음. 절규하는 동생은 아직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로키였음

깨달음의 순간, 온 우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음. 믿었던 로키의 배신에 대한 충격보다 감히 동생을 사랑하고 몸까지 섞은 대죄인을 향한 역겨운 감정이 먼저였음. 한없이 고통스러웠음. 토르는 사람들로 가득찬 시끄러운 공항에서 가장 더럽고 초라한 존재가 되어 출국심사장으로 향했음

비행기에 오른 토르는 무의식적으로 스티브를 떠올렸다가 빠르게 지웠음. 그를 사랑함. 하지만 이대로는 안됨.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검고 사악한 것이 몸집을 크게 부풀리고 있었음. 조나단의 목장에서 축축한 흙과 잡초를 쥐어 뜯으며 떠올렸던 자기 파괴적인 충동이 다시금 솟아 올랐음

파도를 막아주었던 방파제가 로키였지만 이젠 다 무너져 버렸음. 토르는 로키를 만나러 감. 그를 앞에 두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음. 연인의 얼굴에 어린 동생의 모습이 덧씌워졌음. 끔찍했음. 하지만 피할수도 없었음. 곤란하게도 토르는 아직도 로키를 사랑하고 있음

기내는 고요했음. 장장 열 시간에 달하는 비행이었기에 안대를 끼고 잠을 청하는 이들이 많았음. 그러나 토르는 뜬눈으로 창 밖을 보았음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토르는 관광객처럼 슬렁슬렁 거리를 돌아다녔음. 로키와의 약속은 일주일 뒤, 즉 내일이었고 만날 장소는 이 광활한 관광도시 전체였음

로키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직접 마법을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었음. 효율을 중시했기에 거리가 먼 경우에는 토르와 함께 인간의 이동수단을 사용했음. 과거와 달리 많이 발전했다는 말을 주고 받으며 둘은 나란히 비행기에 앉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음. 그건 제법 즐거웠지. 토르는 조금 웃었음

이렇게 약속이 정해진 경우엔 로키쪽에서 먼저 찾아왔음. 어떻게 나를 찾느냐 물어본 적도 있었는데, 네가 잘 때 몰래 주문을 걸었어. 라고 대답했음. 누가 들었다면, 그거 스토커 아니야? 소름끼치는데.. 라고 몸서리쳤겠지만 토르는 충분히 납득했음. 토르의 마음은 언제나 로키를 향해 열려 있었음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다가 관광객들에게 예수상에 대해 들었음. 토르는 걸음을 옮겼음. 가이드가 따라 붙어 트램이나 버스를 타라고 설득했지만 딱히 힘든 일도 아니라 그냥 걸어 올라갔음. 코르코바두산의 풍경을 스쳐지나가며 복잡한 마음을 정리했음. 너무 지쳤음. 사랑, 이별, 지금의 배신까지

영원을 걷는 주제에 이 짧은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니 자신의 내구성에 대해 돌아보게 됨. 토르는 맨하튼을 떠나며 다짐한게 있었음. 무슨 결과를 얻더라도 이번에 반드시 결론을 내야했음. 로키는 철저하게 계산적이었음. 그는 냉정하게 판단해 완벽한 계획을 세워 행동하길 즐겼음. 토르와는 반대였음

이번 만남에서 로키의 계획에 돌을 던지게 됨. 그는 화를 낼 것이고 어쩌면 울면서 매달릴수도 있음. 그리고 토르는 가면을 쓰고 있는 걸 알면서도 속아넘어갈지도 모름. 토르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음. 로키를 설득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특별한 테러'와 관련이 있는지 진위를 파악해야 했음

정말 그가 한 짓이 맞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케이블카를 타고 가서 본 예수상은 특별한 게 없었음. 인간들의 구도자 예수가 품을 보이고 있음. 언젠가 로키는 인간의 신을 비웃었음. '그들은 진짜 신을 몰라.' 라고 말하며 토르의 뒤에서 두꺼운 몸을 껴안은 채 뺨을 쓰다듬었음

'진정한 신은 그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을 주고 가볍게 손만 뻗어도 모두를 집어삼키지, 공포를 보여 주는거야 토르.' 조금은 섬뜩한 말을 했었음. 영원을 사는 우리들의 존재가 신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음

토르는 리우의 탁 트인 전경을 감상했음. 구름이 별로 없었고 하늘이 맑아 잘 보였음

한참을 그렇게 구경하다가 슬슬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를 찾아볼까 마음먹었음. 그때 어깨를 잡아오는 손이 있었음

토르

놀랄 것도 없이 로키였음. 예정보다 하루 일찍 만났음. 토르는 내색하지 않고 로키의 손을 천천히 잡아 내렸음. 왔나? 다행히도 목소리는 평소와 같음

로키는 팔짱을 끼고 예수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음. 별로지 않아? 소감을 묻길래 토르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음. 신이라면서 너무 자신감이 없잖아. 저 자애롭고 위선적인 포즈하며.. 좀 더 가슴을 펴고 스스로를 향해 존경심을 표해야지. 장난처럼 직접 당당하게 포즈를 취함. 토르는 피식 웃었음

사람이 많군, 다른곳으로 갈까. 토르가 말하자 로키가 눈을 가늘게 뜸. 인간 구경이 네 취미 아니었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앞장서는 토르의 뒤를 따랐음. 로키는 주절주절 기분 좋게 떠들었음. 평소보다 들떠 보였음. 시애틀에서 고집 부린 걸 얌전히 따라준 여파가 아직 있는 듯했음

오늘은 밤에 별이 많이 뜰 것이란 기상정보부터 공기중에 감도는 미세한 꽃향기가 마음에 든다까지. 코를 킁킁거리니 과연 꽃과 소금, 달달한 빵 냄새가 함께 풍겼음. 로키는 이곳이 마음에 든 모양임. 토르는 대답없이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발을 굴려 몸을 띄웠음

큰 몸이 순식간에 숲 속으로 사라짐, 토르?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던 로키는 눈썹을 찌푸리며 뒤를 쫒았음

슬슬 해가 지고 있었음. 붉게 물든 노을이 이국적인 분위기의 도시의 해안선 너머로 사그라들었음. 토르는 관광지에서 한참 떨어진 숲 속의 인적 드문 고요한 공터에서 발을 멈췄음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는지 바닥에 쌓인 나뭇잎이 흙과 섞인채 그대로 썩어가고 있었음. 도시의 소음과 아득하게 멀어져서 바람에 잎이 부대끼는 소리만 들려옴. 늦게 도착한 로키는 토르의 등을 보았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

로키

부르는 목소리는 평소와 변함이 없어서 더욱 불안했음

로키는 왜 여기까지 왔느냐 물었음. 얼른 돌아가서 숙소를 잡고 식사를 하고.. 우리가 함께 해야할 많은 일이 있지 않느냐 조곤조곤 말했음. 토르는 대답하지 않았음. 마음에 들지 않았음. ‘꿍꿍이가 있는 쪽은 늘 나였잖아?’ 속마음을 삼키며 로키는 짜증스럽게 물었음. 왜 갑자기 분위기를 잡지?

토르가 고개를 숙였음.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음. 로키가 한발자국 앞으로 내딛자 토르가 경고했음. 그만. 그리곤 엄숙하게 말했음

브라더

로키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음

방금 뭐라고 했어? 
이제 그만두자

네가 기억났어. 토르가 말했음. 로키는 주먹을 꽉 쥐었음

발 밑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음. 결국 이런 날이 온건가. 머릿속에 세워두었던 대비책들이 하나하나 헤집다가 그 중 하나를 건져올린 로키는 기계적으로 입을 열었음

토르, 네 기억에 혼선이 생긴 것 같은데. 그 아이는 아스가르드에 있어. 이제는 제법 많이 자랐지

네 기억속에 남아있는 아스가르드는 여전히 강성하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스가르드는 마법의 단어지

토르는 쓴웃음을 지었음. 거짓은 그만둬. 변명이 통하지 않는 두터운 말이었음.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음. 로키는 절망적인 심정이 되었음. 접근해서 환상을 보여주고 시간을 벌까

고민해 보지만 저런 상태의 토르는 무슨 마법과 환상을 써도 통하지 않았음. 여태껏 잘 지내왔는데 '그것'을 손에 넣은 오늘 나에게 이를 드러내는 것인가, 형제여

너는 나를 기만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 뻔뻔한 태도는 변하지 않는군

토르는 몸을 돌려 로키를 바라보았음

평소 보여주던 부드러운 얼굴은 어디로가고 배신감과 자기혐오로 얼룩진 초라한 남자만 남았음. 그는 떨리는 손으로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음. 그 손짓에 헐렁하게 묶어둔 머리끈이 튕겨나가 긴 금발이 바람에 휘날렸음. 심각한 와중에 우습게도 로키는 화를 참는 형을 조금 황홀하게 쳐다보았음

마리아를 노린 테러조직, 중간책의 이에서 청산가리 캡슐이 사라진 것부터, 에릭과 제인을 덮친 트럭운전수의 의혹까지. 그것은 경고였겠지. 토르가 눈을 내리깔고 중얼거렸음. 너는 일부러 그들을 죽이지 않고 나로 하여금 스스로 고립되는 길을 선택하도록 했다. 어색한 부분이 있나?

침묵이 흘렀음. 토르는 표정없이 주먹을 꽉 쥐었음. 로키는 초조하게 입가를 쓰다듬었음. 머리가 핑핑 돌아감. 토르가 다시 입을 열었음

내 아버지는 오딘이고

푸른 눈이 로키에게 박혔음. 그 안에 담긴 절망적인 감정이 전염되었음

내 어머니는 프리가며

토르는 쇠를 끊 듯 단호하게 말했음

그의 입가가 부들부들 떨렸고 어깨가 조금씩 솟았다가 내려왔음. 선언이 계속 될수록 숨소리가 거칠어 지는게 로키에게도 느껴졌음

동생은 로키
내 이름은 토르이며 오딘의 아들이다.
또 하나의 이름은 천둥의 신
아스가르드의 왕이지

말이 끝났음. 로키는 포기하고 얼굴에서 여유를 지웠음

그 칭호는 나에게 양보했잖아. 아직 거기까진 기억나지 않았나봐?
전 '왕'으로 정정하마

토르의 분노가 드글드글 타오르는 눈이 로키를 향함. 바람이 불어와 금발이 나부꼈음. 어두워진 하늘에서 푸른 번개가 보인 듯한 착각이 들었음. 로키는 단단히 선 눈앞의 천둥의 신 토르 오딘슨을 보았음

한 때는 과거를 기억해 낸 천둥의 신과 함께 아스가르드로 귀환하는 것을 꿈꾸기도 했음. 하지만 그것은 모두 애끓는 육욕에 의해 가려졌음. 이제 눈앞의 남자는 기억을 찾았지만 동생을 향해 적의를 보내고 있음. 갑자기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었음

해명해 보거라
내가 뭐라고 할까?

무슨 말이 듣고 싶어?

로키는 이를 부득 갈았음. 녹빛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음. 설움이 목끝에서 덜렁거렸고 짙푸른색 칠흑을 닮은 비애가 로키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음

'더 더 화를 내. 분노를 표현해. 눈앞의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형에게 네 응어리진 속마음을 전부 내비치란 말이야.'

토르.. 네가 사라진 뒤로 모든게 엉망진창이었어. 어머니는 떠나고 난 혼자서 네 몫까지 싸워야했지. 네 동생은 오딘이나 너처럼 강하지 않았어. 현명한 왕... 그렇게 보이도록 연기했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것은 내 특기니까

너도 잘 알잖아. 로키는 화난 얼굴을 순식간에 지우고 상냥하게 말했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음. 토르는 조용히 듣기만 했음. 평소처럼 울고 있는 로키를 달래려 하지도 다정하게 '울지마라.' 속삭이지도 않고 그저 듣고만 있었음. 그 목석같은 태도에 로키는 다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미친사람처럼 쏘아댔음

그래 나는 위대한 천둥의 신을 대신해 왕이 되었어!

왕, 좋은 지위를 얻어 놓고 징징거린다니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토르, 너는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해야해. 너만큼은 나를 외면해선 안 돼. 어머니를 보낸 내 고통과, 친 아비를 얼음 궁에 유폐시켜 나를 아스가르드에 종속시킨 형제여, 너만큼은... 절대 나를 잊거나 탓해서 안 돼

로키는 가슴을 잡고 피를 토하듯 외쳤음. 갈라지고 엉망이 된 목소리가 물기를 품기 시작했음



무릎을 꿇고 주저앉으며 울먹였음

죽었다고 생각한 형제를 이딴 수준 낮은 행성에서 발견했을때... 내 기분이 어땠는 줄 알아?
...로키

그 절절함에 토르는 결국 참지 못하고 걸음을 옮겼음

로키는 속에 뱀을 품고 있음. 토르는 그의 검은 속을 앎. 여러 번 겪기도 했음. 주저앉아 괴로워하며 한껏 몸을 낮추고 가슴을 쥐어뜯는 연약한 퍼포먼스가 어떤 목적을 감추기 위한 그의 보호색임을, 잘 알면서도 걸어 들어갈수밖에 없었음. 동생이자 연인이 눈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으니까

눈물을 쓸어주고 등을 토닥이며 달래줘야 했으니까.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결국 이렇게 됨. 토르는 주저앉은 로키 앞에서서 잠시 그를 내려다 보았음

[저기, 나도 이번 전투에 데려가 주는거야?]
[이것 봐, 뱀으로 변신했어! 형이 좋아하는 금색 뱀]

검은 코트에 부엽토가 묻어 엉망임

넥타이는 비뚤어지고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로키가 올려다 보았음. 입술을 떨며 브라더,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자 토르는 결국 똑같이 무릎 꿇고 로키를 안아주었음. 그럴 수 밖에 없었음. 로키는 얌전히 토르의 품에 안겨 어깨에 얼굴을 부벼왔음

나를 버릴거야?
로키가 물었음

그럴리 없잖아
토르가 대답했음

사랑해

로키가 중얼거렸지만 이번엔 답이 돌아오지 않았음. 뻔한 침묵을 곱씹으며 로키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음

내가 했어. 개미놈들이 조사한 그대로겠지. 확인할 필요도 없어. 니다벨리르의 마법 폭탄을 놈들에게 넘겼어

하지만 그건 더 큰 목적을 위한 초석이었어. 이렇게 말한다면 믿어 줄거야?
계속해
모두 셉터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어. 인피니티 스톤은 지구에 두기엔 너무 위험한 돌이야
네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 힘을 원하는게 나쁜가?

토르는 로키를 억지로 떼어내 눈물 범벅인 얼굴을 바라보았음

로키, 나는 이 모든 사건이 어떻게 끝날지 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서로를 잃게 될거다. 그럴 순 없어. 셉터를 쉴드에 넘기고 속죄의 길을 찾자. 내가 도와주마

로키의 눈이 일그러졌음. 비틀린 웃음이 지어졌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토르. 너무 미련하면 결국 잔인해질 수밖에 없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정말? 놈들이 무슨 기준으로 감히 아스가르드의 왕에게 죄를 물을까. 짧디 짧은 수명을 사는 개미들이 사형을 외치면 정말 나를 죽일텐가? 그렇다면 집행인은 토르 너로 해줘. 혹은 영원히 유폐할텐가? 하핫, 아비와 자식이 나란히 유폐되면 그 또한 재밌는 볼거리겠군

더 들어줄 수 없었음. 토르가 어깨를 흔들며 그만두라 외치자 로키는 킬킬 웃었음

내기할까?
제발.. 함께 가자
형은 마지막 순간, 내가 아닌 인간을 선택하게 될 거야. 알다시피 심심할 때마다 네 몸과 마음을 파고들었잖아, 누구보다 토르 오딘슨에 대해 잘 알지. 당연하겠지만 형 본인보다 말이야

로키!

너는 나를 버리고 스티브 로저스에게 갈거야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원래 인간을 그렇게까지 증오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형이 사랑하는 놈들을 모두 찢어발기고 싶어. 이 천박한 마음은 질투일까?

로키가 큭큭 웃으며 딱딱하게 굳은 토르를 밀어냈음

바닥에 주저앉은 토르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로키를 잠시 멍하니 보다가 입술을 깨물었음. 이대로 달아날 생각이냐. 토르가 묻자 로키는 고개를 갸웃거렸음. 글쎄, 어느 쪽일까? 만약 날 잡을 수 있다면 얌전히 따라가 줄게. 말을 마치더니 갑자기 손을 앞으로 뻗어왔음. 속도가 심상치 않았음

토르는 본능적으로 바닥을 두 바퀴 굴렀음. 고개를 돌리니 조금 전까지 주저앉아 있던 자리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박혀 있음. 토르는 이를 갈며 로키를 노려보았음. 해보자는 것이냐. 바닥을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가 낙엽이 바스러짐. 로키는 몸을 뒤로 물렸고 토르는 주먹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음

좋아, 널 때려눕혀서라도 쉴드로 데려가겠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퍼져나감. 로키는 등줄기가 서늘해졌지만 혀끝을 깨물며 여유롭게 웃었음. 노을이 지고 밤거미가 내려 앉아 주변이 청색으로 물들었음. 둘 사이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음.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둘은 거의 동시에 몸을 움직였음

로키는 마법을 사용해 나무 뒤로 몸을 숨겼고 토르는 주먹을 휘둘러 두꺼운 나무를 연속으로 부쉈음. 쾅쾅 커다란 소리가 연달아 숲을 울렸음. 동강나 쓰러진 나무를 보며 로키는 혀로 입술을 축이곤 단검을 꺼내 얼음 기운을 담아 공간이동을 시킴. 그러나 토르는 금세 알아채고 목을 방어했음

'하여간 짐승같은 센서는 무시 못하겠군' 로키는 방금까지 등을 기대고 서있던 나무가 가루가되어 공중을 흩날리는 모습을 분신 여럿의 눈으로 지켜봄. 등 뒤로 땀이 주륵 흐름. 토르를 상대하면서 이길거란 생각은 안했음. 틈을 노릴 작정이었음. 아주 잠깐 멈칫하기만 해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음

로키는 분신을 몇 더 뽑아내 토르에게 보냈음. 철로 된 5미터 두께의 경계벽도 부수는 주먹이 휘둘러 질 때마다 분신이 펑펑 터져나감. 결국 혼자가 된 로키는 다급히 마법을 써서 몸을 이동시키려고 했음. 그러나 토르가 싸늘하게 웃으며 옆의 반쯤 넘어간 나무를 쓰러트려 로키의 왼발이 깔려버림

로키는 양 손을 들고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렸음. 내가 졌... 토르는 말이 끝나길 기다려주지 않았음. 로키는 윽 소리를 내며 축축한 흙바닥에 완전히 드러누움. 토르는 로키 위에 올라타 주먹을 세우고 고개를 기울였음. 항복하나? 화를 억지로 참는지 꽉눌린 목소리였음. 로키는 고개를 끄덕였음

기절시켜서 데려가는게 편할 것 같군. 토르가 중얼거리며 주먹을 휘두르려 했음. 로키는 재빨리 몸을 빛내 변신했음. 빛이 사라지자 토르의 눈이 커짐

형, 너무 아파. 힘들어

어린 로키였음. 토르는 딱딱하게 굳어 허공에 든 주먹을 떨었음. 너는 정말... 토르가 이를 악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음

어린 로키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음

비열하지, 알아

순간 토르는 뒤에서 뭔가 날아온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굴려 피하려 했음. 그러나 자신이 비키면 로키가 대신 맞는다는 사실에 망설였음. 머뭇거리느라 굳은 그 짧은 순간 창이 등을 파고들었음. 토르는 컥 소리를 내며 입에서 피를 뿜었음

형이라면 피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어느새 변신을 푼 로키가 토르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온 창끝을 더듬으며 미소지었음. 네가.. 당했을..쿨럭..수도.. 있..었어. 토르가 힘겹게 말했음. 로키는 소리높여 웃었음. 결국 형이 나 대신 받아줬잖아. 눈을 빛내며 말하자 토르가 한 번 더 피를 왈칵 뿜음

심장은 피했어도 쉽게 움직일 순 없음

셉터의 사용법은 익혔지만, 형은 아스가디언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하잖아. 아무래도 안심이 안되서

로키는 위에 올라탄 토르가 몸을 휘청이자 양손을 뻗어 어깨를 잡아 주었음. 울컥 토해낸 피가 얼굴에 튀었을때 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았음

로키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음. 창끝에 박힌 셉터가 진하게 빛났음. 토르가 숨을 쉬며 쿨럭일 때마다 피가 튐. 몸이 조금씩 이완되더니 서서히 앞으로 고꾸라졌음. 로키는 허리를 세우고 쓰러지는 토르를 감싸 안았음. 손을 뻗어 등 뒤를 더듬자 셉터에 찔린 부위에서 피가 배어나와 금새 축축해져있음

창이 뚫은 자리를 손끝으로 확인하다가 앞으로 돌아 붉게 물든 가슴을 부드럽게 쓸었음. 토르, 날 봐. 토르.. 로키가 중얼거렸음. 꺾인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려 기어코 시선을 교환했음. 초점이 사라진 호수를 닮은 푸른 눈에 인공적인 새파란 빛이 서려들었음

약속해, 난 인간을 죽이지 않을 거야

그 역할은 형에게 맡길게

로키는 늘어진 토르를 강하게 끌어 안았음. 연신 피를 토해내며 떠는 몸을 앞 뒤로 얼루며 흐느끼기 시작했음. 사랑해. 누군가 필사적으로 그만두라 외치고 있었음. 하지만 환희와 비참함, 상반된 감정을 함께 느끼느라 정신이 반쯤 나간 남자에겐 전혀 전달되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