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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주는 토르(로키토르, 스팁토르) 18

“배가 고프다고?” 토니가 의아하게 중얼거리자 토르가 고개를 끄덕였음. “아스가디언은 일주일 넘게 굶어도 아무 문제 없다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서 내밂. “물론 괜찮지만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지.” 카드를 받아들며 넉살 좋게 웃었음. “뭐 그렇긴 하다만..”

“생각해보니 네가 끼니를 챙기는 걸 본 적이 없네. 맥주나 좀 마셨나? 여태까지 아무것도 안먹은거야?” 홀로그램 화면을 조작하느라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질문했음. 뉴질랜드 곳곳을 스캔하느라 눈도 손도 쉴 새 없이 아주 바빴음. “그건 아니야. 어제 스티브가 해준 팬케이크는 아주 맛있었지.”

“윽 별로 궁금하지 않네요.”
“팬케이크 싫어하나?”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자네 참 미지근하군!”
“내 취향을 평범에서 2만 광년은 떨어져 보이는 외계인의 잣대로 평가받기 싫은데.”
“아스가르드도 지구에서 굉장히 멀어. 그쯤 될 걸세.”

토니는 터치패드를 잘못 눌러 어꺠를 움찔 떨었음

“그 잘난 아스가르드에 돌아가서 병사들을 이끌고 지구에 와줄 생각은 없어? 왕이었다며.”
“음! 여러번 시도해 봤지만 헤임달이 나를 보지 못해. 아마도 로키의 술수일거야.”

아참, 헤임달은 문지기라네- 토르는 딱히 궁금하지 않은 정보를 알려주며 카드를 정장 주머니에 넣었음

토니는 흘끗 시선을 보내며 “7층 식당도 자주 애용해.” 덧붙였음. 삑-삑- 손끝이 공중을 스치자 경쾌한 터치음이 튀었고 자비스가 의심구간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함

“그러지. 뭐 필요한 건 없나?”
“심부름 해주려고? 착한 어린이네. 그럼 슈와마. 할라피뇨 잔뜩 넣고 칠리소스랑 새우.”
“알겠네.”

“콜슨 요원에게 참석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줘. 그리고 저녁까진 돌아와. 배너가 올거야.”
“그러지.”

토르가 돌아서자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던 토니는 아! 잊은 것을 떠올리고 시스템을 휴식모드로 돌렸음. “잠깐.” 열린 문으로 나가려던 토르가 뒤를 돌아봄. ”혼자 가는거야?” 토니가 물었음

“냇의 차를 타고 스티브와 함께 갈 거다. 걱정 말게.”

토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함. 조건부로 풀려나면서 구속구가 씌워진 것과 별개로 개별행동도 허락받지 못했음. 냇이나 바튼, 토니와 배너, 스티브 그리고 콜슨까지 토르의 구속구에 장착된 전기장치를 발동시킬 방아쇠를 쥐고 있었음

혹시 모를 사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제압해야 했기에 모두가 동의한 결과임. 토니는 목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빙빙 돌렸음. “그거 불편하지?” 토르는 무의식적으로 구속구에 손을 댔다가 고개를 저음. 딱히 그렇진 않다고 대답함. 토니가 어깨를 으쓱함

“풀어줄까?”
“그럼 자네가 곤란해지지 않나?”

“하! 누가 감히 날 탓하겠어.”
“괜찮네. 불화를 만들긴 싫어.”
“기특하잖아.”
“하하! 슈와마 할라피뇨 많이 칠리소스 새우.”

토르는 손인사를 하며 방을 나갔음. 토니는 과한 동정심을 발휘한건 아닌지 잠깐 스스로를 검열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멈춰두었던 홀로그램을 다시 조작모드로 바꾸었음

“많이 기다렸나?”
“막 도착했어요.” 

토르는 스타크 타워 주차장에서 스티브와 냇을 만났음. 바튼은 오지 않는지 물었고 냇이 그는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하필 오늘이 검진일이라고 알려줌. 빠지려고 하자 콜슨이 극구 말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쉴드 의료진들과 면담중이라고 함

오늘은 콜슨 아들의 결혼식임. 쉴드 요원들은 제 2의 아이덴티티가 있음. 그것은 시스템상에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관리자를 만나려면 다섯 겹의 보안을 거쳐야 할 만큼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음. 콜슨은 아들의 결혼식에 토르를 초대했음. 토르는 망설였지만 노련한 요원은 끝까지 의연하게 밀어붙였음

그 단호한 태도에 머쓱하게 웃으며 참석하겠노라 약속했음. 토르와 스티브는 냇이 운전하는 차량에 탑승함. 셋은 적당히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었음. 정장은 영 불편하다고 투덜거리는 토르에게 “잘 어울리니 입 다물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요 몸짱씨.” 냇이 일축했고 스티브가 동의하며 웃었음

토르도 어깨를 드러낸 원피스 차림의 냇과 토르처럼 검은정장을 입은 스티브를 칭찬했음. 냇이 운전중인 자신과 조수석에 앉은 스티브가 뒷자석을 차지하고 앉은 토르를 경호하는 느낌이라고 농담을 하자 토르가 입가를 쓸며 “틀린 말은 아니군.” 거만하게 대답함. 냇이 코끝을 찡그리며 야유를 보냈음

날이 좋았음. 출근 시간대를 피한 평일 늦은 오전 맨하튼의 뚫린 도로를 달림. 토르는 냇과 스티브를 바라봄.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음.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용서하고 넘어감. 토르가 둘을 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 냇은 스티브에게 최근 생활은 어떤지 물었음

적응했다는 대답이 돌아옴. 그러자 냇이 검지손가락을 장난스럽게 까닥이며 카 오디오를 틀어보라고 부추김. "내 단골곡 알죠?" 스티브는 어, 음,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패드를 조작함. "내 차랑 달라서.." 어색한 변명과 함께 성경방송이 흘러나오자 패배를 선언하며 두손을 들고 뒤로 물러남

그때 토르가 운전석을 잡고 몸을 숙이더니 손을 쑥 뻗었음. 두꺼운 손가락이 패드를 터치하길 몇 번, 냇이 자주 듣는 팝송이 흘러나왔음

"로저스씨 방금 우주에서 온 외계인한테 지셨는데요."
"나타샤 난 이곳에서 100년이 넘도록 살아왔어. 웬만한 상식은 자네보다 더 잘 알걸세."

외계인 주제에 지구 문물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드러냄. 그것이 냇의 승부욕을 자극했고 맨해튼 교외의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 때아닌 스무고개가 진행되었음

"엘튼 존 데뷔 앨범까지 맞추다니..."
"문제가 너무 쉽더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냇과 두 남자는 식장으로 들어갔음

관리가 잘 된 풀숲이 양옆으로 이어져 있었고 중앙에 원형 광장과 거기서부터 하얀 철제 울타리가 뻗어 나와 사방으로 길이 펼쳐졌음. 북쪽 끝 넓은 정원에 식 준비가 한창임

"다들 와주셨군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캡틴, 로마노프, 토르"
"스타크가 못와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더군."

인원수는 조촐했지만 다들 기분 좋게 웃고 있었음.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나눈 초청장이었던지라 토르가 아는 인물들도 간간히 보였음. 콜슨의 귓가에 두번째줄에 앉은 여성이 86년 겨울 모스크바에서 슬리퍼로 내 이마를 내려친 마젤란 부인이 맞냐고 속삭였고 콜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음

쉴드 요원도 있었음. 감옥에 있을때 안면이 있던 얼굴이라 살짝 긴장했음. 스티브가 토르의 어깨를 토닥여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어 왔음. 손을 맞잡고 몇 번 흔드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음. 그렇게 적당히 웃고 떠드는 사이 사회자가 곧 식이 진행될 예정이니 착석하라고 알려왔음

토르를 사이에 두고 냇과 스티브가 양옆에 앉음.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처음인가요?" 토르가 느릿하게 자리에 앉자 스티브가 물었음. "처음은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자 냇이 고개를 갸웃거렸음. "그런 것치곤 어색해 보이네요." 이어진 그녀의 말에 토르가 입주변 수염을 쓸었음

"결혼식도 참석했고.. 같은 이의 장례식도 참석했었지."

순식간에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음. 냇이 한숨을 푹 쉬며 팔꿈치를 세워 옆구리를 쿡 찔렀음

"아직 한참 멀었으니까 분위기 깨지 말고 예쁘게 웃어요 외계인씨."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허리를 붙들고 쓰러졌을 공격(?)이었음

토르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웃으며 정면을 바라보았음. 축사를 시작으로 식은 간략하게 진행됨. 새롭게 시작하는 부부를 축복하느라 식장에는 박수소리가 넘쳐남. 맹세의 키스와 함께 들러리들의 바구니에 든 꽃잎이 공중으로 흩날렸고 관현악단의 연주소리가 높이 울려퍼졌음. 행복한 결혼식이었음

손등에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음. 기념촬영을 한다는 외침에 함께 일어나서 이동하는 와중이었음. 토르는 긴장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봄. 식 진행을 돕는 직원들은 수상한 낌새가 없음.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아들 옆에 선 콜슨. 스티브와 냇은 둘째 줄에 자리를 잡고 토르를 향해 손짓하고 있음

토르는 입꼬리를 어색하게 올리며 이동했음. 주위를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음. 하객들에게도 수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음. 그럼에도 목 뒤에 돋은 소름이 가라앉지 않음. 어쩌면 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을 무사히 구할 수 있는 루트를 계산하기 시작했음

사진사가 신호를 줘도 긴장을 풀지 못했음. "긴장한 건 알겠는데 웃어야죠." 스티브가 가볍게 핀잔을 주자 토르도 동의하며 미소지었음. 몇 차례 촬영이 끝났고 바로 옆 정원의 피로연 장소로 이동한다는 진행자의 외침이 있었음. 사람들이 이동할때 까지도 염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음

'감이 죽었나? 아까 그 느낌은 뭐였지.' 의아했지만 별 일 없었다면 오히려 좋은거지 싶었음. 스티브가 등을 토닥이며 발걸음을 재촉했음. 토르는 긴장을 풀고 무심결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음. "아..." 시선이 고정되자 스티브가 같은 방향을 바라봄

"무슨 일이죠?" 스티브는 토르를 보며 문제가 있는지 물었음. 토르는 딱딱하게 굳은 채 입을 열었음. "저기에..."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스티브의 눈이 다시 돌아감. "아는 사람이 있었나요?"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임. "...먼저 가 있게." 그렇게 말하더니 정원 구석으로 향함

스티브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화단 옆 상수리나무 아래 멈춰 선 토르를 지켜보았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음. 오픈된 복도에 고풍스러운 조각상이 있었기에 그걸 보는가 했음. "3-A 테이블에 있을게요." 외치자 손을 들어 회답해줌. 스티브는 등을 돌리고 피로연 장소로 향했음

[오랜만이야] 
"로키." 
[반응이 약하잖아] 
"환영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봐야 힘만 빠지지 않겠느냐."
[흐음...] 

로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웃었음. 바람이 불어 상수리나무가 흔들림. 떨어진 잎새가 로키의 검은 정장을 통과해 잔디 밑에 안착하는 장면을 눈으로 따라가며 토르가 입을 열었음

"할 말이 있나." 로키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음. [할 말? 자력으로 셉터의 세뇌를 깬 위대한 토르에게 대견하다는 칭찬이라도 해야겠군] "로키, 너는 선을 넘었다." 토르가 나직하게 경고했음. 점잖은 말투였지만 그를 감싸고 있는 공기는 심상치 않았음. [화가 많이 났네. 솔직한 모습 보기 좋아]

"너와 난 속죄해야 한다."
[하! 개미들의 시간을 찰나의 찰나만큼 앞당긴 걸로 죄책감을 가지라니. 형은 정말 관대한 멍청이야.]
"너와 말다툼하고 싶지 않구나. 지금이라도 네 그 지나친 행동을 멈추는게 좋을 것이다."
[아직도 나에게 동정을 구하나?]

녹빛 눈이 기묘한 빛을 내며 가라앉았음

불길한 분위기는 여전했음. 검은 머리통 안에 든 교활한 뇌가 최선을 다해 연산하고 있음을 앎. 어쩌면 토르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계획을 이미 세웠고 이행하는 중일지도. [그거 잘 어울려] 로키가 빙긋 웃으며 토르의 목을 가리켰음. [내 지배를 벗어나더니 이젠 인간의 개가 되었군]

근처를 지나는 직원들의 눈에는 로키가 보이지 않았음. 그랬기에 왠 금발남자가 상수리 나무를 무섭게 노려보는 모습을 보고 수근거리더니 자리를 피해감

[피학적 성향이 있다는 걸 진작 알려줬으면 형을 더 즐겁게 해줬을텐데]
"네 환영이 나타났다는 건 본체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뜻이겠지."

토르가 싸늘하게 말하며 주먹에서 뚜둑 소리가 나게 꺾었음. 로키는 과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남. [어이쿠, 들켰네... 라기보다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형을 보러 왔겠어?] 로키는 양손을 비비며 뱀처럼 웃었음. [이제 거의 끝났어. 잠깐 말해주러 온거야] "내가 널 못찾을 것 같은가?"

[물론 가능하겠지. 새로운 개미친구들을 사귄 모양인데 솔직히 인정할게. 꽤 유능하더군] 로키는 떨어지는 나뭇잎 사이로 손을 움직이며 장난을 쳤음. 빛이 반짝이며 잎이 손을 관통함. [그동안 잘해줬어. 덕분에 시선이 분산되었고... 이제 거의 끝났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너도 나도 해방되는거야]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로키를 보며 토르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기어코 입을 염

"정말 그만두지 않겠나?"
[...형은 대단해. 이 지경까지 와서도 포기를 모르잖아]

로키는 짐짓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음. 그리고는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로 오싹한 말을 이어갔음

[내가 선을 넘었다고 했지?]

환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토르는 주먹을 꽉 쥐었음. [안타깝게도 먼저 선을 넘어간 건 너야] 로키는 하나하나 단단히 씹듯이 내뱉었음

[세뇌를 깨선 안 됐어. 에릭 셀빅과 꼬마 계집을 만나선 안 됐고 마리아를 키우지 말았어야 했어. 늙은이의 손자가 되어주는 것도.. 스티브 로저스와 함께한 것도]

[무지몽매한 인간들을 사랑한 것도! 제인 포스터의 마지막을 지키며 그 계집의 유언을 금보다 소중히 여긴 것도! 모두! 네가 먼저였어. 그깟 인간을 우선시 여겨선 안 되었던 거야]

토르는 딱딱하게 굳었음. 자신도 괴물이었지만 피를 토하듯 궤변을 외치는 로키의 역시 만만찮게 엉망진창 괴물이었음

[나에게 망토를 넘겨주고 등을 보인 순간, 이미 결말은 정해진 거였어]
"나는 이해할 수 없구나."

토르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음

"하지만 너를 사랑한다."
[저 문 너머에서 너를 기다릴 캡틴보다도 더?]
"그래."
[거짓말이군. 속이 다 보여]

토르는 벽을 마주한 느낌에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저었음

잔뜩 꼬인 로키는 그 행동에서 사랑을 믿어주지 않는 연인을 향한 속상함이 아닌 지겹고 따분한 태도를 읽고 분노했음

[할 말은 전했어. 사랑해 토르]
"누구도 너의 지배따위 바라지 않아. 반드시 막을 것이다. 만약 네가 바라는 미래가 완성된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토르는 엄중히 경고했음

로키는 나른하게 고개를 끄덕였음

[알아. 그래도 상관없어. 아, 늙은 친구는 곧 돌려줄테니 마지막 휴식을 즐겨. 그래. 형이 사랑하는 스티브 로저스와 마음껏 뒹굴어도 좋아]

그러더니 흐릿하게 웃으며 다가왔음. 토르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환영이 뚫고 지나가자 흠칫 굳었음

로키는 유령처럼 음산하게 히죽거렸음

[사랑해. 비록 형은 날 끔찍한 괴물로 여기겠지만]

들어올린 창백한 푸른 손이 토르의 볼을 통과했음. 광기를 품은 붉은 눈동자가 이채를 띄우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로키의 형체가 흩어졌음. 토르는 나무 밑에 서서 한동안 잎이 부대끼는 소리를 듣고 있었음

로키의 말대로 늙은 친구는 무사히 돌아왔음.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옛집에서 정신을 차렸고 지배를 받던 당시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했음. 자세한 결과는 두고봐야 한다지만 어쨌든 정신상태도 양호했고 다치지도 않았음. 제인이 뛸 듯이 기뻐하며 스타크 타워에 있는 토르에게 연락을 해왔음

그녀의 말을 들으며 다행이다 안도했음. 하지만 로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었음. 스티브는 결혼식 이후 넋이 빠져 보이는 토르를 걱정했음. 토르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스티브를 토닥였음. 그저 옛 생각이 나서 좀 울적해졌을 뿐이라며 껄껄 웃으며 안심시켰음

옆에서 토니가 ‘울적’은 댁 이미지에 안 맞는다고 한마디 보탰고 토르는 멋쩍게 동의했음

오랜만에 꿈을 꾸었음. 기억을 되찾고 처음으로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음. 오딘은 전과 다를 바 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토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음. 결혼식장에서의 기억이 반영된 결과일까

둘은 커다란 상수리 나무 아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음. 토르는 변해버린 로키를 어떻게 돌려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음. 오딘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주름진 손가락을 들어 앞을 가리켰음. 조그마한 반원형 검은 공간이 커지더니 집채만해짐. 움찔 몸을 물리려는데 오딘이 어깨를 토닥임

[괜찮다. 아들아. 보려무나]

토르는 불안한 눈으로 검은 공간 너머를 응시했음. 점점 무언가가 떠올랐음. 동그랗고 파란 별. 지구. 혹은 미드가르드. 빨려들어가듯 가까워진 지구는 맨해튼 상공에서 멈췄음. 로키의 뒷모습이 보였음. 아스가르드의 갑옷과 붉은 망토를 펄럭이는 자신의 모습도 보임

끝까지 버티고 서있는 멤버들을 공격하는 치타우리가 쏟아져 나왔고 맨해튼은 불타올랐음. "이것이 미래입니까 아버지?" 토르가 손을 떨며 물었음. 오딘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음. 영상은 계속 진행되었음. 우여곡절 끝에 토르는 로키에게 받은 칼로 그를 죽였음. 로키는 헐떡이며 미안하다 사과했음

지구는 지켜졌고 로키가 죽자 토르를 가로막는 안개가 사라졌음. 그리하여 헤임달이 무지개 다리를 타고 내려와 무릎 꿇고 왕에 대한 의례를 갖추었음. 모두가 기뻐했고 토르 또한 호탕하게 웃고 있었음. 완벽하게 행복한 결말임. 죽은 로키는 죄인으로서 아스가르드 왕성의 구석에 간략하게 기록됨

토르는 다시 왕이 되어 지구와 교류를 시작함. 자신이 죽였던 이들의 유족에게 막대한 보상과 함께 진심어린 사죄를 구했음. 용서 받거나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함. 가장 원만한 결말이었음

"이것이 미래가 아니라면 왜 저에게 보여주는 겁니까!"

토르가 이를 갈며 외쳤음

[내가 보여준 것이 아니다]

[네가 보는 것이다. 아들아]

오딘은 황금빛으로 변해 공중으로 녹아들었음. 토르는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다시 영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음. 시간은 흐르고 아스가르드에서 정신없이 왕의 책무를 다하던 토르는 잠깐 지구로 내려갔음. 거기엔 마리아도 제인도 에릭도 스티브도 아무도 없었음

토르는 짙은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다가 다시 아스가르드로 돌아감. 황금빛 성을 눈앞에 두고 헤임달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는 혼자서 저벅저벅 왕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음. 아스가르드는 여전히 황금빛으로 빛났음. 고즈넉이 녹아드는 황혼이 은은하게 주위를 붉게 물들였음. 아름답고 쓸쓸했음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남. 토르는 헉헉거리며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음. 헐벗은 상체가 땀이 번들거렸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속에서 심장이 미친듯이 뜀. 서서히 아물어가던 상처가 다시 쑤셔왔음. 상처 주위 살을 꾹꾹 누르며 발을 침대 아래로 내렸음. 새벽 5시 30분임

몽롱한 와중에 꿈에서 본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짐. 가장 원활한 미래였지만 굉장히 고통스러웠음. "로키, 너의 죽음으로 얻게 될 평화가 어찌나 달콤한지...” 침대에 앉아서 전면 창을 통해 끝내주는 스카이뷰-스타크의 말대로-너머로 빌딩의 숲 저편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았음

눈물이 흘러내렸음. 침대에서 일어난 토르는 비틀거리며 욕실로 걸어갔음. 물을 틀어 거칠게 얼굴을 문지르고 걸려 있는 타올로 얼굴을 닦았음.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고였음. 토르는 고개를 숙이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음. 짐승처럼 흐느끼며 숨을 몰아쉼. 바닥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음

태어나서 이렇게 많이 울었던 적이 있었을까. 제인의 장례식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음. 여태 흘렸던 눈물을 다 합치면 지금만큼 모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음. 욕실에서 나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억지로 들이키다가 힘조절을 못해서 컵이 깨졌음. 토르는 바닥을 보다가 다시 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음

해가 많이 떠올랐음. 한동안 멍하니 해돋이를 바라봄. 심장이 조금씩 정상박동을 찾아갔음. 떨리는 몸을 진정되어감. 귓가에 울리던 오싹한 비명소리도 사라짐. [네가 보는 것이다. 아들아] 토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음

배너가 뉴질랜드의 거대한 자연 동굴에서 테서렉트의 흔적을 발견했음. 그는 닥터 셀빅이 '파격'의 방향을 이루기 핵융합장치를 사용할거라 추측했음. 셀빅 또한 기억을 되짚으며 비슷하게 사고했음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좀 미쳐있었던 것 같아. 신이 나서 실험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나는군."

토르가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물컵을 내밈. "세뇌당하면 기분이 어때요? 날아갈 것 같나?" 제인이 보고서를 넘기며 물었음. 토르는 에릭을 내려다 보았음. 그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물을 마시다 말고 시선을 맞춰옴. 서로를 보던 둘은 벙찐 웃음을 지었음. "좋은 기분은 아니지." 에릭도 동의했음

"뭔가 끊임없이 나 자신과 싸웠던 기억이 나는군. 저항하면서 어떤 조치를 취한 것 같은데 영 기억이 나지 않아."

에릭이 머리를 감싸쥠

[완성도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장치는 완성된 것 같군요. 이제 어디서 포털을 열고 공격해 올지...]

홀로그램 너머로 배너가 말했음

"그건 이미 알고 있네."

"맨해튼이야. 로키는 반드시 그곳으로 올걸세."

배너는 안경테를 올리며 골똘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음

[그러니까 '비과학' 즉 감에 의한 추측인가요?]

토르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부정했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배너의 미간을 더욱 찌푸려지게 만듦

"꿈에서 보았다네."

[어.. 음.. 토르 그러니까 꿈이란 건 그...]

어떻게 말해야 상처받지 않고 아스가디언에게 미신에 대해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눈치였음. 토르가 호탕하게 웃었음. 

“언젠가는 나의 꿈이나 아스가르드의 마법도 자네들의 과학과 합을 마주하는 날이 올거야.”

배너는 콧잔등을 긁으며 긍정했음

맨해튼 공중에서 포탈이 열렸음. 이미 대비하고 있던 멤버들은 각자 맡은 곳에서 자세를 잡았음. 시민들은 대피했고 세계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 맨하튼은 고요한 정적만 감돌았음. 작았던 검은 점이 미묘하게 울렁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크게 확장됨. 동시에 펑- 하고 커다란 소리가 울렸음

펼쳐진 검은 공간 너머에서 로키가 모습을 드러냈음.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공기를 한껏 들이켰음. 그러더니 팔을 크게 벌리고 "너희들을 파괴할 자가 왔노라." 장난스럽게 중얼거렸음. 느긋한 얼굴로 주위를 휘휘 둘러봄. "형이나 동생이나 분위기 잡는 걸 좋아하는군. 아스가디언 종족특성인가?"

포탈 주변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는 자비스의 보고를 받으며 토니가 중얼거렸음. 로키는 텅 빈 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 토르를 보며 비릿하게 미소지었음. 쉴드에서 돌려 받았는지 갑옷과 붉은 망토를 끼고 있었음. 언젠가 로키에게 망토를 둘러주던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대적하고 있음

자업자득이지만 새삼스럽게 마음이 가라앉았음. "안녕 브라더." 토르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품에서 칼을 뽑았음. "어서와라, 로키." 냉정하게 인사를 받아줌. 멀리서 스티브가 방패를 단단히 쥐고 걸어나옴. 로키는 감히 아스가르드의 왕에게 저항하려는 인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새김

"그럼... 시작할까?"

빙긋 웃으며 뒤로 물러섰음. 포털 너머에서 치타우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함. 쾅쾅 소리가 터졌고 불꽃이 작렬했음. 토르는 한손에 든 칼로 몸통을 베어버리고 나머지 한손으론 가해지는 공격을 막으며 전진하기 시작했음. 멀리서 화살이 날아와 길을 뚫기 쉽게 엄호해줌

토니는 공중에 뜬 로키를 노려 빔을 쏘았지만 번번히 치타우리들의 생체 방패에 가로막혀 무산되었음. 스티브는 토르의 등 뒤를 노리던 놈에게 방패를 던졌음. “고맙네.” 토르가 인사하며 칼을 어깨 너머로 내질러 달려들던 놈을 찔렀음. 스티브는 돌아온 방패를 받아 발목에 매달린 손을 내려찍었음

로키는 셉터를 들어 눈을 빛내며 치타우리들을 조종했음. 토니는 그들을 하나하나 날려버리다가 제대로 공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모두에게 외쳤음. 그때 거대한 생명체가 로키가 서있는 포탈을 향해 튀어 날아갔음. “오...!” 녹색 주먹이 허공을 갈랐음. 로키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술을 축였음

공격대상을 잃은 주먹이 건너편 빌딩에 꽂혔음. 낙법이라곤 모르는 막무가내 착지와 함께 헐크가 포효했음. 한참 공격하고 방어하던 스티브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음. 치타우리들의 전투력은 낮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음. “시간끌기 같은데.” 스티브가 중얼거렸음

토르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온다.” 낮게 경고했고 곧 어마어마한 중력이 느껴졌음. 모두가 바닥에 납짝 엎드림. 토니는 부츠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고 버텼음. “이건 또 뭐야!” 포탈에서 소환된 것은 치타우리 뿐만이 아니었음. “배너 박사가 있었으면 설명해 줬을텐데..윽!” 바튼이 중얼거렸음

“저 미친 사슴양반이 중력까지 제어하나? 이것도 마법이야?!” 토니가 외쳤음. 엄청난 중력이 가해지는 와중에 멀쩡히 버티는 건 토르와 헐크, 둘 밖에 없었음. 헐크는 끙끙거리면서도 제 등에 달라붙은 치타우리를 어떻게 끌어내려 밟고 있었음. “그건 아닐거요.” 토르가 아는 한 이런 마법은 없었음

포탈을 통해 나온 것은 치타우리뿐만이 아니었음. “내 눈이 제대로된 게 맞으면... 저거 웜홀 아냐?” 검은 포탈 너머로 시꺼먼 시공이 모습을 드러냈음. “웜홀이 저렇게 생겼어?” “쉴드 보안레벨 7이 넘는 요원들이 나사 비공개 사진 한 장도 안보고 뭘 했어!” 토니가 앓는 소리를 냈음

웜홀이라면 이 느닷없는 중력의 변화도 설명이 가능함. 토르는 냉정하게 주위를 살피며 칼을 휘둘러 치타우리들을 베어냈음. 이 생명체들 역시 중력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 크게 방해가 되진 않았음. 그래도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 영 귀찮긴 했음. 냇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올가미를 던졌음

그물이 펼쳐져 뛰어내리던 치타우리 한마리를 휘감고 건너편 빌딩 벽에 박힘. ”가요!” 옆에서 튀어나오는 놈의 목에 단검을 박으며 외쳤음. 토르는 감사를 표하고 바튼의 짧은 엄호를 받으며 로키 밑으로 접근했음. 스티브는 냇과 바튼을 중력이 점점 강해지는 중심부에서 대피시키기 위해 움직였음

공중에 뜬 채 토니의 빔공격을 막으며 테서렉트가 박힌 조종장치를 쥐고 있던 로키는 접근하는 토르를 보며 가볍게 비웃었음. “묠니르도 없이 무슨 수로 나를 잡...”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강타하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신이 아득해졌음. 집중력을 잃어버린 바람에 아래로 떨어짐

아래에서 기다리던 토르의 발길질이 이어졌고 한참을 굴러간 로키는 빌딩 벽에 쳐박혀 잠깐 의식을 잃을 뻔 함. 멀리 테서렉트와 셉터가 나뒹굴었음. 어렵게 의식을 잡은 로키는 허!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고 헛웃음을 내뱉었음. “왜 그렇게 놀라지?” 콘크리트 잔해를 피해 토르가 걸어왔음

붉은 망토가 바람에 우아하게 휘날렸음

“그 마법...”

로키가 허무하게 웃으며 중얼거렸음. 겨우 두 대 맞았는데도 목에서 피가 끓었음. 토르는 어깨을 으쓱이며 작은 공간을 만들었음. 안으로 불쑥 들어간 손이 뭔가를 끄집어 냈음. 언젠가 로키가 선물로 주었던 벌꿀주임

“네가 알려줬지 않느냐.”

붉은 망토가 바람에 우아하게 휘날렸음

“차원을 두 개나 뛰어넘는 건 가르치지 않았어.”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라고 해다오. 제법 자랑스럽겠군.”

로키는 토르를 노려보며 고개를 슬쩍 돌려 피를 뱉어냈음

”형은 마법을 싫어했지.”
“오래 살다보면 변하기 마련이다.“

저벅저벅 걸어간 토르는 주먹질과 발길질 한 방에 널부러진 로키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아 올렸음. 반대편에 든 검을 목에 대자 로키가 검날을 잠시 보다가 토르와 눈을 맞춰왔음. 

“축하해. 형이 이겼네.” 

킬킬 웃으며 토르의 팔을 붙잡고 헐떡임. 

“끝났다. 로키.” 

승리에 들뜬 감정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음. 

“뭘 해? 안 찔러?” 

로키가 히죽거렸음

“포탈을 닫아. 이곳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토르가 으르렁거렸음. 그러자 로키의 눈이 빛났음. “지배?” 단어를 반복하더니 큭큭 웃기 시작함. 우스운 농담을 들었다는 듯한 태도였음

“미련하고 사랑스러운 형제여. 내가 고작 이 따위 저급 행성을 손에 넣으려고 모든 일을 꾸몄다고 생각해?”

목덜미를 잡은 토르의 손이 굳자 동요를 읽은 로키가 사악하게 웃었음

“다 필요없어. 이딴 쓰레기같은 별.”

녹빛 눈이 붉게 빛났음. “로키..설마?” 그의 뇌리에 불안한 가정이 스쳤음. 토르는 이를 악물고 로키의 몸을 벽으로 쾅 소리가 나게 박았음. 큭! 짧은 신음이 터졌지만 곧 다시 웃기 시작함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환하게 웃는 표정이 너무나 아이같아서 토르는 표정을 일그러트렸음

“내가 아주 어렸을때 어머니가 해준 말이 있어.” 

토르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음

“별의 죽음과 뒤를 따르는 거대한 곡성... 우주를 수놓는 아름다운 별들은 백색왜성이 되어 길었던 생을 마감하지만..”

”일부는 철철 넘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악마성이 되지. 그것들은 주위 손길 닿는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집어 삼키며 몸집을 불려. 스며드는 악몽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씹어 삼키는거야.”

입에서 피가 울컥 밀려 나왔지만 로키는 전혀 개의치 않았음. 이 상황이 너무나 즐거웠음

원래는 스티브를 셉터로 지배한 후 토르의 앞에서 죽여버리고 천천히 즐기려 했었음. 계획이 어긋난 건 아쉽지만 제 목숨줄을 쥐고 있는 형이 세상 괴로워하는 얼굴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제법 유쾌했음

“분명 방법이 있을것이다.”

토르가 낮게 탄식하며 팔목에 낀 통신기를 눌렀음

그때 로키가 목이 졸리는 소리를 냈음. 흠칫 놀라 힘이 조금 빠지자 틈을 놓치지 않고 빠져나와 토르와 함께 공간이동을 했음. 갑자기 바뀐 광경에 토르는 거칠게 로키를 노려보았음

“여긴 어디냐 로키!”

토르의 소중한 동료들이 있는 맨해튼은 이제 곧 사악한 별의 잔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임

그것은 지구를, 태양계의 절반을 먹어야 만족할 욕심쟁이였음

“노르웨이야. 한때는 우리들로 전설을 썼던 그나마 볼 만한 나라. 미드가르드의 마지막을 구경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어.”

녹색 풀이 가득한 탁 트인 절벽이었음. 멀리 펼쳐진 바닷가와 구름 가득한 푸른 하늘이 눈을 편안하게 해줬음

“가장 사악한 죽은 별을 불렀어. 인간들은 웜홀이라고 부르던가.. 아무래도 좋아.”

토르는 불처럼 분노했음. 당장 돌아가자고 외치며 로키에게 달려들었음. 마법을 써서 피할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음. 로키는 풀이 가득한 흙바닥에 눕혀져 제 위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격노하는 토르를 올려봄

이 순간 진심으로 행복하다 느꼈음

“이제 곧...”

로키는 중얼거렸음. 텅 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림

“형은 해방되는거야. 기쁘지?”

토르는 눈가를 부들부들 떨었음. “로키!” 붉게 달아오른 눈에서 눈물이 맺히더니 그대로 떨어짐. 두 형제는 나란히 울었음

“이런 건 아니다... 이런 마지막은... 네 녀석은 어쩜 이다지도 잔인한 것이냐!!!”

토르는 짐승처럼 울부짖었음. 돌아가자 제발. 그곳으로 가서 모두를 구해야 한다. 우리에겐 생명을 앗아갈 자격이 없다. 드문드문 힘겹게 이어지는 토르의 애원을 한귀로 흘렸음

“형의 내면을 보았을때...“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 발견한 응어리진 고통의 중추에서.. 인간에게 종속되어 살아가는 널 보았어.”

손을 올려 토르의 목에 끼여진 구속구를 건드렸음

”그것은 노예의 삶이었다.”

로키는 이를 으득 갈며 구속구를 흔들었음. 제법 튼튼하게 만들어졌는지 흔들리기만 할 뿐 풀릴 기미가 안보였음

결국 손을 놓고 힘을 다 빼버림. 폭신한 흙의 감촉이 느껴짐

”형은 죽지 않을거야. 아스가디언은 튼튼하거든.” 

로키의 말에 토르가 힘없이 중얼거렸음

“그럼 너는... 서리거인은...”

로키는 희미하게 미소지었음

“몰라.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했어.”

그 말에 토르가 분노에 차서 외쳤음

“그래서 너는 인간들과 동시에 공멸해 나를 외톨이로 만들 셈이냐!”

목을 잡은 두꺼운 손이 앞뒤로 강하게 흔들렸음. 로키는 현기증이 일었지만 애써 손을 올려 눈물 범벅으로 외치는 토르의 얼굴을 쓸어줌

“이 의미없는 파괴를 멈춰다오, 로키. 제발 부탁이다... 네가 바란다면 지구를 떠나마.“

”지구를 떠나 죽을때까지 발도 붙이지 않겠다! 네가 하라는대로 다 할터이니 제발...”

토르가 엉엉 울부짖으며 애원했음. 어린애처럼 우는 모습이 가슴아프면서도 사랑스러웠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매달려 절규하고 있음

“미안해, 사랑해 토르.”

분명 바랐던 순간인데 눈물이 멈추질 않음

토르는 로키의 몸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아아- 멍청한 소리만 냈음. 마지막으로 본 것은 맨하튼 하늘이 미지의 검은 물질로 뒤덮히고 있는 장면이었음. 로키가 떨어트린 테서렉트는 보호구가 깨져 푸른 빛을 번뜩이며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음. 절망적이었음. 지키지 못한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음

그때 토르의 눈에 칼이 보였음. 길게 자란 풀에 반쯤 가려진 날이 반짝였음. 토르는 천천히 손잡이를 잡고 끌어 올렸음. 양손으로 손잡이를 꽉 쥐고 칼날 끝을 누워있는 로키의 가슴에 갖다 댐. 로키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화답함

“결심이 선거야? 좀 늦었네. 뭐 형 손에 죽는다면 영광이야.”

정신이 나간 것처럼 낄낄 웃는 로키를 내려다보며 토르는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음. 천천히...

[복수는 하지 마, 엔젤]

복수. 지금 로키에게 하려는 짓은 단순한 분풀이였음. 토르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손에서 힘을 뺐음. 칼 끝이 툭 가볍게 가슴에 닿았다가 그대로 넘어가서 흙바닥에 안착함

“형 답네.”

로키가 비웃었지만 토르는 개의치 않고 비척비척 일어남. 손을 뻗어 잡아왔지만 거칠게 쳐냈음. 

“야박하긴! 마지막일수도 있는데 키스는 못해줄지언정 손 정도는 잡아 줘. 하찮은 개미들 손목도 쓸어주면서 사랑하는 동생한테 그 정도도 못해?”

로키가 눈물을 흘리며 킬킬 웃었음

토르는 어지러운 머리로 에릭이 병원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음

[이 친구야, 주위를 좀 믿어. 네가 아무리 대단한 신이라도 우리를 무슨 애완동물처럼 여기지 말라고. 인간들도 제법 강해]

잠시 로키를 보다가 눈물을 닦으며 통신기를 켰음. 거리가 멀었지만 연결에는 큰 문제가 없었음

“내 말 들리나?”

저 편에선 응답이 없음. 확인사살이라도 하는 거냐며 비웃는 목소리를 억지로 무시했음

[..토...ㅇ....곳... ㄱ..]

통신기가 작동했음. 목소리가 지직거렸지만 살아있는 사람이었음. 로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음

“스타크! 스티브! 내 말 들리나?!”

토르가 간절하게 외쳤음

[.....오 젠장, 죽을 뻔 했네. 토르 갑자기 사라지더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로키는?]

토니의 목소리였음. 로키가 여유를 잃은 창백란 얼굴오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음

“다들 괜찮나?”
[아니! 전혀 안 괜찮아. 살다살다 웜홀을 지구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볼 줄이야... 그래도 영감님 덕분에 살았어]

토니가 설명했음. 제인이 지프 뒷 자석에 링겔을 단 셀빅 박사를 태우고 출입금지된 맨해튼으로 왔음. 에릭은 포털을 열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며 거기에 약간 수작을 부려놓았다고 함. 이론상 치타우리 셉터를 키스톤으로 삼으면 동력원을 닫을 수 있었음. 그러나 로키가 떨어트려 장치가 깨진 상태였음

조각난 장치를 급조하는 동안 스티브가 폭주하는 테서렉트를 맨손으로 잡고 버텼음. 배너에게 들은 말이 있다면서 자신을 믿으라고 덥썩 잡을때 토니는 캡틴이 미친 줄 알았다며 한숨을 쉬었음. 핵 미사일 승인이 떨어져 그걸 안고 자살할 뻔 했던 본인 경험도 이야기함

[토르! 들려요?]
“제인?”

[정말 엄청났어요! 세상에 제가 경찰을 따돌리고 출입금지 표지판을 차로 밀어버렸다구요! 그 와중에 사람도 칠 뻔 했지만... 음 안그랬으니 괜찮죠. 아무튼 아직도 흥분되네!]

제인은 엄청난 모험을 했다며 신나게 웃었음. 옆에서 말리는 목소리가 들렸음

[아 이 아가씨 참 활기찬데..]

[아무튼 남은 치타우리도 처리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배너도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냇이 다쳤지만 바튼이 잘 도와주고 있군]
“스티브는?”
[그는..안타깝지만... 세상을 떠났어...] “뭐라고?”
[미안 농담이야]

토니의 목소리가 멀어졌음

[캡틴은 잠깐 의식을 잃었지만 괜찮을 겁니다]

마리아였음

테서렉트를 잡은 후유증으로 잠깐 기절한 것 뿐이라고 함. 토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음

[로키는 어떻게 됐나요?]

그녀의 물음에 토르가 고개를 돌렸음. 로키가 멍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음. 어째서.. 왜.. 완벽했는데.. 중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옴

“확보했으니 걱정 마. 잠깐 통신을 끊겠네.”

[잠깐.. 거기가 어딘]

로키는 여전히 흐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음. “로키.” 불러도 대답이 없음. 토르는 느릿하게 걸어가 주저 앉은 로키 앞에 무릎을 꿇었음

“로키. 끝났다.”

이제 다 끝났으니 항복하라. 혹은 이제 네 장난질도 끝이니 얌전히 포기해라. 둘 중 어떤 의미도 아니었음

“로키. 그만하자. 너를 잃기 싫구나.”

어떠한 부정적인 뜻도 담겨있지 않았음. 로키는 느리게 초점을 맞춰옴. 회색으로 가라앉은 눈이 토르의 얼굴을 바라봄

“토르... 미안해.”

울먹이며 용서를 구해옴. 잘못했어. 미안해. 엉엉 울기 시작했음. 토르는 언제나처럼 그런 동생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음

끅끅 우는 소리가 좀처럼 그치지 않았음. 그러다가 순식간에 “멍청한 토르. 학습능력이 없지.” 싸늘해졌음

로키는 뱀을 품고 있었음. 토르가 약해질때면 아가리를 벌리고 상처를 물었음. 지금처럼

하지만 로키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음. 토르는 가끔 일부러 날카로운 이빨에 물려주었음. 지금처럼

둘은 어디론가 날아갔음. 바이프로스트에서 떨어졌을 때처럼 미친듯이 휩쓸렸음. 로키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음. 그저 멀리 아주 멀리 가길 바랐음. 인간들과 떨어진 저 먼 우주 어딘가로. 재수가 없으면 지구의 위성인 달에 안착할수도 있었지만 운이 좋았음. 종착지는 얼음으로 가득 찬 별이었음

대기권에서 떨어져 내리며 둘의 몸이 붉게 빛났음. 토르는 로키를 감싸 안고 지면에 착지할때의 충격을 제 몸으로 받아냈음

눈을 뜨자 로키가 엉망진창이 되어 널부러져 있었음. “알고 있었으면서 왜 밀어내지 않았지?” 토르는 힘없이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음. 그리고 입에서 나온건 붉은 핏덩이였음

울컥 그것을 토해내는 모습을 본 로키가 깜짝 놀라 마법으로 갑옷 상의를 벗겼음. 낙하시의 충격으로 상처가 아주 크게 벌어졌음. 그로테스크하게도 붉은 살 안쪽에서 펄떡이는 심장이 보일 정도였음. 로키는 창백해졌음. “왜...” 토르는 떨리는 눈을 느리게 감았음. 그러자 로키가 뺨을 때렸음

“내 앞에서 눈 감지마.”

토르는 다시 쿨럭거렸음

“너..무하구나.. 잠도..자지 못하게 하는..것이냐..”

입가에 핏길을 트여 주륵주륵 흘러내렸음. 창백해진 안색과 드러난 심장이 죽음을 목전에 둔 느낌이었음

“심장에 충격이 커. 말 하지말고 눈 감지마. 잠들지도 말고 조용히 집중하고 있어.”

토르는 어려운 요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로키가 진지하게 마법을 쓰고 있어서 기침을 하며 몸에서 힘을 뺐음

“회복이 안 되잖아!”

로키가 울먹이며 분통을 터트림. 셉터에 찔리고 헐크와의 싸움에서 벌어지고 스티브의 방패날에 가격당하고 총알까지 박힌, 이미 해질대로 해진 너덜너덜한 상처임

토르는 피식 웃으며 손을 올려 로키의 얼굴을 쓰다듬었음

“이제...됐다.”

그 말에 로키가 고개를 들었음. 토르는 간간히 끊기는 의식을 억지로 부상시키며 느리게 말했음. 너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아스가르드, 미드가르드, 인간, 스티브 로저스 보다. 그러나 로키는 고개를 저었음

“거짓말.”

로키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함. 당연하게도 토르의 내면을 파고들면서 수도 없이 직접 목격했기 때문임.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에게 얼마나 매료되어 있는지 피부로 직접 느꼈음

”형은... 이러면 안되잖아. 마지막엔.. 로저스를 선택해야 하잖아...?”

멍청하게 중얼거렸음

“그들에게 널 넘겨주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형이 돌아가지 못하도록...”
“그래 가지 않는다...”

토르가 말하자 로키는 비명을 토해냈음

“거짓말! 지금 죽어가는 것도 다 연기지? 내가... 내가 마법을 해제하고...헤임달을 불러서 아스가르드로 데려가서.. 그리고 다시 형은 지구로 가서...”

“로키.”

손 끝이 로키의 눈가를 쓸었음. 흠칫 놀란 로키가 손목을 쥐었음

“혹여 내가 죽어도..”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 피를 토해냈는데 이번엔 양이 좀 많았음. 피가 로키의 무릎을 적셨음. 삭막한 얼음행성에서 로키는 제 고향과도 같은 폭신한 공기에 감싸여 식어가는 형제의 몸을 붙들었음

요툰헤임의 반절도 안 되는 한기임에도 어느때보다 강렬한 추위를 느꼈음

“나를 잊고...돌아가서 행복하게...” 

로키는 토르의 눈에 초점이 맞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발작하듯 마력을 쏟아부었음. 가슴의 상처는 여전히 벌어져 있음. 사이로 비치는 심장의 박동이 점점 느려지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함

토르 토르 오 제발! 토르! 미친듯이 이름을 불렀음. 푸른 눈에 흐리멍텅한 회색 빛이 퍼져나갔고 거기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음. 로키는 더는 참을 수 없었음

“헤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