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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주는 토르(스팁토르) 20

토르는 미드가르드에서 살았음. 가끔 쉴드의 부탁을 받아 해결하러 나서기도 했지만 주로 조용히 목수일을 했음

스티브는 버키의 옆에 앉아 손목을 쓸어 주었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토르는 스티브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투영하고 가슴이 먹먹해졌음. 혼자 남기고 가서 미안하다는 그에게 스티브는 옆에 있던 토르의 손목을 잡으며 "혼자가 아니니 걱정마." 라고 오랜 친우에게 속삭여 주었음

차마 손을 뺄 수 없어서 머뭇거리는 사이 심박을 알리는 기계가 삐- 길게 울렸음

시간은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갔음. 토르는 스티브의 연인으로서 함께 지냈음.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음. 캡틴 로저스는 작전사령관으로서 쉴드의 대테러 임무를 수행했음

토르는 브루클린 보금자리에서 가구를 만들었음. 가끔 교류를 목적으로 내려온 아스가디언들을 보러 쉴드에 방문하기도 했음. 처음에는 꺼림칙한 눈길을 보내던 요원들도 차츰 표정을 풀어갔음. 물론 끝까지 싸늘한 자들도 있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음. 모두에게 용서받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음

스티브는 가끔 악몽을 꾸느라 한밤중에 일어났음. 그럴때면 옆에서 함께 잠들었던 토르가 꾸물거리고 일어나 그를 달래주었음. 괜찮다고 대답하면서도 온 몸이 땀범벅이었음. 그걸 본 토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스티브를 덥썩 껴안았음. 그리곤 딱딱하게 굳은 등근육을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쓸어주었음

씻어야겠다고 말해도 풀어주지 않았음. "더 자게." 잠자리에선 져주면서 이럴때는 막무가내였음. 그래도 토르에게 안겨 자면 괜찮아졌음

에릭과 제인은 자주 만났음.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둘은 쉴드의 부탁이 있을때마다 맨해튼으로 자주 들렀는데 세계 어디에 있든 추수감사절은 반드시 함께 보냈음

별다른 굴곡 없이 원만하고도 행복하게 시간이 흘러갔음. 10년이 지나자 마리아가 병상에 누웠음. 아직 60대 중반의 그녀로선 빠른 편이었지만 본인은 어느정도 각오하고 있었던 모양임. 과거 테러 사건으로 죽다가 살아나기도 했고 요원일을 하느리 축적된 피로도 무시하지 못했음

그녀는 약물요법과 신약실험을 거부했음. 허락한 것은 호스피스 완화치료였음. 토르는 마리아의 곁에서 시간을 보냈음. 병실 브라운관을 통해 스타워즈도 함께 보았음. 2020년대에 보기엔 웃음이 나올만큼 조악한 특수효과였음. 이미 70년대 딸에게 스포일러를 거하게 당했지만 재미있게 보았음

틈이 날 때마다 그녀의 야윈 손목을 잡아주었음. 마리아에게 가족이라곤 토르 뿐이었음. 만약 지구와 완전히 연결을 끊어버렸다면 그녀의 마지막이 얼마나 쓸쓸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음

"엘 파소에서 결연을 맺었던 아이를 입양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버지도 알다시피 제가 많이 바빴잖아요."

"외로워 할 거라 생각했더니 차마 안되겠더군요."

그 말은 토르를 찔렀음

"옛날에 내가 널 쓸쓸하게 했었지."

그러자 마리아가 주름진 미간을 인정사정없이 찌푸리더니 흘러 내린 긴 금발을 팍 당겼음

"또 나쁜 버릇! 당신을 탓할 의도였다면 제 성격에 빙빙 돌렸겠어요? 대놓고 말했겠죠."

그렇게 병상에 누운지 6개월이나 지났을까. 코에 호흡기를 단 마리아는 조용히 떠났음. 

"사랑해요 대디." 

토르는 그녀의 손목을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였음. 

"좋은 여행이 되길." 

눈물은 없었음. 슬프지 않다는 건 아님. 과거의 환영에 사로잡혀 그리움만 곱씹으며 사는 것은 이제 졸업해야했음

주어진 시간대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죽음을 멋대로 동정하는 것은 오만이었음

제인은 결혼식을 올리고 딱 1년 만에 이혼했음. 상대가 바람을 피웠는데다가 무려 폭력성까지 보였다는 말에 토르가 눈을 번뜩이며 전 남편의 주소를 요구했음

분노한 데미갓을 필사적으로 말리던 에릭도 접근금지를 무시하고 제인의 팔에 매달린 전 사위의 얼굴에 뜨거운 애플파이를 던져 고소장을 받았음

에릭은 황혼 결혼을 했음. 평생 독신으로 살거라던 80년대 과거를 들추며 희희낙락해도 마음껏 비웃으라며 늦게 만난 만큼 뜨겁게 사랑했음

토르는 오픈카를 몰고 떠나는 친구를 따뜻한 눈으로 배웅했음

많은 일들이 있었음. 슬프기도 행복하기도 했음. 스티브는 쉴드에서 나왔음. 평범한 민간인이 되어 제일 처음 한 일은 한적한 시골에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음. 스티브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고 싶어했음

과거와 달리 누구도 손가락질 하지 않았지만 그는 시골로 가고 싶어했음. 토르는 그것이 스티브의 방어기제임을 알았음. 둘은 인디애나 주 한적한 호수 옆에 자리를 잡았음. 차로 20분은 달려야 민가가 나올만큼 조용한 곳이었음. 토니는 영감님 답다며 핀잔을 주면서도 집들이 선물을 1등으로 보냈음

호수에 띄울 수 있도록 특별 제작한 고급 요트를 직접 날라 주었음. 추수감사절이되면 다들 모여앉아 조촐한 파티를 열었지만 특수한 때를 제외하곤 대체로 조용하게 지냈음. 토르는 참나무를 단단히 엮어 호수에 부둣가를 세웠음. 스티브는 그림을 그렸는데 완성되면 자선 바자회나 단체에 기부했음

캡틴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필명을 썼음에도 인기가 좋았음. 또 그는 은퇴 후에도 쉴드의 부탁이 있으면 종종 비공식 미션에 뛰어들었음. 토르가 도와주겠다고 나서도 단호하게 거절했음. 캡틴 로저스는 유능했고 실제로 임무처리율도 완벽에 가까웠음. 먼 옛날 도널드 블레이크가 그랬던 것처럼

또 10년이 지났음. 에릭이 아팠음. 호들갑 말라며 병문안 온 토르를 돌려보낸 그날 밤, 입원한지 삼일만에 심정지가 왔음. 인디애나로 돌아가자마자 소식을 듣고 달려온 토르에게 제인은 상심하지 말라 강조했음. 상실로 인해 울면서도 에릭의 마지막을 그의 부인과 함께 지켰다며 씩씩하게 말했음

"에릭은 눈을 감기 전에 다 괜찮다고 했어요." 

그것이 곧 나을테니 걱정말라는 뜻이었는지 혹은 맞이할 죽음에 담담하다는 뜻이었는지 의도가 불분명했지만 제인은 후자라고 믿었음. 토르도 그녀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이며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대답했음

토르와 스티브는 콜슨의 유언장을 받았음. 사후 1년이 지나면 발송되도록 조치해 둔 것이었음. 토르는 편지를 읽고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음

[꼭 마지막을 지켜야 한다고 강박처럼 여기지 말아요. 저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토르를 도울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당신의 친구 필 콜슨으로부터]

먹먹함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 같음. 똑같이 콜슨의 편지를 한손에 든 스티브는 토르에게 커피를 건넸음

"뭐라고 적혀 있었나?"

토르가 나직하게 물었음

"제 우울증을 걱정하네요. 다 나았다고 해도..."

스티브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옆에 앉았음. 토르는 그의 넓은 어깨에 머리를 기댔음

크고 따뜻한 손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음. 슈퍼솔저라 노화가 느리긴 했지만 토르의 눈엔 그가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이 보였음. 빠르고 느리고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멈춰있는 존재에겐 다 느껴지는 법임. 그래도 안면있던 자들이 하나 둘 쓰러져 갈때 스티브는 끈질기게 버텼음

그것이 고맙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음.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과 행복은 단단해졌고 반대로 언젠가 맞이할 결핍의 크기를 불려갔음

2050년대가 되자 제인이 떠났음. 토르는 과거 제인 포스터의 마지막을 지켰던 것처럼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지만 손목을 쓸어준 준 것은 그녀의 입양된 딸이었음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것은 유전자 정보만이 아니었음. 제인의 딸은 어머니의 마른 손목을 감싸고 쪼그라든 손등에 키스하며

"언젠가 다시 만나요. 좋은 꿈 꾸세요."

사랑한다 속삭였음. 토르는 심장이 저려왔음. 먼 옛날 했던 말이 떠올랐음

'너희들이 있는 곳에 나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군.'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하늘의 별보다 오래 숨 쉴 토르는 끝이 보이지 않는 끝이 오면 발할라로 떠날 것임. 그렇다면 인간들은 어디로 갈까? 로키는 인간이 죽으면 그들의 혼이 미세하게 흩어져 다른 혼들과 합쳐져서 각종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음. 토르는 그걸 믿지 않았음

로키가 본 원전은 집필자가 알려지지 않았기에 신뢰성이 부족했음. 무엇보다 믿고 싶지 않았음. 원전이 진실이라년 너무 잔인했음. 토르는 그들이 편히 쉬길 바랐음. 이왕이면 아주 먼 훗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지

배너가 죽었음. 빅가이와 함께였음. 냇이 인도의 조용한 관광지에서 흰머리 성성한 박사의 마지막을 지켰음. 배너는 평소의 가치관대로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음. 그럼에도 토르에게 전해진 유언은

[과학과 마법이 함께하는 순간 우리들은 다시 만날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다소 낭만적으로 들렸음

슬픔만 되새기지는 않았지만 커져가는 공동은 어쩔 수 없었음. 토르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음. 스티브도 마찬가지였음. 그는 얼마전 친한 친구인 샘을 잃었음. 슈퍼솔저의 삶은 평범한 인간들과 속도가 달랐음. 토르와 비슷한 점이었음. 정의감 높고 가치관이 올바른 청년은 속에 우울을 품고 있었음

비슷한 두 남자는 서로에게 기댔음. 스티브도 토르도 서로의 결말을 짐작하고 있었음. 언젠가 술을 마시며 속을 터놓을때 그 이야기를 했는데 둘은 동시에 웃었음. 서로를 가엾게 여기는 연인이라니 참 애처롭다 싶었음. 토르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스티브에게 입을 벌려보라고 장난스럽게 말했음

고개를 갸웃거리던 스티브는 이내 과거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음. 익숙하게 입을 벌렸고 혀 위로 위스키가 담긴 초콜릿이 올라갔음. 스티브는 답례로 테이블 위로 몸을 쭉 뻗어 토르의 양 볼을 감싸고 부드럽게 키스해 주었음. 평소보다 조금 더 달달한 키스였음

토니가 서류상 사망했음. 그는 냉동상태로 긴 수면에 접어들었음. 오래 살고자 하는 부자들 특유의 탐욕은 아니었음. 토니는 100년 뒤, 지구의 미래를 보고 싶어했음. 그에겐 그럴만한 재력도 자격도 있었음. 잠들기 전 토니는 페퍼에게 키스하고 앞에 선 토르와 스티브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음

"영감님이랑은 마지막이겠군. 아, 댁은 100년 뒤에 꼭 마중나와."

토르를 향해 검지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당부했음. 그 모습에서 진지함을 찾긴 어려웠음

"그러겠네."

웃으며 약속해줌. 토르와 스티브, 페퍼는 캡슐 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 토니의 얼굴 위로 서리가 내려앉는 모습을 지켜봄

가족들로만 이루어진 바튼의 장례식에 초대받아 스티브와 함께 참석했음. 둘은 거기서 냇을 만났음. 그녀는 흰 머리를 우아하게 틀어 올리고 허리를 똑바로 편 채 둘을 맞이했음. 식이 진행되는 중에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 앉아있던 그녀는

"나도 아마 내년쯤이면 죽지 않을까?"

툭 내뱉듯 말했음

스티브는 인상을 썼음

"그런 소리마. 정정해 보이는데."

냇은 대꾸없이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음. 그리고 정말로 일 년 뒤, 침대에서 잠자듯 갔음. 생전 안하던 압생트를 마신 흔적이 있었음. 잔은 두개였고 채워진 잔과 빈 잔이 나란히 놓여 있었음. 그녀의 마지막은 누구도 지키지 못했음

시신은 가사도우미에 의해 사후 11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됨. 술잔 옆에 짧은 유서가 있었는데

[신념을 지키며 살아왔으니 후회 없는 삶이었습니다. 나를 처음 발견한 사람에게 보상금 ****달러를 주세요]

라고 적혀 있었음. 스티브는 헛웃음 지으며 나타샤 답다고 중얼거렸음. 토르는 눈을 내리깔았음

토르는 완전히 변해버린 맨해튼 쉴드 본부를 방문했음. 리모델링이 되어도 여전히 변함 없는 부분이 존재했는데 도널드 블레이크와 마리아 힐의 구식 캐비넷이 그 중 하나였음. 부서진 자물쇠를 빼고 손잡이를 당겼음. 문짝에 마리아의 사진과 찢어진 모퉁이에 테이프로 붙여진 알투디투 엽서가 반겨줌

오래된 도널드 블레이크의 사진도 어딘가에서 꺾어온 마른 들풀과 함께 테이핑 되어 있었음. 안에 냇의 유언장을 넣다가 손에 걸리는 액자 두 개를 꺼내봄. 토르와 스티브의 콩테 그림. 잠시 추억에 잠겨 유리를 쓰다듬다가 다시 넣었음

토니가 선물해준 요트가 박물관에 갈 만큼 구식이 되었음. 인류는 화성을 개척했고 지구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등장했음. 도리와 시골의 풍경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음. 토르와 스티브가 사는 인디애나 주도 개발 바람이 불었지만 스타크 그룹의 입김 덕분인지 둘의 보금자리는 무사했음

2120년이 되자 스티브의 금발은 하얗게 변했고 근육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 정정하고 힘도 셌음. 토르는 그의 곁에서 마지막 날을 새기는 작업을 시작함. 나무로 만든 부둣가 끝에서 토르와 스티브는 작은 나무 의자를 가져다 놓고 낚시를 즐겼음

잡히는 물고기는 대부분 풀어줬지만 간간히 찾아오는 들짐승에게 양보하기도 했음. 스티브 로저스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로맨틱한 사내였던지라 시도 때도 없이 토르에게 키스했음. 토르는 껄껄 웃으며 답례로 키스를 돌려줌

"사랑해요."
"나도 그렇소."

둘은 호숫가를 산책하거나 집 앞 뜰을 가꾸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을 속삭였음

연극을 보러 가는 날임. 오클라호마. 세기가 지났기에 1940년대 극과는 감상이 전혀 다르겠지만 둘 다 걱정하지 않았음. 토르는 백발을 깔끔하게 빗어 넘긴 스티브와 마주보고 그의 타이를 정돈해 주었음

"요즘 누가 연극을 볼 때 정장을 입어요."

꼼꼼한 손길을 받으며 스티브가 웃었음. 토르는 그가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잘도 말한다 싶었음. 대답없이 옷을 정돈해줌. 노년의 스티브 로저스는 아주 멋있었음. 근육이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덩치가 컸고 얼굴엔 여유가 넘쳤음

토르는 키체인을 들오 스티브의 손목을 잡아 끌었음. 한참을 달려 보러간 극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불만을 달지 않았음. 둘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손잡고 길거리를 걸었음. 바뀐 도시의 풍경이 정신없다는 등의 구닥다리 감상을 주고 받다가 주차해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음

10년, 20년 행복한 시간은 어찌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야속할 지경임. 냉동된 채 잠이 든 토니와 슈퍼솔저인 스티브를 제외하곤 모두 죽은지 오래임. 토르는 샐러드볼에 야채를 넣으며 꾸벅꾸벅 조는 스티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음. 흰머리가 성성했음. 살짝 드러난 귀도 쪼그라들어 있음

준비해 테이블에 올리고 앞치마를 벗으며 소파로 간 토르는 뒤에서 팔을 두르고 연인의 볼에 가볍게 키스했음

"스티브, 식사 준비됐으니 일어나지."

대답이 없음. 불길한 상상이 뇌리를 스침. 설마. 토르는 화들짝 놀라 소파를 뛰어넘었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줄어든 어깨를 흔들며 외쳤음

"스티브!!" 그러자 주름진 눈이 힘겹게 떠짐. "음, 미안해요. 깊이 잠들었던 모양이군요." 토르는 가슴을 쓸어내렸음

"이제 슬슬 날 두고 가요." 여느 때와 똑같이 부둣가에 나란히 앉아 낚시를 하던 중이었음. 토르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음

"많이들 떠났어요. 내 마지막까지 지키게 하는 건.."

"...그건 당신에게 너무 잔인한 짓이네요."

낚시대를 든 손에 힘이 없는지 자꾸 놓치려고 함. 토르는 대답 없이 그의 볼에 키스하고 낚시대를 빼앗았음. 행동이 약간 거칠었음. 분노를 읽은 스티브가 느릿하게 미소지었음. 토르는 확언했음

"그런 일은 없을거야. 장담하네."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였음. 스티브는 웃었음

"언젠가 로키가 말했던대로 미련하네요. 그런 점도 사랑하지만."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이름이 스티브의 입에서 나오자 심장이 덜컹거렸음. 토르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킴

"바람이 쌀쌀해. 안으로 들어가야겠어."

겉옷을 벗어 덮어주었음

부축하려 하자 느리게 고개를 저었음. 그러더니 어떻게든 혼자 일어남. 토르는 보폭을 줄였음





새볔에 눈을 떴음. 날이 어스름히 밝아 있었음. 눈을 비비다가 문득 옆에 스티브가 없다는 것을 깨달음. 정신이 번뜩 들었음. 몸을 벌떡 일으켜 스툴 위에 올려둔 갈색 가운을 걸쳐 여몄음

자주 틀어박혔던 작업실 문을 열어도 없었음. 온 집안을 돌아다니던 토르는 창문 너머로 부둣가에 앉아있는 그를 발견함. 신발도 신지 못하고 문을 열고 부둣가로 한걸음에 달려갔음

"일어났나요?"
"놀랐어. 깨우지 않고 왜..."
"기분좋게 잘 자길래."

스티브가 미소지으며 올려 봄

급하게 나오느라 헝클어진 금발이 새벽 바람에 마구 나부끼고 있음. 가운만 한 장 걸치고 있었고 신발도 신지 않은 맨다리 맨발의 계절감 없는 차림새였음. 스티브는 변함없는 그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음. 토르는 긴장을 풀고 스티브 옆 의자에 앉아서 길쭉한 발을 쭉 뻗어 호숫물에 담갔음

흔들자 묻어 있던 흙이 풀어짐. 가을 새벽이라 쌀쌀했지만 공기는 상쾌했음. 밤새 깔렸던 안개가 사라지면서 물이끼 냄새가 코끝에 감돔

"토르."

부르는 소리에 물에서 발을 올려 거두고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여줌

"말하게."

스티브는 느릿느릿 말했음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언제나처럼 사랑고백이라고 생각했음. 스티브 로저스는 로맨틱한 사내였으니까

"이쪽에서 할 말이군."

익숙하게 대답하자 스티브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더니 토르를 향해 내밀었음. 잠깐 보던 토르도 이내 알아채고 제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렸음. 부드럽게 감싸 쥐고 들어올려졌음

주름진 얼굴로 미소짓더니 손등에 키스했음

"마지막까지 함께할 상대를 만나요."

토르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음. 손등에 다시 한 번 키스하더니

"잘 있어요. 내 사랑."

그게 끝이었음. 주름진 손이 아래로 떨어졌음. 토르는 미간을 스르르 풀며 입을 조금 벌렸음. 눈이 한계까지 뜨였음

"스티브!!"

과호흡 환자처럼 발작하듯 숨을 들이키며 벌떡 일어났음. 고개를 떨군 스티브의 어깨를 잡아 거칠게 흔들었음. 아직 신체가 따뜻했음. 그랬기에 믿기지 않았음. 온기가 넘치는 이 노인은 방금까지 말하고 숨쉬고 조언까지 했음.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고 주름진 뺨을 살짝 건드렸음

"스티브!!"

과호흡 환자처럼 발작하듯 숨을 들이키며 벌떡 일어났음. 고개를 떨군 스티브의 어깨를 잡아 거칠게 흔들었음. 아직 신체가 따뜻했음. 그랬기에 믿기지 않았음. 온기가 넘치는 이 노인은 방금까지 말하고 숨쉬고 조언까지 했음.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고 주름진 뺨을 살짝 건드렸음

낚시대가 떨어져 검은 물 아래로 가라앉았음. 떠오르는 태양빛이 호수위로 은은하게 비추자 반사된 표면이 보석처럼 반짝였음. 토르는 서서히 굳어가는 스티브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음. 흐으... 폐가 끓는 신음이 잇사이로 새었음. 이별이 익숙할 리 없었음.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었음

나름대로 준비해왔다고 생각했었음. 막상 닥치니 그게 얼마나 멍청한 오산이었는지 뼈져리게 깨달았음. 스티브는 토르를 배려하듯 천천히 떠났지만 데미갓의 멈춘 시간에 맞추긴 역부족이었음. 부드럽던 몸이 딱딱해지자 그제야 토르는 무릎에 묻고 있었던 얼굴을 들었음

눈물로 흐릿한 시야를 손등으로 거칠게 쓸었음. 억지로 후우- 깊은 숨을 몇 번이나 삼키고 뱉으며 감정을 조절했음. 노인의 감긴 눈은 편안해 보였고 입은 미소짓고 있었음. 토르는 축축한 손을 들어 굳은 뺨을 쓸어내렸음

"잘 가게. 내 사랑."

두 번째 이별이었고 마지막 이별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