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럴 제이콥슨은 운이 좋은 남자였음. 그는 중대한 선택을 앞두고 있음. 곧 해왕성 테라포밍 작업을 위해 선발대가 출발함. 학부 성적을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졸업하고 우연히 정부 프로젝트 말단 연구원으로 들어가 물경력과 경력의 중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음
그런 그에게 해왕성행 티켓이 손에 들어왔음. 장장 25년간 이어지는 정부 주도의 장기 프로젝트임. 25세인 데릴이 들어가면 50세가 되어 나오는, 혹자는 창창한 젊은 시절을 고적한 우주에서 보내야 한다고 안타까워 하겠지만 대럴의 고민에 그쪽은 포함되지 않았음. 그는 너드였음
홀로그램에 쳐박혀 살면서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 일주일에 한 번 필름 영화를 보러가는 세간에서 말하는 오타쿠임.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단어였지만 고전게임을 즐기며 100년 전 미디어물이 빠져 사는 그에겐 잘 어울렸음. 대럴이 하는 고민은 좀 더 원초적인 욕망에 집중되어 있었음
해왕성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에서 영양밸런스를 채운 건강식을 먹으며 버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착잡해짐. 기호식은 고작해야 루트비어와 감자칩 정도일텐데 25년을 버티긴 힘들거라 생각함. 새벽에 일어나 뭐라도 먹을라치면 삑삑거리면서 고혈압이니 뭐니 조언해올 인공지능을 생각하면 끔찍함
그래도 확실히 좋은 기회였음. 다녀오면 명성과 더불어 노후 보장임. 우주선은 1년 뒤에 출발함. 언제나처럼 죽은 눈으로 각종 동의 박스에 체크하던 대럴은 누군가의 방문을 받았음. 연락없이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었기에 경계하며 영상을 트는데 몸짱 금발 미남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음
아무리 봐도 대럴과는 인연이 없을 법한 인물이었음
[룸메이트를 구한다고 해서 왔소!]
프로젝트 전까지 좀 쉴까 해서 일을 그만둔 참이었음. 모아둔 돈은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음. 그게 하루도 안됐음
[좀 열어주시게!]
호탕하게 웃으며 문을 쾅쾅 두드림. 토르와 대럴의 첫만남이었음
눈에 뛰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어하는 대럴에게 소파를 차지한 금발 미남은 정반대 타입의 인간이었음. 바닥의 먼지를 빨아들이는 로봇 청소기 소음 정도가 대럴이 견딜 수 있은 목소리 데시벨이었는데 토르로 인해 한계치가 깨졌음
아스가디언이라 자신을 소개한 토르는 손에 든 봉투에서 타코를 꺼내 대럴에게 하나 주었음. 아스가르드는 신기한 나라였음. 우주를 탐사하고 행성을 테라포밍해 거주지로 만드는 대단한 시대에 그곳 거주민들은 고대와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칼을 휘두르며 마법을 쓰는 불가사의한 종족들이었음
정식으로 교류가 시작된지 몇 십년은 넘었어도 아직 베일에 싸인 신비한 존재들
"왜 안먹지? 타코 싫어하나?"
허락도 안했는데 소파에 드러누워 타코를 베어무는 외계인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봄. 대럴이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니까 그는 껄껄 웃으며 공중에 뜬 홀로그램에 성의없이 대충 사인했음
당황하느라 그냥 넘어갔다가 토르가 과거 어벤저스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흥분함. 앞서 말했다시피 오타쿠인 대럴은 역사책에서나 실릴 법한 짧막한 영웅담도 세세한 내막을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렸음
"당신이 그 토르라고요? 맨해튼 사태의 히어로?"
묻자 긍정이 돌아옴
"문제라도 있나?"
"설마요. 그저 좀 놀라운 경험이라... 실례지만 사인 좀... 아 아니다 룸메이트 계약서에 하신걸로 만족할게요."
처음엔 떫더름한 반응이더니 혼자 막 흥분하고 난리임. 토르는 허허 웃고 말았음. 대럴에게 지낼 방을 안내 받고 간단한 규칙(쓰레기 처리나 소음 문제 등)을 주지받았다가 한귀로 흘림
대럴은 왜 지구에 왔는지 물었고 토르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함. 대럴이 아무리 사회성이 부족한 너드라해도 거기서 더 파고드는 건 뭔가 아니다 싶었음. 토르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감. 빈 타코 봉지가 소파 밑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님. 불길했음
그렇게 둘의 동거가 시작됨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자 토르를 향한 환상이 완벽하게 깨져버림. 이 덩치 큰 외계인은 정말로 안하무인이었음. 좋고 싫은 것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 있었고 남이 뭐라든 곧이 곧대로 이행함. 하루종일 소파에 드러누워 위성방송이나 보며 껄껄 웃는 백수같은 모습만 보여줌
오타쿠인 대럴이 밖에 안나가냐고 물을 지경이었음
"대럴 물 좀 주게."
"배고픈데 식사안하나?"
"껄껄 저것 좀 보게나 우스워 죽겠군!"
"심심한데 놀아주게나!"
그래서 보드게임을 했는데 재미없다며(못이기니까) 확 엎어버리질 않나, 룸메이트가 아니라 하인이 된 기분을 맛보아야 했음
그래도 돈은 잘 챙겨줘서 불만은 금세 가라앉았음(평소에 베알도 없다는 소리 많이 들음) 가끔 어딘가 나갔다가 술에 꽐라가 되어 돌아오곤 했는데 껄껄 웃으며 술주정을 부리다가 침대에 늘어져서 하루종일 잠만 잤음. 그럴때 방문앞을 지나가면 뭐라 중얼중얼 잠꼬대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음
오래전에 사망한 미국의 영웅 캡틴 아메리카와 더 먼 옛날 지구를 박살낼 뻔 한 미친 악당. 두 상반된 존재의 이름이 당시의 영웅의 입에서 함께 나오니 과거 꿈이라도 꾸는가 싶어 오타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음. 물론 대놓고 물어볼만큼 대범한 성격이 아니라 상상하는 정도로 끝냈음
탐사선 탑승과 관련된 수속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목이 말라 카페에 앉아 있는데 토르가 손을 흔들며 "대럴!" 성큼성큼 걸어옴. 노상 카페테리어에 앉아있던 대럴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음. 그러거나 말거나 토르는 껄껄 웃으며 손에 쥔 과일봉투를 테이블에 툭 올려놓고 맞은편에 앉았음
"웬일로 나왔군! 집에만 쳐박혀 있더니."
"토르에게 그런 말 듣고싶지 않네요.. 그러는 당신은 일주일만에 첫 외출이잖아요.. 전 그래도 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나온단 말입니다."
대럴이 중얼거리자 토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근엄하게 노려봄
"그렇게 봐도 소파에 뒹굴고 있던 과거는 안변해요..."
매사 힘빠진 것 같은 자신없는 목소리는 변함없었지만 꼬박꼬박 대꾸함. 원래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성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몸짱외계인 앞에선 막 터져나옴. 토르는 커피를 한 잔 시켰고 막 일어나려던 대럴은 얼떨결에 붙잡힘
"좋아한다던 아가씨가 맞나?"
몸을 슥 숙이더니 길너머를 보며 물어봄
대럴은 무심결에 시선을 따라가다가 화들짝 놀람
"어 어 어 어 어떻게."
토르의 눈은 카페 맞은 편 식물원을 향하고 있었음
"며칠전에 술에 취해서 엉엉 울면서 말해줬네."
토르가 어깨를 으쓱하자 대럴은 얼굴이 화끈해짐
"고백하지 그래."
"하지만 전.."
목소리가 꺼져가는 촛불처럼 사그라듦
어깨를 늘어트리고 시선을 아예 돌려버림.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토르는 입에 꾹 힘을 주더니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음
"지나치게 자신감이 없군." 대럴은 한숨을 푹 쉼. "당신처럼 잘나지 못해서요.." 그 말에 토르는 껄껄 웃었음. "그건 맞아. 난 잘생겼지." 듣는 이의 미간에 주름이 더해짐
"자네는 못생겼고 뚱뚱하고 길을 걸어도 시선은 땅만 바라보지 않는가. 안타까운 일이야."
기가 막혀서 노려보자 토르는 환하게 미소지음.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난 존재를 보고 있자니 절로 울상이 지어짐
"뭐.. 1년 뒤면 지구와도 이별이고.."
"고백하기가 무서워서 지구를 떠난다고? 저런.."
"보통 전후관계가 반대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토르는 말없이 커피를 들이켰음. 대럴은 기분이 이상해졌음. '자넨 도망치는거야.' 입을 열진 않았지만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음. 어쩐지 민망해져서 자신감없이 중얼거렸음
"이렇게 재미없는 날 누가 좋아해주겠어요.."
토르는 눈을 가늘게 떴음
"자네같은 사람은 별로야."
고개를 절로 숙여짐
"노력도 안하고 자기 탓만 하는건 꼴사납지."
냉정한 평가였지만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었음. 고개가 점점 더 수그러듬. 그때 갑자기 어깨를 덥썩 잡아옴. 깜짝 놀란 몸이 튀어 올랐음
"살빼고 운동하게!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내가 도와주겠네!"
고개를 들자 토르가 눈을 빛내며 팔뚝을 드러내 포즈를 취하고 있음. 근육이야말로 지식, 지식이 근육이므로 똑똑하다느니 요상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맨날 집에만 쳐박혀 있지 말고 건설적으로 살라는 조언을 함. 못미더웠지만 눈에 보이는 부분은 거짓말을 안했음. 토르는 객관적으로 봐도 완벽했음
탄탄한 근육에 잘생긴 외모, 큰 키와 부드러운 저음까지. 주민들과도 이틀만에 안면을 트는 등 사교성도 뛰어났기에 내향적인 대럴과는 정반대인 부분이었음. 그런 남자가 도와줄테니 걱정 말라고 함. 완벽한 몸과 멘탈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비법이라도 공유해주려는건가 싶어 기대감이 피어올랐음
"나도 당신처럼 될 수 있을까요?" 대럴이 묻자 "그건 안될거야. 나처럼 잘생기고 힘도 세지긴 힘들어." 라고 대답이 돌아옴. 놀리고 있는건가 싶어서 표정을 굳히고 다시 물어봄
"어떻게 몸을 유지하나요? 특수한 운동이라도 해요?"
그러자 활짝웃으며
"하하! 운동같은 건 하지 않는다네."
자긴 가만히 있어도 몸이 좋다고 함. 놀리는게 맞구나 분통이 터지려는 찰나
"하지만 옛 연인이 운동하는 모습은 많이 봤어. 도와줄 수 있을거야."
웃으며 대답함. 대럴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음
당당한 확언과 달리 토르는 현실적으로 전혀 도움이 안 됐음
오래 전 지식에 머물러 있었고 정신적 부분에서의 조언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음. 비싸고 부작용도 검증 안 된 다이어트약을 먹는게 낫겠다 싶음. 왜 안 돼? 그런 생각 하지말게! 음침하게 굴지말고 앞을 보게! 등등 전형적인 '나는 되는데 너는 왜 안 돼?' 같이 남을 가르치지 못하는 타입이었음
대럴은 한숨을 푹 쉬며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운동법과 식사량 조절을 시작했음. 술과 간식을 끊고 병원에 내방해 상담도 하고 약도 받아옴.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렇게 노력할 필요가 없었음. 대럴은 10개월 뒤면 해왕성으로 떠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식물원 아가씨와의 로맨스따위 꿈에서나 볼까
그럼에도 열심히 운동하는 것은 요상한 외계인의 부추김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임. '자넨 할 수 있어!' 밑도 끝도 없이 대충 내뱉는 말 같았지만 묘하게 신뢰가 갔음. 또 그가 가르쳐 준 구식 운동법(인터벌 트레이닝 등)이 과거 캡틴 스티브 로저스가 단련했던 방식이라니까 너드의 피가 끓는 것이다
토르의 지구 방문 목적이 '친구와의 약속' 이라고 했는데 대럴은 친구가 누군지 알 것 같았음. 몇 달뒤면 세기 전 인물인 토니 스타크가 깨어남. 스타크 인더스트리는 우주로 손을 뻗어가며 여전히 승승장구중임. 대럴은 토르가 어벤저스 동료였던 아이언맨을 보려고 맨해튼에 온 것이라 추측했음
토르와 함께 공원을 달리던 대럴은 시간을 보고 멈췄음
"돌아가야 겠어요."
토르도 공원 중앙에 떠있는 스크린을 보고 고개를 끄덕임.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음. 산책로는 낮처럼 밝았지만 사람들은 많이 줄어듬. 길 끝,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부분에 누군가의 발이 보였음
검은 정장 바짓단과 마찬가지로 검은 구두. 발만 보이던 인영은 곧 제 모습을 드러냈음. 토르와 대럴은 자리에 멈췄음. 남자가 산책로 끝을 막고 있었음. 시선은 토르를 향함. 대럴은 목에 걸친 타올로 얼굴을 닦으며 흘끗 눈치를 봄. 토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음
"왜 멈추나?"
"당신에게 볼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토르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대럴의 귓가에 소근거렸음
"자네 친구 아닌가?"
그러자 남자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음.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주먹을 꽉 쥐고 외쳤음
"설마 날 잊었단 소리는 아니겠지?"
낮고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옴. 토르는 고개를 갸웃거렸음
"미안하지만 정말 기억에 없군. 어디서 만났지? 자네는 누군가."
골똘히 고민하는지 손끝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미간을 찌푸림. 정말로 모르는 눈치였음. 남자는 이제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어깨를 심하게 떨었음
"어떻게..."
이를 바득바득 갈며 한 발자국씩 내딛는데 엄청나게 화가 나 있음. 땅이 패이는 것 같음.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음.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도 맨해튼에서 살인사건을 일으키려는 바보는 없을 것 같지만 토르가 아스가디언이라면 그를 아는 척하는 저 남자 역시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있었음
외계인에 의한 범죄는 종종 보고되는터라 대럴은 긴장한 채로 인공지능을 호출할 준비를 했음
"네가 어떻게 나를..."
씹듯이 분노하며 다가온 남자가 토르의 트레이닝복 멱살을 낚아챘음. 그러자
"잡았다 이 녀석."
토르가 씨익 웃더니 남자의 목을 잡고 주먹을 휘둘렀음. 빡- 엄청난 소리가 났음
대럴은 갑자기 발생한 사태에 상황파악을 못하고 제자리에 못박혀 섬
"어떻게 널 잊겠나. 로키."
목을 쥔 채로 토르가 다정하게 속삭였음. 남자, 로키는 고개가 돌아간 채로 허허헛- 짧게 끊어 웃었음
"지금.. 날 속인거? 형이?"
믿기지가 않는지 손을 들어 맞은 뺨을 주무르며 중얼거렸음
정말 능청스러운 연기였음. 전에는 뭘해도 티가 났었는데 얼마나 연습을 했길래 이토록 자연스러워졌을까 생각하니 로키의 어안이 벙벙해짐. 대럴은 '로키' 이름을 되내였음. 과거 맨해튼 침략 사태를 일으켰던 외계인이 아닌지 고민하다가 그가 맞다면 쉴드에 신고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식이 흘렀음
그러니 로키는 '브라더' 라고 불렀고 주먹을 꽉 쥐고 다음 타격을 장전중인 토르 역시 그 호칭에 신경쓰지 않는 눈치임. 머리가 복잡했음. 토르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하고 괜찮다고 진정시킴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 집안 사정이야."
대럴은 집안 사정이라해도 문제라는 반문을 하고 싶었음
형제한테 죽일 기세로 주먹을 휘두르는데? 하지만 맨해튼 웜홀 사태의 주범. 줏대가 이랬다 저랬다 정신이 없음. 결국 대럴은 포기하고 토르가 하는대로 내버려 두었음
"다시 만나면 꼭 때려주겠다고 다짐했었지."
토르가 말하자 로키는 뺨을 주무르던 손을 내려 제 목을 쥔 토르의 손목을 꽉 잡았음
"내가 그립지 않았어?"
주먹에 힘을 실었기에 꽤 아플텐데도 큰 내색이 없이 물어봄. 토르는 잠깐 굳은 채로 로키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음
"그리웠다."
그러자 로키가 환하게 웃었음. 목이 졸려 핏기가 가신 얼굴이 창백했는데도 한껏 행복하다는 모습이었음
"다행이야. 또 멍청한 대답을 했으면 저 인간 목을 날렸을테니."
한손을 들어 대럴을 가르키는데 단도가 쥐여 있었음. 대럴은 등줄기가 오싹해졌음. 토르는 한숨을 쉬며 목을 놓아주었음. 켁켁 기침을 하던 로키는 두손을 위로 올리며 웃었음
"형을 계속 지켜봐왔어."
조금 소름끼치는 소리를 함
"그토록 괴로워 했으면서 여전히 인간을 위해 힘 쓰더군."
토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팔짱을 꼈음. 마치 그게 뭐? 라고 말하는 것 같았음. 대럴은 로키가 화를 낼거라고 생각했음. 처음보는 사이였지만 그가 토르를 향해 뿜어대는 감정은 둔한 너드의 눈으로도 상당히 집착적이고 위험하게 느껴졌음
"로저스가 죽었을 땐 자살이라도 할 듯 보였는데."
로키가 혀끝으로 입술을 핥으며 눈을 빛냈음. 사냥감을 보는 뱀의 눈빛이었음
"그런 짓은 하지 않아. 스티브는 편하게 갔고 나 역시 만족한다."
토르는 심드렁하게 중얼거렸음. 어떠한 감정의 동요를 예상했던 로키는 얼굴을 약간 기울였음
"정말? 지금 네 눈앞에서 로저스로 변해도 괜찮다는 건가."
"그때도 배려랍시고 멋대로 휘두르더니.. 끝까지 이러고 싶나?"
넌더리가 난다는 얼굴이었음. 로키는 어깨를 움찔 떨었음. 토르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음
"변해야하지 않겠어? 언제까지고 그들의 죽음을 곱씹으며 절망할 순 없지."
'형에게서 나온 말이 맞아?' 로키는 눈을 가늘게 뜸.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대럴은 흥미진진한 연극을 보는 심정임. 방금 단검에 맞아 죽을뻔한 것도 잊은 채 토르의 뒤에 숨어 이들의 치정(?)을 지켜봄
"그렇게 사랑하더니. 너무 냉정한걸."
로키가 단검을 공중에 휘릭 던졌다가 받으며 비웃었음
"사랑했다."
"과거형이네. 다 잊었다 이건가. 세상에..! 로저스가 불쌍할 지경이라니."
로키가 혀를 찼음
"내 의도를 파악하려고 그의 편을 들어주다니 재미있구나."
토르는 껄껄 웃자 로키는 속으로 발끈했음
"스티브는 마지막 순간에 내 행복을 빌어주었지. 나는 거기에 응답할 생각이다."
"정말 재미없게 살더군."
로키는 지루하게 말을이었음. 스티브가 죽기 전 그에게 어떤 징조가 보일때부터 몸을 숨기고 지켜봤음. 형을 사랑하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음. 정말 지겹게 반복되는 하루였음. 고작 10아르도 안되는 좁아터진 보금자리에서 그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 잘도 버텼음
낚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나무를 두드리거나 둘의 삶은 고작 그정도였음
"놈의 죽음으로 형이 해방될거라 생각했어."
로키는 씁쓸하게 웃었음. 한참을 죽은 노인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부짖다가 다시 고개를 든 순간부터 그는 전혀 눈물을 보이지 않았음. 로저스의 장례식때도 마찬가지였음
그러나 미련한 토르는 계속 사람들과 엮였음. 사고현장부터 범죄현장까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했음. 로키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계속 지켜보았음. 밤만 되면 호텔방에 틀어박혀 외로워하는 그의 등을 보고 있자니 만족스러웠음. 형의 행복을 바랐던 주제에 잘도 그랬음
둥글게 말린 몸뚱이를 끌어안아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쓸데없이 뒤틀린 욕망이 번번히 가로막았음. 피폐해진 토르가 푸른 눈을 일그러트리며 자신을 찾는 모습에서 쾌감을 느꼈음. '나 또한 그렇게 형을 갈구했어. 그때의 내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봐.' 꼬인 마음으로 계속 지켜 보았음
그러던 어느 날, 토르는 아스가르드로 돌아갔음. 따라가자니 한 번 탈출했던 탓에 경계가 심해져서 들킬 위험이 있었음. 그렇게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무슨 수를 썼는지 토르는 로키의 시야에서 사라짐
"시프에게 네 수작질에서 벗어날 마법을 얻어왔지."
"하여간 그녀는 취향이 고약하다니깐."
토니 스타크가 냉동에서 깨어날 시간이 다가오자 맨해튼에서 흔적을 뒤졌음. 그리고 대럴의 집에서 토르를 발견함. 전과 달리 활기차게 웃고 있었음. 넉살 좋게 뒹구는 모습에 약간 빈정이 상한 상태로 언제쯤 모습을 드러낼지 고민했었음. 한참을 이어진 이야기에 대럴이 약간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음
"당신 동생 대단한 스토커네요.."
로키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음
"생긴 것과 달리 겁이 없군."
던지고 받던 단검 끝이 예리하게 빛났음. 불온한 공기를 감지한 토르가 단호하게 손을 저었음
"그만, 이 친구에게 해를 가했다간 참지 않겠다."
"아아 무서워라. 하지만 형은 날 사랑하잖아?"
"개미 한마리 죽였다고 벌이라도 줄거야?"
단검을 흔들며 빈정거리자 토르가 한숨을 푹 쉬었음.
"잘도 사랑을 더럽히는구나."
그 말에 뒤에 있던 대럴이 툭 끼어들었음.
"그거 옛날 노래 제목인데.."
로키는 고개를 저으며 단검을 갈무리했음.
"멍청한 대화는 그만하지."
그러자 토르가 껄껄 웃었음
길게 숨을 들이쉬며 두팔을 벌리더니 손끝을 까닥였음
"오랜만이군."
로키는 꿍얼꿍얼 불만에 찬 말을 뭐라고 내뱉으며 품으로 안겨들었음. 갑작스런 전개에 대럴만 어안이 벙벙함
"그... 사이에 생략된 이야기가 좀 많죠? 도무지 못 따라가겠어요.."
늘어지는 목소리가 조용한 공원에 퍼져나감
셋은 대럴의 집으로 돌아감. 일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갔지만 룸메이트 규칙 제4조 '다른 사람을 허락없이 데려오지 말 것'을 들먹이며 내치자니 그것도 우스운 일이었음. 검은 머리의 사악한 남자에게 계약서를 보여주면 '사람'이 아니라 아스가디언이니 괜찮지 않냐고 꼬투리를 잡을 것 같았음
로키는 대럴의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좁군." 한마디를 꺼냈고 토르는 "그래도 아늑하지 않나? 필요한 게 있으면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서 좋네." 라고 못을 박았음. 집주인 대럴은 이 형제들이 자신을 놀려 죽이려는건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했음
간단한 식사-물론 로키의 나불거리는 평가로 인해 간단하게 느껴지지 않았음-를 마치고 대럴은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갔음. 토르 또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로키에게 빈 방을 가리키자
"지금 장난해? 나더러 저딴 먼지투성이 방에서 자라고?"
라고 투덜거리는 통에 제 방으로 잡아 끌었음
로키는 마법으로 차림새를 간편하게 하며 토르가 트레이닝복을 벗는 모습을 지켜봄
“여전히 다 벗고 자네."
로키가 입꼬리를 올려 웃자 토르는 인상을 팍 썼음. 또 뭔 변태같은 소리를 하려고 그러냐는 듯 짜증내는 얼굴이었음. 토르는 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로 침대에 올랐음
한 켠을 비워둔 채 쭉 뻗은 다리를 꼬더니 양손을 뒤통수에 괴고 천장을 바라봄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질문에 답하며 로키는 어깨를 으쓱하며 침대에 올라 토르의 옆으로 파고들었음
“우주 여기저기 돌아 다녔어. 딱히 재미는 없더군.”
로키는 토르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주물거렸음
가슴을 주물거리던 손을 내려 탄탄한 복근을 쓰다듬었음
“그만.”
단호하게 거절하자 로키가 불만을 터트렸음
“개미 때문에 그래? 소리 안나가도록 할 수 있어.”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어오 토르는 영 내키지 않는 눈치였음. 결국 로키는 입을 떼고 인형이라도 껴안듯 손을 두르는 것으로 타협함
토르는 눈을 내리깔고 로키를 불렀음. 목소리에 힘이 빠졌음
“내가 이들에게 정을 준 것이 잘못일까. 아니면 죽음에 큰 의미를 부여해 과도하게 슬퍼했던게 문제였을까.”
토르의 말에 로키는 고민할 것도 없이 즉답함
“둘 다. 형은 괴짜지. 아스가디언 그 누구도 너처럼 집착 안해”
“깨달은 게 있어.”
로키가 고개를 슬쩍 들어 형의 얼굴을 보았음.
“미드가르드를 떠나볼까 한다."
로키는 눈을 크게 떴음.
“인간의 곁을 떠나겠다고?”
토르는 고개를 끄덕였음.
“그들을 버리는 거야?”
이어진 질문에 는 고개를 저었음.
“애초에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버릴 수도 없지.”
토르가 없어도 의연한 삶을 마땅히 이어갔을 존재들임. 먼 옛날 제인포스터가 그랬듯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겨 제 할 일을 하며 살다 갔을 것임. 물론 마리아나 스티브의 마지막을 지킨 것에 의미가 없지는 않았음. 그들은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편안하게 갔음
그러나 불멸하는 존재로 인해 마지막이 불안했을수도 있음. 사랑스럽고 상냥한 이들은 본인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홀로 남겨질 토르를 걱정했음.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불멸자를 향한 당부의 말을 꼭 한마디 얹었지. 그 걱정 한톨이 못내 마음에 걸렸음
“시야를 넓혀 볼까.”
토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 로키가 킬킬 웃으며 형의 어깨에 볼을 비볐음. “돌아다니다가 관심가는 종족이 생기면 갈아타려고?” 토르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음
“네가 옆에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느냐.”
“제법이네. 예쁜 말만 골라 하잖아.”
우주로 가자- 토르는 다짐처럼 말하며 눈을 감았음
“내가... 뭘 보고 있는거지?”
방수포를 뒤집어 쓴 토니가 몸을 떨며 말했음. 토르는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두손을 내밀어 진정하란 제스처를 취했음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 로키는 이제 예전과 다르다.”
“맞아. 예전 그대로였다면 너는 깨어나기도 전에 목에 칼이 박혔을테니까.”
“로키!”
“그만그만 머리 울리니까 둘 다 조용히 좀 해.”
토니가 헉헉거리며 드문드문 말했음. 흰머리 가득한 그는 발달된 미래기술 덕에 노년의 나이에도 큰 위기 없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음. 페퍼와의 사이에서 본 후손의 후손이 옆에 서서 반겨줌
“토니 스타크 주니어라니 기분이 이상하네.”
“변함이 없구먼. 머리도 여전하고.”
“맘에 안드나?”
“자르라면 자를텐가?”
“싫네.”
“아쉽군. 연구해보면 엄청난 발모제라도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부작용 없는 발모제 개발된지 80년이 지났어요.”
“어이쿠 그렇습니까 주니어 양반. 150년만 빨리 떴어도 콜슨한테 선물로 주는건데. 아쉽군.”
토르가 건네준 따뜻한 물을 마시며 토니가 물었음
“다들 잘 갔나? 노친네는?”
토르가 편안한 마지막이었다고 대답함
“그 꼴을 못 봐서 다행이군. 질질 짜면서 슬퍼하는건 영 어색해.”
느릿하게 일어난 토니는 맨해튼 전망 좋은 빌딩 팬트하우스에서 내려다본 미래 풍경에 입꼬리를 올렸음
상상했던 괜찮은 미래 A- 만족할만한 발전이었음. 토니는 주니어에게 받은 패드를 통해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훑었음. 토르는 옆에서서 도시의 전경을 바라봄. 로키는 멀찍이 떨어진 벽에 등을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음. 패드를 넘기던 토니는 어떤 부분에서 손가락을 멈췄음. 페퍼의 무덤임
“쓸데없는 내 고집에 어울려 주던 여자는 페퍼정도였지.”
“그녀도 편안하게 갔네.”
토르가 말을 얹자 토니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음
“오래 살면 어때? 역시 지루하려나.”
토르는 고개를 저었음
“지루할 틈이 없어.”
흠- 토니는 턱을 쓰다듬었음. 아이언맨은 사라졌고 히어로의 존재도 희미해짐
대신 히어로의 존재감이 희미해질 만큼 안정적인 세상이 되었음. 우주를 개척하기 시작하며 점점 벌어지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세계가 힘을 모아 통합정부를 만들고 정책과 일자리를 늘렸음. 특정 기업으로 부가 몰리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 효과를 보기도 했음
아이러니하게도 구시대적 자본주의의 상징인 토니 스타크는 여전히 인기였음
“기자들이 내 사진 찍겠다고 난리날 줄 알았는데.”
토니가 말하자 로키가 비웃었음
“이미 그러고 있어. 네 눈에만 안보일 뿐.”
빌딩은 특수소재로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았음. 사진 역시 위성으로 촬영하는 수준이었음
빌딩을 향하고 있을 미디어매체가 몇 개나 될지 짐작하기 힘듬
“내가 구닥다리 발언을 했나. 이거 노친네 심정이 이해가 가는데.“
토르는 문득 궁금해졌음. 토니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려움. 그는 자의로 100년의 시간을 건너띄었음. 토르와 스티브는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토니는 달랐음
“후회하지 않나?”
토르가 묻자 토니가 고개를 올려다봄. “뭘.” 토르는 머리를 긁적였음. 조용한 방안에 로키가 신발 뒤축을 벽에 톡톡 두드리는 소리만 울림
“아는 이 없는 곳에 홀로 남겨지면...”
토니가 코끝을 찡그리며 인상을 썼음
“아는 얼굴이 왜 없어 네가 있잖아.”
머뭇거리던 토르는 겨우 말을 꺼냈음
“난 곧 떠날거야.”
그러자 토니가 어깨를 으쓱함
“알았어. 어쩌다 들르면 무덤이나 보고 가던지. 페퍼 옆에 있을테니 찾기는 쉽겠지.”
태도가 담담했음. 토르가 말이 없자 토니가 지겨운 표정으로 투덜거렸음
“이봐, 전부터 생각했는데 넌 너무 오만해.“
”사람이 죽든 살든 그냥 편하게 생각해. 좀 쉽게 살아.”
토르는 허허 웃었음
”그러려고 하네.”
“난 후회하지 않아. 눈 뜨니까 전쟁이라도 터져서 멸망하기 직전이라면 또 몰라... 뭐 만족했어.”
토니가 기지개를 쭉 폈음. 뚝뚝 소리가 나며 몸이 휘청거리자 토르가 부축해주려고 손을 뻗었음
“됐네. 혼자 설 수 있어.”
“스티브와 똑같이 구는군.”
“노친네도 혼자 가능했나보지.”
토르는 손을 거뒀음
“토르.”
토니가 홀로그램에 시선을 고정한채 말을 검
“말하게.”
“모두가 과거를 지우지는 못해. 나조차도... 그러니 괜히 집착하지 마. 영 못잊겠거든 좋은 기억이라던지 얼마든지 많잖아?”
토르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동의했음. 둘은 창밖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음. 과거의 기분 좋은 여러 추억을 들추며 장난스럽게 웃었음. 이미 죽어 없어졌으니 욕할때 눈치 보일 일도 없다며 시니컬한 조크를 꺼내는 토니에게 토르도 네가 죽으면 무덤에서 똑같이 웃어주겠다고 대답함
“다 좋은데 꽃은 사오지마. 치즈버거나 몇 개 놓아주던지. 그것도 아니면 슈와마에 칠리소스..”
“할라페뇨 많이, 새우.”
말을 끊고 이어가듯 답하자 토니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허 웃었음. 몇 년 전인데 그걸 기억하고 있냐고 묻자 토르가 어깨를 으쓱함
“너희들이 좋아하는 건 다 안다.”
냉정한 토니의 얼굴이 확 뜨거워질 만큼 퍼스널 스페이스를 깨고 들어오는 말이었음. 멀리서 로키가 나직하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옴
“하여간 사람 부끄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까.”
민망해진 토니는 고개를 숙여 역사파악에 정신을 집중했음
“이게 뭐지? 해왕성?”
토니가 중얼거렸음. 토르가 고개를 내려 패드를 보니 눈에 익숙한 마크가 떠있음
“대럴이 참가한다던 그건가.”
“대럴?”
“내 룸메이트.”
“불쌍한 놈이군. 아 문제는 그게 아니라.. 좀 이상한걸 이 프로젝트.”
토니는 느릿하게 말을 이으며 패드를 확대해 자세한 내용을 파악함
처음에는 조작법이 어색해 몇 번 버벅이기도 했지만 굴지의 두뇌는 나이가 들어도 쉽기 녹슬지 않는 것이다. 그는 해왕성 궤도를 돌며 행성을 테라포밍하기 위한 계획안을 하나하나 공중에 띄우며 세부적인 목적과 결론도출 사이의 기묘한 점들을 꼬집었음
“대기조성에 군은 왜 필요하지?”
토르가 확대된 화면을 살폈음. 로키도 슬그머니 둘 옆으로 다가와 어깨너머로 홀로그램을 봄
“허브 내부 감압수치도 너무 낮게 잡혀있어. 이건 엉터리야.”
“혹시 자네가 잠든동안 과학이 발전해서.”
“놉! 그런 일은 없어. 이 수치가 들어 맞는다는 건 노화를 막는 기술이 개발된 것과 다를바 없다고.”
정부 프로젝트였고 테라포밍이 목적인 주제에 식물학자 수가 8명밖에 안되는 것도 이해가 안갔음. 토니는 턱을 누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음. 옆에서 토르가 주니어를 불러서 확인해 보자고 말했더니 조용히 고개를 저었음. 안타깝지만 후손이 이 수상한 프로젝트에 가담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음
어쩌면 오베디아처럼 제 뒤통수를 때릴지도 모른다고 투덜거렸음. 그러자 로키가 비꼬았음
“흘끗 보아도 파악 가능한 정보를 망설임도 없이 너에게 넘겼는데 잘도 그렇겠군. 그냥 멍청해서 몰랐다던지?”
“음 역시 악당이라 그런가 그쪽 머리가 잘 돌아가네. 그래도 내 후손을 욕하는 건 자제해줘.”
“확실히 로키는 비열한 수법을 잘쓰지.”
“너희들 잠깐 날 좀 보호해줘야겠어.”
“토르는 그렇다고 쳐도 내가 왜?”
“개과천선 했다며? 정의를 위해 총알받이가 되어봐.”
로키는 뻔뻔하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음.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주변에 금빛 막이 생김
토니는 해리포터의 신비한 마법을 구경하며 호출기를 눌러 주니어를 불렀음. 근처에 있었는지 생각보다 빨리 들어온 그의 눈앞에 해왕성 테라포밍 프로젝트의 세부적인 내용을 공중에 띄웠음. 토니 스타크 주니어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음. 그는 전혀 몰랐다고 대답했음
토니가 고심하는 사이 로키가 나서서 그의 이마를 턱 짚더니 "진실이군." 확인해줌. 토니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음
"악당보다 멍청이가 낫지."
로키가 비웃자 토르가 입조심 좀 하라며 로키의 등허리를 찔렀음. 그러나 토니는 로키의 말에 동의했음
"멍청한 후손에게 가르쳐 줄 것이 잔뜩있겠군."
"이 짓도 오랜만이네."
로키가 앞장서서 걸었음. 토르는 그의 뒤를 따르며 탐탁지 않는 목소리를 냈음
"나쁜 기억이 떠오르는군."
형이 말하는 나쁜 기억이 뭔지 잘 알 것 같았음. 기분이 유쾌해져서 발걸음이 가벼워짐. 동생의 상태를 눈치챈 토르는 눈을 흘기며 단단히 일렀음
"출발 전에도 일렀지만 죽이는 건 안 돼."
로키는 네네 건성으로 대답함. 복도 끝에 문이 보였음. 군인 둘이 절도있는 자세로 경계를 서고 있음
"코드!"
"코드!"
한몸이라도 되는 것처럼 동시에 외쳤음. 로키의 손이 허공을 짚자 군인의 눈 앞에 작고 투명한 주머니가 팡 소리를 내며 터짐
그들은 끙 앓으며 이마를 짚고 흐느적거리더니 벽에 등을 대고 스르르 주저앉음. 깊은 잠이 빠졌다는 것을 확인한 토르는 로키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며 앞장섰음. 쾅- 엄청난 소리가 났고 두꺼운 강화벽이 터져나감. 회의중이었던 군인들이 깜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음
"그냥 앉아 있어."
로키가 느긋하게 손을 움직였음. 군복 차림의 남자들이 강제로 의자에 털썩 주저 앉혀짐.
“울트론 같은 놈인가.”
토르의 입에서 고릿짝 유물이 나오자 로키가 양손바닥을 위로 향하며 따분한 표정을 지었음
“몇 년이 지났는데 상상력이 빈곤하잖아.”
“얼마나 바뀌었든 이거면 된다.”
주먹을 쥐어 올리자 로키가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음
“맞는 말이네. 마음껏해.”
좁은 공간이라 무기사용이 제한된 인공생명체는 인간과 구별이 안되는 움직임으로 토르에게 달려들었음. 팔목을 잡는 힘이 억셌음.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뼈가 으스러졌을 만큼의 악력임
목적이 제압이 아니라 살인임을 알았음. 손목이 잡힌 손을 살짝 틀어 역으로 기계의 팔뚝을 잡았음. 울트론과 달리 말랑하고 부드러운게 영락없는 인간의 피부임. 기계를 이루고 있는 인공 뼈대가 기묘한 방향으로 꺾였음. 손이 가슴팍의 인공 피부를 뚫자 끽기긱 불쾌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짐
토르는 손을 흔들어 기분 나쁜 하얀 액체를 털었음
“나는 토르 오딘슨이오.”
경악하는 자들에게 이름을 밝히고 원형 테이블로 성큼성큼 다가갔음. 패드를 꺼내 툭툭 조작하자 허공에 스크린이 떠올랐음. 로키는 인간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았음
“책임자는 너인가.”
로키가 앞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를 가리킴. 그는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마법으로 어깨가 단단히 눌려 끙끙 앓는 소리만 냈음
“전쟁을 바라나?”
군에서 개발한 프로토타입 살인기계를 10초만에 박살낸 남자 치고는 침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음
“무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
“전쟁을 바라냐고 물었소.”
지겹게 반복되는 심문의 과정을 피하고자 탁자를 내리쳤음. 특수소재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파스스 박살나 뒹굴었음. 의자에 앉은 인간들이 히익 숨을 들이키는 소리를 냈음
“나는 인간을 아주 좋아해.”
토르가 해사한 미소를 지었음
수염이 성성하고 덩치 큰 남자에게 붙일만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었음
“그렇지만 속이 검은 놈들은 정말 싫다네.”
박살난 테이블 사이로 성큼 걸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남자의 앞에 섰음. 토르는 그의 가슴에 주르륵 달린 별과 훈장을 손가락으로 주르륵 훑었음
동전모양 뱃지를 툭 떼서 앞뒤를 살펴봄
“시대가 달라져도 변함없이 나타나는 버러지같은 족속들.”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음. 로키는 오랜만에 보는 형의 화난 모습에 온 몸이 오싹해졌음
“싹 죽여버리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그건 안되겠군.”
억압된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음
“그래도 쉽게 편해질 순 없지. 안그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자가 끄아악 고상하지 못한 비명을 질렀음. 동그란 훈장이 군복을 뚫고 쇄골 위를 파고들었음
”이런 걸론 죽지 않아. 경험이 많으니 걱정 말게”
날카롭게 살을 파고드는 소리와 뒤따르는 고통의 외침이 방안을 가득 채웠음
다들 창백하게 질려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음. 비명소리가 터질때마다 의자에 고정된 이들의 어깨도 함께 튀었음
“다들 왜 그래? 요즘 어디 가서 이런 걸 볼 수 있겠어? 돈 주고도 구경 못할 아찔한 경험이잖아.”
로키가 낄낄 웃으며 손짓하자 사람들의 얼굴이 강제로 들려 토르에게 고정되었음
“ㅁ..이런 짓을.. 하고도! 끄윽! 무사히 넘어갈거라 생각하나?!”
상체가 피로 흠뻑 젖은 군인의 외침에 토르는 허리를 굽힌 채 그의 벗겨진 머리를 쓸어주며 환하게 웃었음
“당연하지 않은가. 날 막을 자는 없어.”
세기 전 인물이었지만 아스가디언 토르 오딘슨은 천둥의 신임. 또한 여전히 건재함
한때 이들을 연구해보려고 어렵게 발견한 아스가디언에게 접선했다가 크게 혼이 난 경험이 있었음. 그 중에서도 왕족인 토르는 특별한 인물임. 이런식으로 마주할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음
“나에게는.. 군인으로서의 명예가 있다.”
”그래서 죽여달라는 건가?”
토르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손에 든 훈장을 바라봄
“피로 물든 명예를 위해 죽겠다니.”
고문으로 고통스러운 남자의 일그러진 눈에 피가 번져 휘어진 훈장이 흐릿하게 비쳤음
“나는 전쟁과 군을 싫어해. 한때 사랑했던 자도 군인이었지만... 그는 너희들과 정반대니 예외로 치겠네.”
“그는 말했네. 끝까지 방관하기만 해선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고. 전쟁을 막기 위해 군에 들어가 총을 쏘고 방패를 휘둘렀지. 그가 지킨 처절한 평화를 깨트리게 둘 성 싶은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웃었음. 다만 '방패'라는 대목은 캡틴 로저스라 불리우는 과거의 영웅을 떠올리게 만들었음
“네놈들이 하려는 짓을 알고 있다. 무기를 개발해 군을 키워 세계를 장악할 생각이겠지. 핵의 4만배라..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끝없는 혼돈의 시대를 열려는 쓰레기같은 놈들!!”
할 수 있으면 해보게- 토르는 웃었지만 속에선 분노가 들끓었음. 이들은 토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을 건드렸음. 전쟁
이념과 사상의 끝없는 대결. 이제 좀 발전해서 평화롭게 사는게 싶었는데 지치지도 않는 모양임. 시야를 지구 밖으로 옮겨서까지 공포를 위한 지배를 준비하려고 함.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었음. 토르는 냉정하게 고문을 가했고 뒤에서 팔짱을 낀 로키는 흡족하게 그 모습을 관망함
프로젝트의 진정한 목적과 세세한 계획이 담긴 파일의 위치가 튀어나왔음
"7분. 네가 명예를 지킨 시간이다."
마법이 풀리자 쓰러지는 소리가 요란함. 토르가 등을 돌렸음. 로키는 가까운 발치에 쓰러진 남자의 손등을 꽉 밟았음. 비명이 튀었지만 토르는 돌아보지 않았음. 로키는 형의 뒤를 따랐음
"완전 악당같더라."
낮게 날아가는 비행선을 올려다보던 토르가 그 말에 고개를 돌렸음
"마음에 드나?"
"최고야."
"그들을 위해서라면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어."
"난 악마쪽이 마음에 드는 걸."
킥킥 웃으며 토르의 어깨에 팔을 걸침. 둘은 한동안 인적 드문 빌딩 옥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았음.
퀸젯을 받았음. 사실 퀸젯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소재나 내구성이 완전히 달라진 우주선이었지만 토르는 그렇게 불렀음. 토니는 할 일을 찾은 듯 했음. 귀찮은 애를 떠안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크게 싫은 기색은 아니었음. 토르는 그가 목적없는 삶을 이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음
해왕성 테라포밍 프로젝트가 완전히 엎어졌음. 대럴은 울상을 지으며 휴지조각이 된 관련 서류들을 파쇄 로봇에게 집어 넣었음.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되었음. 패기롭게 사직서를 던지고 나온 직장에 연락해서 굽신거려볼까 생각함. 뉴스에선 해왕성 프로젝트의 이면에 숨겨진 무기 제작과군부에 의해 세계가 전복될 위기였다느니 신나게 떠들었음.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스타크 그룹을 주축으로 공개된 극비 디스크에는 국방부의 직인과 부정할 수 없는 치명적인 증거가 잔뜩 있었음. 쉴드는 관련자들을 체포했음. 대럴은 모든 일이 저기 외계인 둘과 관련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음
소파에 앉은 로키가 제 무릎을 베고 드러누운 토르의 금발을 쓰다듬으며 뉴스를 보는 중임. 드르렁 소리까지 내며 입을 헤 벌리고 자는 토르를 세상 다시 없을 다정한 표정을 내려 보다가
"할 말이 있나, 개미?"
대럴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냄. 대럴은 한숨을 쉬며 파쇄 로봇으로 고개를 돌렸음
"하나 있긴 하네요..."
말을 걸고 있는 대상이 사랑에 미친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겁이 나진 않았음
"뭐지?"
로키가 낮게 말하자 대럴은 한숨을 푹 쉬었음
"당신들이 온 뒤로 소파나 침대가 완전히 푹 꺼져버려요. 비싸게 주고 산건데."
로키는 이마를 짚으며 넌더리 나는 표정을 지었음
단검을 던지진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
"알아서 원상복귀 시켜주고 갈테니 멍청하게 굴지 마."
파쇄를 마친 대럴은 뒷정리를 하다가 흘끔 둘에게 눈길을 주었음. 덩치 큰 두 남자로 꽉 차 비명을 지르는 소파를 무시하고 그들을 둘러싼 안온한 분위기에 집중했음
시선이 신경쓰였는지 로키가 대럴을 쏘아봄
"거슬리게 하는 군."
낮게 깔린 위험한 목소리였지만 대럴은 어쩐지 대범해졌음
"그래도 당신이 와서 다행이네요.."
소심한 성격 탓에 말 끝은 여전히 흐려졌지만 제 할말은 꿋꿋히 한다. 로키는 눈쌀을 찌푸렸음. 무슨 뜻인지 궁금한 눈치였음
"언젠가 술에 취해서 당신 이름을 부르며 울었거든요. 이젠 그럴 일 없겠죠."
로키는 쉽게 표현하기 힘든 날것의 표정을 지었음. 한순간이었지만 대럴은 타인의 치부를 목격한 느낌에 민망한 기분이 되었음
"형은 마음고생 좀 해야해."
모진 말을 하면서도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다정했음
식물원 아가씨에게 고백한 대럴은 당연하게도 뻥 차였음. 살도 많이 빼고 전처럼 자신감 없이 땅만 보고 다니진 않았지만 여튼 타입이 아니라는 말로 거절당함. 그녀는 토르와 함께 외출하는 로키를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음. 대럴은 시무룩해하고 토르는 껄껄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으며 로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음.
오늘은 둘이 지구를 떠나는 날임. 룸메이트 계약은 아직 3개월 남아 있었기에 남은 돈을 돌려준다고 했지만 받지 않았음. 푹 꺼졌던 침대와 소파는 다시 빵빵하게 차올랐음. 스타크 타워의 옥상에서 그 유명한 토니 스타크와 주니어 스티크를 만나는 영광도 얻음
또한 스타크 인턴쉽에 참가할 기회까지 얻음. 대럴은 평소 토르가 좋아하던 간식을 잔뜩 넣은 박스와 본인이 선곡한 지구의 옛 노래가 담긴 디스크를 주었음. 로키가 옆에서 루드하다느니 중얼거렸지만 개의치 않았음. 토르는 매우 고마워했음
"차인걸로 너무 의기소침하지 말게."
"이미 잊었어요.."
"자신감을 가져. 예전의 자네는 완전히 못생겼지만 이젠 조금만 못생겼지 않는가!"
"...고마워요."
토니가 어이없다며 웃었음. 주니어는 우주선 조종법이 담긴 매뉴얼을 건넸지만 로키는 경멸하는 눈빛을 보내며 받지 않았음
"어디로 갈 거야?"
토니가 묻자 토르는 골똘히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음
"조종간은 로키에게 넘기겠다."
"너무 끌려다니지 마. 쟤 엄청 사악하잖아. 또 뭔 짓을 저지를지..."
"다 들린다 스타크."
"하하하! 걱정말게 내가 옆에 있으니 괜찮네."
"그래서 문제라는거야. 또 널 세뇌해서 미친 변태짓하면 어쩌려고 그래."
"이제 로키는 그런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렇다는 군 스타크. 다 늙어서 찬바람 맞으면 죽을 날이 당겨지지 않겠나? 이쯤에서 슬슬 떨어지시지."
로키는 토니를 껴안고 등을 토닥이는 토르를 억지로 떼어냄. 토르는 멀뚱히 서있는 대럴도 꽉 포옹해 주었음
"음.. 이런거 익숙하지 않네요..."
"하하하!"
로키가 먼저 퀸젯에 올랐음
토르는 대럴의 등을 토닥이다가 그의 양 어깨를 잡고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추었음
"자신감을 가져.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대럴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음. 토르와 만난 건 고작 몇 달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시 없을 경험임. 아마 생에 두 번 만나기는 힘들겠지
"몸 조심해요."
대럴 제이콥슨은 운이 좋은 남자였음
"집에만 있지 마.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게나!"
그렇게 말하고 다시 포옹했음. 좀 아프다 싶을 정도로 등을 팡팡 두드림
그리곤 우주선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음. 퀸젯에 올라 투명한 창 너머로 모두를 보며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이내 앞을 보았음
퀸젯이 조용하게 떠올랐음. 구름 위로 푸른 궤적을 남기고 하늘 저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졌음
"가사가 왜 이래."
토르가 대럴에게 받음 디스크를 넣고 재생하자 1980년대 락음악이 흘러 나왔음. 로키는 항로를 입력하며 인상을 썼음. you give love a bad name 로키와 만났을때 대럴이 옛 노래 제목이라고 중얼거렸던 그 곡임
"뭐 어떠냐. 딱 과거의 너를 떠올리게 하는 곡이구나."
토르가 껄껄 웃으며 간식 박스를 열었음
"목적지는 마음대로 정했어. 어딜 가는지는 말하지 않을게. 도착하면 맞춰 봐."
"흠 그러마."
"홀가분해?"
"음 딱히 별다를 것도 없구나."
"축 늘어져 있으니 재미가 없네. 죽음의 별을 데려올까."
"네 농담이야말로 지루하구나."
조종간을 자동으로 돌린 로키는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는 토르의 옆으로 왔음. 길고 길었음. 이제 정말 마지막임
"지구로 널 보내기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감자칩을 먹으며 맥주를 따던 토르가 고개를 돌렸음
"놈들이 모두 죽으면 형은 내꺼라고 했어."
"음, 토니가 살아 있으니 아직..."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이륙하기 전에 놈에게 살짝 수작을 부려놨어."
토르는 눈을 가늘게 떴음. 로키는 낄낄 웃으며 토르의 수염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어주었음
"농담이야."
"그래야지."
토르가 투덜거리며 맥주를 한모금 마셨음. 로키는 넓은 소파에 몸을 푹 기댔음
"로저스와 섹스하는 형을 자주 봤어."
로키가 산뜻한 얼굴로 말했음. 토르는 마시던 맥주를 뿜었음. 쿨럭쿨럭 기도로 넘어가 괴로워하자 로키가 등을 토닥여줌. 토르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음. 분명 들은 내용인에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음
"형 엄청 좋아하더라."
"로키!"
"아무튼 형이 좋아하고 자지러지는 부분은 다 파악하고 있으니 걱정말고 몸을 맡겨. 그리고 한눈 팔지마."
"넌 대체 뭐가 문제냐."
"널 사랑하는게 문제지. 결국 다 네탓이야 토르."
"정말 사랑을 모독하는구나."
토르는 이마를 짚었음. 로키는 토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억지로 입술에 키스했음
싸구려 감자칩과 씁쓸한 맥주맛이 났음. 쿨럭 기침하던 토르도 곧 로키의 등 뒤로 팔을 두르고 키스에 응했음
"형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 지금 알려줄까?"
로키가 입술을 핥으며 묻자 토르는 피식 웃으며 로키가 이끄는대로 우주선 바닥에 드러누웠음. 마시던 맥주캔이 바닥을 뒹굴며 등을 적셨음
"1000년 정도 기간을 정하자."
"음?"
"1000년 뒤에 10년 정도 휴가를 줄게."
"..."
"너무 사랑하다보니 많이 너그러워졌어."
"그래, 나도 사랑한다."
우주선은 검은 공간을 헤치고 나아갔음. 둘이 향하는 곳은 고통도 분노도 행복도 사랑도 엉망으로 뒤섞여 뜨겁게 타오르는 미지의 우주 저어딘가였음
~ 끝 ~
그동안 이 긴 썰을 함께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